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관 더봄] 방이 '방'이라야 집도 '집'일 수 있는 '우리집' 평면도는? 

[김정관 더봄] 방이 '방'이라야 집도 '집'일 수 있는 '우리집' 평면도는? 

여성경제신문 2025-01-04 10:00:00 신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 문구는 저 유명한 성철 스님의 법구(法句)이다. 어쩌면 당연한 말이지만 스님이 던지는 화두를 잘 새겨보면 산을 산으로, 물을 물로 보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게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그럼 우리는 집을 '집'으로, 방을 '방'으로 제대로 쓰면서 살고 있는지 돌아보자.  

'집이란 무엇일까?'라고 화두를 들어보면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이갑수 산문집 <오십의 발견> 에는 집이란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지는 곳’이라 정의를 내리고 있다. 집은 밖에 있다가 들어오는 곳이 아니라 잠시 밖으로 나갔다가 볼 일을 마치면 돌아오는 곳이라고 한다. 결국 집이란 식구들이 각자 볼일을 보러 밖으로 나갈 뿐 그 외에는 함께 있어야 하는 곳이다.  

아파트라는 집은 '집'이 아니라고?     

저녁이 되면 집에는 밖에 나갔던 식구들이 돌아와야 한다. 그런데 밤이 이슥한데도 불이 켜져 있지 않은 집이 많다. 밤늦은 시간인데도 집에 불이 꺼져 있는 집은 ‘집은 집이요’라는 그 집이 아닌 게 틀림없다. ‘집은 집’이라고 한다면 식구들이 다 들어와 있어야 할 시간에 불이 들어오지 않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집은 '집'이라야 하는데 집이 '집'이 아닌 게 분명하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성철 스님의 법구(法句)에 공감할 만한 그 무엇을 느끼게 한다. 왜 식구들이 잠깐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고 잠잘 시간이 되어야 들어오는 것일까? 아파트는 숙소 그 이상 기능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2024년 12월 31일 밤 9시, 한 해 마지막 날 이 시간에 불 꺼진 집이 없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그나마 불 켜진 집이 더 많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식구들이 집에 들어오지 않은 게 아파트 때문이라고 몰아세우는 건 아니지만,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 /사진=김정관
2024년 12월 31일 밤 9시, 한 해 마지막 날 이 시간에 불 꺼진 집이 없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그나마 불 켜진 집이 더 많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식구들이 집에 들어오지 않은 게 아파트 때문이라고 몰아세우는 건 아니지만,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 /사진=김정관

집이 가져야 할 근본은 ‘집’이란 돌아가는 곳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집의 구성원인 식구들이 일을 마치는 대로 서둘러 돌아가야만 ‘집은 집’일 수 있다. 집이 '집'이 아니다 보니 갈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게 우리네 주거의 현실이 아닌가? 우리는 집을 잃고 집을 찾고 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유목민이 옮겨가며 사는 천막 거주지와 다름없으니 집을 찾는다.  

아파트가 집이 아닌 건 아니지만 집이 가져야 할 덕목을 지니지 못하는 건 틀림없다. 손님을 들이지 못하고 거실은 TV 시청실로 전락해 버린 지 오래되었으며 아이들은 대학생만 되면 집에서 탈출하듯 학교 앞 원룸으로 달아나 버리지 않는가? 아이들이 쓰던 방은 부부가 각방 쓰기에 들어 차지해 버리니, 가족을 해체해 버리고 마니 우리가 바라는 집이 아닌 건 분명하다.

우리집에서 방이 '방'이 되려면

집의 얼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도면을 평면도라고 할 수 있다. 평면도에는 공적 영역인 현관, 거실, 주방, 계단과 사적 영역으로 방이 있다. 그런데 보통 집의 얼개를 짜면서 공적 영역과 안방에만 치중하고 나머지 방은 적당히 두고 만다. 그런 집의 대표적인 평면이 아파트라고 볼 수 있다.  

안방은 방위도 가장 좋은 남향을 차지하고 욕실, 파우더룸, 드레스룸도 부설되어 있다. 다른 방은 어떤 아파트 할 것 없이 현관 앞 문간방일 뿐이다. 방 크기만 해도 안방은 더블베드를 놓고도 여유가 많지만 문간방은 싱글베드에 책상을 놓으면 그만이다. 남자아이라면 중학생만 되어도 큰 덩치에 방을 쓰는 게 갑갑하다.

