숨 쉴 수 없는 밀폐된 방에 갇혔습니다…베네수엘라의 정치범 '고문실'

숨 쉴 수 없는 밀폐된 방에 갇혔습니다…베네수엘라의 정치범 '고문실'

BBC News 코리아 2025-01-06 14:06:28 신고

3줄요약
투표함 형태의 감방에 갇힌 남자를 그린 삽화
Daniel Arce-Lopez/BBC

"저들은 저를 고문하고 억압했으나, 저를 침묵시키진 못합니다. 제게 남은 것은 목소리 하나뿐입니다."

베네수엘라의 20대 청년인 후안(가명)은 이렇게 말을 꺼냈다. 그는 지난해 7월 28일 치러졌던 자국 대선 이후 자신이 구금됐으며, 베네수엘라 보안군에 의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후안은 선거위원회가 니콜라스 마두로 현직 대통령의 당선을 발표하자 시위에 나선 뒤 체포된 수백 명 중 하나다.

해당 대선 결과는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으며, 베네수엘라 야당 및 여러 다른 국가에서도 부정 선거로 보고 있다.

8월 초, 마두로가 "이미 테러범 2229명이 체포되었다"고 발표했을 정도로 베네수엘라 정부는 대규모 체포에 나섰다.

후안은 마두로가 사법 당국에 이러한 체포 중 발생한 불공정을 "시정"하라고 촉구한 지 며칠 후인 지난해 11월 중순에야 석방되었다.

BBC는 영상 통화를 통해 후안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그의 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하였고, 그가 겪은 일의 세부 사항도 공개하지 않는다.

후안은 수많은 사람들이 "썩은 음식"을 먹으며 학대당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반항적인 이들은 "고문실"에 갇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BBC에 자신의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문서와 증거를 보여주었다. 이는 다른 증언 및 비정부기구에서 접수한 신고 사항과도 일치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Reuters
지난해 7월 치러진 베네수엘라 대선이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현지 선거 당국은 니콜라스 마두로 당시 대통령의 승리를 선언했다

반정부 정치 운동가인 후안은 대선을 며칠 앞두고 선거 운동이 벌어지는 기간만큼은 "희망으로 가득했다"면서 많은 이들이 변화를 꿈꾸며 투표일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선거일인 일요일 자정 직후 마두로의 승리가 발표되었고, 축하 분위기를 즐기던 많은 이들은 혼란과 분노에 휩싸였다.

베네수엘라 국민 수천 명의 거리로 나와 부정선거임을 외치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야당과 국제 기구에 따르면 당시 현지 경찰은 시위대를 억압했으며, 그 과정에서 20여 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마두로와 일부 관료들은 야당, "극우 세력" 및 "테러" 단체들로 인해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라며 책임을 돌렸다.

베네수엘라에 소재 비정부기구인 '포로 페날'은 구금되었다가 실종된 23명의 기록을 갖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변호사 및 활동가이자 포로 페날의 부대표이기도 한 곤잘로 히미옵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이 실종자들의 소재는 알려진 바 없으며, 우리는 이들이 체포되었다는 점만은 확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시위 이후 실종된 이들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히미옵 부대표는 "제멋대로 체포가 이뤄졌다. 야당의 에드문도 곤살레스 후보의 당선을 주장하며 축하하거나, SNS에 게시물을 올렸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체포되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심지어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시위 현장에 가까이 있었다는 이유로 체포된 시민들의 사례도 있다"고 덧붙였다.

후안은 자신은 후자에 속하는 경우라고 주장했다.

'강제 수용소'

작은 감방에 갇힌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삽회
Daniel Arce-Lopez/BBC
목격자들에 따르면 토코론 교도소에는 "반항적인" 재소자들을 보내는 징벌실 2곳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날 심부름을 하고 있던 후안 앞에 갑자기 복면을 쓴 남성 몇 명이 나타나더니, 테러범이라고 몰아세우며 얼굴에 무언가를 뒤집어씌우고 구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주머니에 화염병과 휘발유를 (증거로) 심더니 구치소로 데려갔다"는 설명이다.

그렇게 끌려간 후안은 베네수엘라 내륙의 한 교도소에 몇 주 동안 수감되었다가 수도 카라카스에서 남서쪽으로 약 140km 떨어진, 악명 높고 경비가 삼엄한 '토코론' 교도소로 이송되었다.

그곳에서의 삶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고 한다.

"토코론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옷을 벗기더니, 구타하고, 모욕하기 시작했다"는 후안은 "우리는 머리를 들거나 간수들을 쳐다보는 것도 금지되었다. 온종일 바닥을 보고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후안은 가로세로 3m 크기의 작은 감방에 배정되었는데, 이곳에서 총 6명이 함께 생활했다.

이층침대 3개가 놓여져 있었고, 한쪽에는 정화조와 "샤워기 역할을 하는 파이프"가 설치된 화장실이 있었다.

"토코론은 교도소라기 보다는 강제 수용소 같았다"는 후안은 침대는 아주 얇은 매트리스만 깔린 "콘크리트 무덤" 같았다고 회상했다.

아울러 "그들은 우리를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문했다. 우리가 잠을 자지도 못하게 했고, 언제나 일어나서 줄을 서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새벽 5시쯤 우리를 깨우더니 감방에서 줄을 서게 했습니다. 간수들은 우리에게 번호를 보여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6시쯤에는 목욕을 할 수 있도록 잠깐 동안 물이 나왔다고 한다.

