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사야 할 꿈

로또 사야 할 꿈

아레나 2025-01-05 09:00:36 신고

3줄요약

연예인 꿈과 돼지꿈은 복권 당첨자의 인터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다. 다음 행운은 나에게 오길 바라며 좋은 꿈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꿀 수 있는지 들어보았다.

2025년 새해가 밝는다. 기사를 쓰고 있을 무렵은 12월 중순이지만, 이 글이 실린 잡지는 1월쯤 볼 것이다. 내게는 한 해의 시작과 함께 의례적으로 하는 일이 있다. 신년 운세 보기. 새로운 해에는 어떻게 풀릴지, 어느 달에 기운이 좋은지, 무얼 조심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샤머니즘을 맹신하진 않아도 가깝게 두는 편이다. 장르는 가리지 않고 타로, 사주, 신점 모두 즐긴다.

모두에게 통용되는 뻔한 말을 하거나, 현재로선 전혀 알 수 없는 먼 미래의 예언을 던지기도 하지만,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길에서는 엉터리 지도라도 의지하고 싶은 법이다. 그런데 올해는 나의 샤머니즘에 힘을 실어줄 이야기를 하나 발견했다. 우연히 본 복권 1등 당첨자의 인터뷰였다.

경기도 평택시에 사는 그는 백종원 꿈을 꾸고 로또 1등에 당첨됐다고 말했다. 꿈에서 요리하고 있을 때 백종원이 나타나 레시피를 알려주는 꿈이었다. 이후 아이를 마중하러 나간 길에 구매한 복권 두 장이 연속으로 당첨되어 20억을 수령한 것. 흥미가 생겨 인터뷰가 실린 동행복권 사이트에 접속했다. 얼굴을 가린 수많은 즉석 복권 당첨자들의 인터뷰가 있었다. 개중에는 특정한 꿈을 꾸고 당첨되었다는 인터뷰가 많이 보였다.

동행복권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당첨자의 길몽 중 가장 많이 꾼 꿈은 ‘똥’ 꿈이었다. “막내딸이 좋은 꿈 꿨다고 해서 1만원을 주고 꿈을 샀습니다. 엄청난 양의 똥을 봤다는 내용이었어요.” 지난 4월 스피또1000 80회차에 당첨된 여자의 인터뷰다. 변기에 똥물이 넘치는 꿈이나 똥을 밟는 꿈, 황금 똥을 보는 꿈 등 같은 똥 꿈이라도 형태는 가지각색이다.

두 번째로 많이 꾼 꿈은 조상님 혹은 돌아가신 부모가 나타나는 꿈이다. 꿈에 귀인이 나타나 로또 번호를 알려주면 좋겠다는 소망이 이뤄진 이들이다. “얼마 전 꿈에 조상님들이 나왔습니다. 조상님들이 앞에 앉아 계셨고 옆에 호랑이가 있어 화들짝 놀라니 조상님 한 분이 ‘물지 않으니 안심해라’ 하셨죠. 이후 호랑이가 계속하여 제 손을 핥았습니다.” 이 외에도 길한 영물이 나오는 꿈이나 예지몽처럼 복권 당첨되는 꿈을 꾸고 1등에 당첨된 이들이 많았다.

대통령 꿈이나 유명 인사가 나오는 꿈도 적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 역시 대학 입학을 앞두고 꿈을 하나 꾸었다. 지망했던 학교 세 곳을 합격했고 가장 합격선이 높았던 한 곳은 예비 번호 14번을 받았다. 그 학교의 지난해와 2년 전 입시 결과를 살펴보니 잘해야
예비 번호 2번까지 합격. 가망이 없다고 생각해 추가 합격 발표를 보지 않은 채 다른 학교에 입학금을 넣었다.

그때 꾼 꿈에서 얼굴이 흐릿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변기에 앉아 있다가 이내 일어나서 나에게 다가왔는데, 변기 뚜껑이 열리며 똥물이 흘러넘쳤다. 기겁을 한 나는 도망치려 했지만 할아버지는 자꾸만 내 손을 잡아끄는 것이었다. 그렇게 꿈에서 깬 후 추가 합격 문자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쯤 되니 정말 길한 꿈이 있는 걸까 궁금해졌다. 네이버에 해몽을 검색한 뒤 상단에 있는 선녀 보살에게 전화를 걸었다. 프로필에 걸린 사진 속 범상치 않은 눈빛에 망설이지 않고 선택했다. 내 사주를 이야기한 후 슬그머니 꿈에 관해 물었다. “로또 꿈 꿀 사람은 이미 다 정해져 있어. 근데 언니는 아니야.” 저는 왜 아닌가요. “좋은 꿈을 꿔서 로또에 당첨되는 게 아니고 사주에 횡재수가 있는 사람이 좋은 꿈을 꾸는 거야. 근데 언니 팔자에 횡재수는 없어.”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그래도 어떤 꿈이 길한지라도 알고 싶어 길몽에 관해 물었다. “용을
봤다든가 커다란 물이 흐르는 걸 보거나, 산이 움직이는 걸 보거나 하는 것들이 길몽이지. 그렇지만 꿈 하나하나에 연연하는 건 그다지 좋은 건 아냐. 그렇다고 또 완전히 꿈을 부정하는 것도 좋지 않고. 그냥 ‘내가 어느 상황에 있어서 이런 꿈을 꿨지?’ 정도로만 생각해. 그 시간에 나가서 공부 더 하고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 그래야 운수가 맑아져.” 기대와 다르게 쓴소리만 들은 채로 통화는 끝났다.

쟁점은 좋은 꿈을 꿨기에 로또에 당첨되었다기보다는 당첨될 사람이 꿈을 꾼다는 것. 거기에 나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일확천금은 누구나 꿈꾸는 일이다. 1월 1일이 되면 ‘로또송’은 매년 음원 사이트 실시간 인기 순위에 올라온다. 꿈이란 고작 미신일 뿐인지도 모르지만, 팍팍한 사회에서 걸어보는 작은 희망이 아닐까.

이번 기사의 기획을 준비하며 어머니에게 들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는 어머니의 외가 친인척은 모두 갓을 쓴 외할아버지 꿈을 꾸고 대학에 합격했다는 것. 그 이야기를 들은 뒤 내 꿈에 등장한 할아버지가 증조할아버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지만.

2025년 01월호

Editor : 유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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