필자가 설계 중인 상가주택 3층에 있는 단독주택 평면도, 안방을 따로 두지 않았고 방의 크기가 다 비슷하다. 건축주는 집이 지어져서 입주하면서 아이들이 먼저 방을 정하고 남은 방을 부부가 쓸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집을 쓴다면 식구들에게 방은 '방'으로 집은 '집'이 되어 '우리집'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자료=김정관
필자가 설계 중인 상가주택 3층에 있는 단독주택 평면도, 안방을 따로 두지 않았고 방의 크기가 다 비슷하다. 건축주는 집이 지어져서 입주하면서 아이들이 먼저 방을 정하고 남은 방을 부부가 쓸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집을 쓴다면 식구들에게 방은 '방'으로 집은 '집'이 되어 '우리집'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자료=김정관

안방은 부부의 침실이라 구태여 남향에 있을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침실로만 쓰는 게 아니라서 남향 햇살이 드는 게 좋고 방의 크기도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 아파트는 부부만 살도록 평면이 구성된 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아이들은 어서 대학생이 되어 자신의 방을 찾아 독립할 때를 기다리는 건 아닐까 싶다. 

대학생이 된 아이들이 분가해 나가면 곧바로 부부는 각방 쓰기에 들어간다. 그런데 안방을 누가 쓰게 될지 모르지만 문간방을 쓰는 쪽과 방의 여건이 너무 다르다. 한 사람은 호텔 디럭스룸, 다른 한쪽은 욕실이 밖에 있는 게스트룸을 쓰는 셈이다. 각방을 쓰게 되면 여생을 그렇게 집을 쓸 텐데 처지가 너무 다르지 않은가?

방은 '방'이라서 '우리집'이 되는 '집'  

‘우리집’은 부부뿐만 아니라 아이들까지 ‘우리’가 되는 집이어야 한다. ‘우리집’은 안방이라는 개념 없이 방이 동등한 위치와 크기를 가지는 게 좋다. 그렇게 평등한 방을 만들면 훗날 부부가 각방을 써도 위화감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부부의 방은 욕실을 공유하면서 별도의 영역으로 두는 것도 좋겠다.  

아이들이 쓰는 방은 훗날 사위나 며느리가 와서 쓰게 된다. 그러니 당연히 더블베드가 들어갈 수 있어야 마땅할 것이다. 아이들이 어른의 체구가 되어서도 방을 쓸 수 있어야 하며 2인 소파가 들어갈 수 있으면 좋다. 아이들의 방은 침실이자 서재,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크기가 되면 좋을 것이다. 

필자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단독주택 '심한재', 평면도는 거실채와 침실채로 채 나눔이 되어 있다. 침실채의 1층은 부부의 영역으로 노후에 방을 따로 써도 좋다. 2층은 아이들 영역이지만 훗날에는 손님의 영역이 될 것이다. 물론 가장 귀한 손님은 며느리와 사위일 텐데 손주는 손님이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의 분신이다. /김정관
필자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단독주택 '심한재', 평면도는 거실채와 침실채로 채 나눔이 되어 있다. 침실채의 1층은 부부의 영역으로 노후에 방을 따로 써도 좋다. 2층은 아이들 영역이지만 훗날에는 손님의 영역이 될 것이다. 물론 가장 귀한 손님은 며느리와 사위일 텐데 손주는 손님이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의 분신이다. /김정관

단독주택이라면 1층은 부부의 영역, 2층은 아이들이 쓰다가 훗날에는 손님의 영역이 될 것이다. 물론 가장 귀한 손님인 며느리와 사위가 자주 올 수 있도록 배려해서 평면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부모를 자주 찾아와야 손주가 자고 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손주와 정을 쌓으며 살 수 있는 노후는 삶의 질이 다르지 않은가?  

부부 위주로 살게 되어 있는 평면을 가진 아파트와 다름없는 단독주택은 외롭게 살아야 하는 집이다. 우리집을 지을 때 손주와 자주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해서 평면도를 만들어야 삼대가 어우러져서 지낼 수 있다. 식구가 함께 집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집다운 집, 집이 '집'이요, 방이 '방'이라고 할 수 있다. 

 


손님이 와서 하룻밤을 편안히 묵어갈 수 있어야 활기가 넘치는 집이 된다. 자식들도 가정을 꾸리면 손님으로 오는 건 사위뿐 아니라 며느리도 ‘백년손님’이기 때문이다. ‘백년손님’과 같이 오는 손주는 손님이 아니라 내 핏줄인데 남과 다름없이 살면 되겠는가? 손님이 오지 않아 부부만 사는 집은 기가 정체되어 우울한 일상이 되고 만다.

식구들이 제 방을 편히 쓸 수 있어야 ‘우리집’이라며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더 가지려고 할 것이다. 집에서 식구들과 보내는 시간을 많이 가졌던 자식들이 부모와 더 각별한 정을 가지게 된다. 노년이 되면 부부만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는데 안방과 문간방이라는 격차로 지낸다면 평탄한 일상이 되기 어렵지 않겠는가? 방은 '방'이라야 집도 '집'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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