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의 화두를 건져 올려 미술관을 사유와 논의의 장으로 확장하는 것.
샤넬 컬처 펀드의 후원을 받아 진행하는 리움미술관의 퍼블릭 프로그램 ‘아이디어 뮤지엄’이 심포지엄 ‘사이 어딘가에’를 개최했다.
이분법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힘을 그 안에서 발견했다.
리움미술관의 퍼블릭 프로그램 ‘아이디어 뮤지엄(Idea Museum)’이 심포지엄 ‘사이 어딘가에’를 열었다. 아이디어 뮤지엄은 미술관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인 포용성(inclusivity), 다양성(diversity), 평등(equality), 접근성(access)을 예술의 관점에서 풀어내는 리움미술관의 중장기 프로젝트다. 샤넬 컬처 펀드(CHANEL Culture Fund)의 후원을 받아 2023년부터 진행해 2024년 2회 차를 맞이했다. 아이디어 뮤지엄은 동시대 미술관의 역할을 선도하기 위해 매년 새로운 주제를
선정해 학제 간 연구 기반의 강연, 대담, 워크숍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2023년 ‘기후 위기와 지속 가능성’을 주제로 선정한 데 이어 2024년에는 ‘젠더와 다양성’을 논의의 중심에 두었다. 여성과 남성, 인간과 비인간, 장애와 비장애 등 기존의 이분법을 넘어 그 사이에서 펼쳐질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했다. 시인, 미술사가, 철학자, 젠더 학자, 현대 사학자 등 문화 예술 분야의 여러 전문가와 함께 19개 프로그램을 페스티벌 형식으로 선보였다.
11월 21일부터 30일까지 열흘간 이어진 심포지엄 ‘사이 어딘가에’는 리움미술관 김성원 부관장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그 문을 열었고, 이후 김혜순 시인이 ‘희(稀)’라는 제목으로 기조 강연을 진행했다. 시인은 “글쓰기는 분명한 모든 것으로부터 박탈의 존재가 되는 투쟁”이라고 말하며 “제가 원하는 건 동일시도 반동일시도 아닙니다. 제가 원하는 건 ‘사이’입니다. (…) 시 쓰기는 일종의 ‘사이 하기’입니다” 라고 이야기했다. 시인은 자신의 시를 낭송하며 나와 너, 너와 너 사이에 존재하는, ‘사이’라는 비가시적 공간에 대한 사유를 전했다. 강연 이후에는 청중과 ‘희미하고, 희끄무레하고, 희한한’ 것들에 대해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어 안무가 세실리아 벵골레아(Cecilia Bengolea)의 퍼포먼스 및 영상 작품 <베스티에르(Bestiare)>가 이어졌다. 자신의 몸을 디지털 이미지 제작 기술을 사용해 동 물, 식물, 색, 추상 등의 유기적 형태로 변모시켜 ‘인간의 몸이 과연 자율적 개체인가’라는 질문을 품게 했다.
이후 타자와 함께하는 방법, 기존 서사의 해체와 재구성, 다종 간의 공생을 위한 실천 등을 다루는 여러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동시대 예술의 확장을 시도해온 ‘ 옵/신 페스티벌’과 공동 기획해 신체성을 탐구하는 퍼포먼스와 워크숍을 선보였고, 예일대학교 미술대학장 킴벌리 핀더(Kimberly Finder)의 강연을 통해 남성 중심 미술사에서 소외된 예술가들의 투쟁 과정을 조명했다. 시각예술가, 미술사가, 문화인류학자가 모여 바다 생물과 인간의 관계를 고민하는 토크 등의 프로그램도 접할 수 있었다.
특히 올해는 강연자와 토론자가 심층적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해 각 주제에 대해 보다 깊이 있는 논의가 이뤄졌다. 또 사전에 신청하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강연 중 한·영 동시통역과 문자 통역, 수어 통역을 제공해 접근성을 강화한 점도 인상 깊다.
오늘날 미술관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리움미술관과 샤넬 컬처 펀드가 함께하는 아이디어 뮤지엄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지금 미술관이 어떤 질문을 수면 위로 꺼내야 할지 고민한다. 차이와 다양성을 새롭게 감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 ‘나’가 아닌 다른 존재와 함께할 수 있는 세계를 상상하는 것. 이 모든 과정을 예술의 관점에서 망라하며 더 많은 대중과 함께하는 것. 이 같은 아이디어 뮤지엄의 적극적인 시도가 다음에는 어떤 방식으로 펼쳐질지, 그 공론의 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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