"6명이 딱 한 대의 샤워기로 총 6분간 씻을 수 있었다"는 후안은 "만약 가장 마지막 순서여서 비누를 씻어낼 시간이 없었다면 온종일 그냥 그대로 지내야 했다"고 덧붙였다

그런 다음 조식을 기다렸는데, 6시에 도착할 때도, 12시가 다 되어야 도착할 때도 있었다.

저녁은 때로는 오후 9시 먹기도, 새벽 2시에 먹기도 했다.

"식사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다른 할 일이 없었습니다. 작은 감방 안을 돌아다니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간수들이 들으면 처벌받을 것이기에 목소리를 낮춰 정치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일상적인 구타'

후안은 함께 했던 재소자 중 다수가 우울증에 걸린 상태로 좀비처럼 행동했다고 회상했다.

"간수들은 이미 유통기한이 지난 닭, 개, 정어리 같은 썩은 음식을 주었습니다."

일부 재소자들은 일상적으로 구타를 당하거나, 발목을 손으로 감싸고 "개구리처럼 걷기"를 강요당하기도 했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가장 반항적인 이들, 즉 감히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친인척에게 전화를 걸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이들을 보내는 "징벌실"도 존재했다고 한다.

후안은 자신 또한 토코론 교도소의 징벌실 중 한 곳에 수감된 적이 있으며, 이곳에서는 2일에 한 번만 먹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가로세로 1m밖에 되지 않는 매우 작고 어두운 감방이었다"는 그는 "매우 배가 고팠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얼마나 불의한 일인지에 대한 생각, 언젠가는 이곳에서 나갈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버틸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후안에 따르면 또다른 징벌실은 '아돌포의 침대'라고 불렸는데, 이는 이곳에서 처음 숨진 이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한다.

"금고만 한 크기의 아주 어둡고 산소가 부족한 방이었다. 이곳으로 끌려간 재소자는 숨도 못 쉬고 기절하거나, 절망에 빠져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다"는 후안은 "나도 이곳으로 끌려갔는데, 고작 5분간 버틸 수 있었다. 죽는 줄 알았다"고 했다.

반인도적 범죄 의혹

모래시계 모양의 감방에 갇힌 사람의 모습을 그린 일러스트
Daniel Arce-Lopez/BBC
해당 교도소 재소자들은 일주일에 3번, 딱 10분간 감방 밖으로 나설 수 있다

후안은 해당 교도소의 재소자들은 일주일에 딱 3번, 고작 10분씩 밖을 나갈 수 있었다면서도, 다수의 재소자들이 그저 감방에 머물러 있었다고 주장했다.

히미옵 부대표는 토코론 교도소 재소자들의 상황은 "비참하다"면서 원하는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 등 기본권을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전원 국선 변호인을 고용해야 합니다. 정부는 개인 변호사의 접근을 허용할 경우 적법 절차를 위반했다는 사실이 모두 문서화될 수 있음을 알고 있거든요."

지난해 10월 유엔(UN) 전문가들은 베네수엘라에서 대선과 이후 벌어진 시위와 관련해 정치적 박해, 과도한 무력 사용, 강제 실종, 국가 보안군 및 관련 민간단체의 사법 절차를 거치지 않는 처형 등 심각한 인권 침해 사례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도 나서 현재 베네수엘라 정부의 반인도적 범죄 혐의에 대해 조사 중이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 같은 혐의를 부인하며 이러한 조사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국제 형사사법 체계를 수단화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BBC는 베네수엘라 현지 검찰에 재소자 학대 및 고문 혐의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기사 출고 직전까지도 답변받지 못했다.

'저는 더 이상 정부가 두렵지 않습니다'

포옹하는 사람들의 모습
Getty Images
수개월 동안 구금되었던 수십 명이 최근 석방되었다

후안에 따르면 토코론 재소자 상당수는 2025년 1월 10일만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대선 이후 권력이 이양되는 날인 이날 자신들이 석방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현재 스페인으로 망명한 곤살레스 야당 후보는 자신이야말로 이번 대선의 승자라고 선언했으며, 곧 귀국하여 차기 대통령직을 맡겠다고 말한다.

마두로는 자신을 끌어내리려는 음모가 진행 중이라고 주장하며, 감히 정권 교체를 감히 추진하는 자는 "그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협박하고 있다.

한편 후안은 수백 명의 "동지들이 여전히 감옥에서 고통받고 있기"에 묘한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고 인정하면서 위험한 줄 알면서도 오는 1월 10일 곤살레스 후보와 함께 거리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근 베네수엘라의 비정부기구인 '프로베아'는 지난해 10월 25일 사망한 채로 발견된 야당 지도자 에드윈 산토스의 죽음을 규탄했다. 시신으로 발견되기 2일 전, 보안군으로 추정되는 복면 쓴 괴한들이 그를 구금하는 모습이 목격된 바 있다.

후안은 "나는 두렵지 않다"고 거듭 말하면서도 혹시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 메시지를 남겨두었다고 마무리했다.

삽화: 다니엘 아르세-로페즈

추가 보도: 미렐리스 모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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