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실크로드, 지구 반바퀴] 시베리아 시골 도시 ‘벨로고르스크’

[시베리아·실크로드, 지구 반바퀴] 시베리아 시골 도시 ‘벨로고르스크’

경기일보 2025-01-02 19:22:57 신고

3줄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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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선 심산기념사업회장前 관세청장

 

■ 시베리아 소도시 벨로고르스크에서

 

오전 9시 시베리아 시골 도시 벨로고르스크의 자동차정비소가 문을 열면 문제가 생긴 L실장의 차를 고쳐야 한다. 오늘은 자동차 수리 때문에 늦게 출발할 수밖에 없다.

 

손님이 적은 시골 여관이라 아침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다. 부득이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고 아내와 함께 시내 공원에 산책을 갔다.

 

1991년 소련 해체 후 레닌 동상은 대부분 철거됐는데 이곳은 시골 도시라 한 개 남아 있다고 한다. 레닌은 1924년 사망했으니 지난해가 사망 100주년이다. 레닌 사망 후 후계자 스탈린은 레닌 우상화를 위해 소련 각지에 수만개의 동상을 건립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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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로고르스크 중앙공원에 있는 레닌 동상 앞에서 일행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작가 제공

 

요즈음 러시아 전체에 남아 있는 레닌 동상이 희귀해 사진 찍는 관광 장소라고 한다. 아침 기온이 13도여서 두꺼운 패딩을 꺼내 입는다. 한국의 초가을 날씨처럼 선선하다.

 

노상에서 동네 주민들이 시베리아 산딸기, 야생 베리를 팔고 있다. 시식해 보라고 권해 먹어 보니 모양새는 맛있어 보이는데 신맛과 약간 씁쓸한 맛이다. 이곳은 일조량이 적어 한국보다 과일 당도가 낮다. 어제 산 야생 꿀도 확실히 당분이 적은 것을 느낀다.

 

언제 시베리아에 다시 오겠는가 생각이 들어 두 종류의 야생 베리를 노점상에서 샀다. 한 컵 가격이 250루불(약 4천원)이다. 짧은 여름 한 번 먹을 수 있는 무공해 자연식품이라 아내에게 권하니 배탈 난다고 먹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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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노점상에서 상인들이 야생 베리 등을 팔고 있다. 작가 제공

 

■ 인근 도시 스보보드니: 자유시 참변 장소

 

스보보드니는 벨로고르스크에서 60㎞ 떨어져 있다. 러시아어 스보보드니는 한국말로 ‘자유’라는 의미다. 이 도시는 독립군부대가 참변을 당한 ‘자유시 참변’으로 잘 알려져 있다.

 

봉오동전투가 1920년 5월, 청산리전투가 1920년 10월에 있었다. 일본군의 추격에 쫓기던 독립군은 추운 겨울 두만강 건너 지린성 백두산 자락에서 출발해 북만주 벌판, 헤이룽장, 싱안링산맥을 넘어 수천㎞ 먼 길을 걸어 1921년 봄 ‘스보보드니(자유시)’에 도착했다.

 

혹독한 만주의 겨울 추위에 빈약한 복장과 부족한 식사를 하면서 얼마나 고생했겠는가. 어렵게 이곳에 도착한 뒤 1921년 6월 러시아 적군과 고려공산당 군대에 의해 독립군이 학살당한 도시다. 독립군 측 기록에 의하면 600여명 사망, 900여명이 체포됐다. 학살로 대한독립군 부대는 거의 소멸돼 1921년 이후 일본군과 독립군의 변변한 전투는 없다.

 

청산리전투 사령관 김좌진 장군은 학살의 낌새를 눈치채고 사전에 빠져나와 참변을 면했다고 한다. 러시아 변방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은 대부분 무명용사일 것이다. 그 후손들이 독립유공자 혜택을 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스보보드니는 스탈린 치하 정치범수용소로 유명하다. 최대 19만명이 수용됐다고 한다. 스탈린 자신도 러시아혁명 이전 반체제범으로 체포돼 어느 시베리아 수용소에 2년 동안 수감된 경력이 있다. 억압받았던 자가 억압하는 위치에 있게 되면 더욱 잔인해지는 일이 인간사와 역사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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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연초록 물결. 작가 제공

 

■ 스코보노디노로 가는 여정

 

자동차정비소에서 시간을 많이 소모하고 아침 늦게 스코보노디노로 출발한다. 북위 54도에 위치한 인구 1만명의 작은 도시다. 오늘 이동할 거리는 550㎞다. 우리 여정의 시베리아 초원로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지역이다.

 

3일간 2천여㎞를 시베리아 숲길로 지나오면서 원시적인 자연계에 익숙해지고 있다. 시베리아 산림은 비슷하다. 자작나무 숲이 주종이고 때로는 소나무 군락지도 나타난다. 열대지방, 온대지방 등에 비해 수종이 매우 단순하다. 텅 빈 대초원도 번갈아 나타난다. 연초록색 물결이 출렁이는 초원의 바다다.

 

농사를 짓고 싶어도 근처에 사람이 안 살고 소비할 시장이나 판로가 없으므로 경작도 쉽지 않다. 도로변의 많은 초지가 텅 빈 채로 있다. 여름철 낮 시간이 16시간으로 매우 길고 강한 햇볕 때문에 짧은 여름 3개월 동안에 감자, 밀, 채소 등 경작이 가능하다고 한다.

 

공기는 매우 맑고,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무공해 자연은 아름답다. 거의 경치의 변화가 없는 시베리아 대평원 길을 며칠째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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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초원에서 일행이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작가 제공

 

가끔 마을이 나타나는데 사람이 안 사는 폐가가 많이 보인다. 젊은이들은 모두 모스크바 등 대도시로 떠나고 시베리아에 살던 부모가 죽으면 우리 농촌처럼 자연스럽게 폐가가 될 것이다.

 

자작나무, 소나무가 서로 경쟁하면서 군집을 이루고 있다. 어떤 곳은 자작나무가 주종이고 어떤 곳은 소나무가 주종이다. 대체로 숲속의 나무는 매우 빽빽하게 밀집해 자라고 있다. 겨울 강풍과 추위에 서로를 지탱하기 위함이다. 가혹한 겨울 날씨에 살아남기 위한 식물의 지혜다.

 

초원에 잠시 사진을 찍으러 들어갔다가 야생 벌레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처음엔 모기에 물린 줄 알았는데 나중에 초원의 야생 곤충에 물린 것을 알게 됐다. 곤충의 독성이 매우 강해 일주일 이상 붓고 가려워 큰 고생을 했다.

 

시베리아 곤충의 독성에 면역력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 가져간 모기약은 전혀 듣지 않는다. 밖에서 보면 아름다운 초원인데 속은 무서운 곤충들의 천국이다. 다시는 초원에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면역력이 생긴 이곳의 농민이나 목동은 아마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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