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오영주 기자] 세계 10대 부호하면 대부분 미국인인 제프 베이조스나 빌 게이츠를 떠오르겠지만, 그러나 몇 안 되는 프랑스인으로 세계 10대 부호에 오른 이가 바로 베르나르 아르노다. 베르나르 아르노는 1949년 3월 5일 프랑스 오드프랑스 노르주 루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랑제꼴 에콜 상트랄 파리 출신의 공학자였다.
공학교육을 받은 그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건설회사에 입사하여 충실히 경영수업을 받다가 1979년부터 대표가 된다. 마침 프랑스 사회당 출신의 프랑수아 미테랑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미테랑의 사회주의적 정책에 실증을 느끼고, 관심을 갖던 미국에 진출하게 된다.
‘캐시미어 코트를 입은 늑대’...그의 성공 비결?
미국에 진출한 뒤 우연히 뉴욕에서 탄 택시 기사와 이야기하던 아르노는 기사가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은 몰라도 명품 브랜드 ‘디올’은 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이야기를 머릿속에 새기고 있던 아르노는 1984년 크리스찬 디올의 모기업인 부삭이 매물로 나왔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이미 뉴욕에서의 일로 명품 산업의 힘을 깨달은 그는 무조건 인수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르노는 총 9,500만 달러를 들여 부삭을 인수하게 된다.
이로 인해 아르노는 명품 패션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그는 “일자리를 보존하고 사업을 되살리겠다”고 공언했지만, 사업 부분 상당수를 매각하고, 부삭그룹의 직원 8,000명을 감축시켰다,
비록 2년 만에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켰으나, 미국인처럼 보이는 뻔뻔함에 언론은 아르노를 ‘캐시미어 코트를 입은 늑대’에 비유했다. 이는 우리 말로 표현하면 양의 탈을 쓴 늑대라고 보면 될 것이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르노는 “기존 브랜드를 인수하는 것이 새 브랜드 출시보다 가치가 크다”고 생각해 계속 명품 브랜드 인수에 나선다. 1980년대 당시까지만 해도 세계 명품시장은 하나의 브랜드로 가족회사를 차려 운영하는 것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아르노의 행동으로 인해 이러한 판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루이비통 패션하우스와 모엣 헤네시가 합병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러나 합병 이후 문제가 발생했다. 루이비통 출신 앙리 라카미에 부회장과 모에 헤네시 출신 알랭 슈발리에 회장이 지분권 다툼을 벌인 것이다. 이에 라카미에 부회장은 아르노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아르노는 라카미에 부회장과 손잡고 지분을 매입해 슈발리에 회장을 몰아낸 뒤, 자신을 불러들인 라카미에 부회장마저 쫓아내고 회사를 손에 넣었다. 그가 40세 였을 때 일이다.
합병 통한 ‘LVMH’의 탄생
LVMH는 1971년 모엣 샹동(Moët & Chandon)과 헤네시(Hennessy) 사의 합병으로 이뤄진 모엣 헤네시(Moët Hennessy)와 루이비통이 1987년 합병하여 세워진 회사로 창시자는 Henri Racamier과 Alain Chevalier다. LVMH의 특이한 점은 지배구조인데 국내의 여느 재벌과 다를 바 없이 다층형 지배구조로 되어 있다.
LVMH의 42.36%를 Financiere Jean Goujon회사가 Financiere Jean Goujon의 100%를 크리스천 디올이 크리스천 디올의 69.96%를 그룹 아르노가, 그룹 아르노를 아르노 가문이 가지고 있다. 덧붙여 아르노는 LVMH의 지분 5.28%를 직접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기업에도 투자한 적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YG 엔터테인먼트에 610억 5,000만원을 투자한 사례가 유명하다. 하지만 ‘버닝썬 게이트’로 인해 YG의 주가가 크게 하락하자 상환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2020 코로나 범유행으로 전 세계 시장이 위축된 가운데, LVMH 그룹은 강한 회복세를 보인다. LVMH가 7월 26일 발표한 상반기 실적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6% 증가한 280억 유로 매출을 기록했다.
특히 패션&래더 사업 부문 영업이익은 56억 6,000만 유로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배 이상 증가하였으며 시계 쥬얼리 사업 부문은 브랜드 티파니 인수 효과를 톡톡히 보며 영업이익 2019년 대비 122% 성장했다.
한편 LVMH의 브랜드 중에서 가장 오래된 브랜드는 1593년에 설립된 와인 제조사인 Château d'Yquem이다.
적극적 인수합병, 실패를 겪기도
이후 아르노는 공격적으로 기업들을 인수하기 시작했다. 지방시, 셀린느, 펜디 등을 비롯하여 메이크업 포에버, 베네딕트 코스메틱 같은 화장품 브랜드와 태그호이어, 불가리 등 시계, 쥬얼리 브랜드를 줄줄이 인수·합병했다.
그는 경영 측면에서 위기이지만 디자인에서 경쟁력 있는 회사들을 줄줄이 인수하면서 해당 브랜드의 가치를 이어나감과 동시에 새로운 디자이너를 영입함으로써 트렌드에 빨리 대응하는 방식으로 적극 대처해나갔다,
아르노가 매번 성공을 거둔 것이 아니다. 구찌나 에르메스 같은 기업들을 인수하는 것에 실패한 적도 있었다. 덧붙여 무차별적인 인수합병으로 생태계를 어지럽힌다는 비판과 잦은 정리해고로 인해 많은 이슈가 되었다.
경영 철학과 유연한 원칙...조세 회피와 탈세?
아르노 회장은 문어발식 브랜드 확장으로 유명하지만, 여전히 잘나가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그의 몇 가지 원칙인데, 훌륭한 인재를 모으는 것도 그 원칙에 속한다. 그 예로 1997년에 마크 제이콥스를 영입한 것을 들 수 있다.
또 21세기 들어 그룹의 수익성이 떨어지자 디자이너의 창의성과 소신을 중시하기 시작한 것도 그의 유연한 원칙을 적용한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로 꼽힌다.
이어 아르노는 명품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다양한 가격대의 상품을 선보임으로써 중산층도 쉽게 명품을 소비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명품의 이미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매장을 화려하게 꾸민 것도 그의 전략이었다. 또 각각 브랜드마다 독립성과 개성을 인정해주는 것도 대표적인 전략으로 손꼽힌다.
2012년 아르노는 벨기에 국적을 신청했다는 사실로 인해 논란을 빚었다. 당시 프랑스 대통령인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최고세율을 75%로 올리려 하자 이에 대한 반발로 최고세율이 53.7%인 벨기에 국적을 취득하려 했다는 소식이었다.
논란이 확산되자 아르노는 해명자료를 내고 사업 목적상 국적 취득이지 세금 회피 목적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르노가 지속해서 정부의 세금정책에 불만을 품은 것을 근거로 논란이 지속해, 심지어 루이비통의 브랜드 가치까지 하락하자 마침내 아르노는 벨기에 국적 신청을 포기했다.
한편 2017년에는 그에게 탈세의혹이 붙기도 하였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세계 유명인사들의 역외 탈세 문건인 파라다이스 페이퍼에 아르노의 이름이 올라간 것이 그 이유다. 아르노는 이에 대해 성명을 통해 “문제의 재산은 당국에 신고했으며 프랑스 재산세를 적용받고 있다”고 반박했다.
나이 70을 넘었지만, 아르노는 여전히 쌩쌩하다. 그리고 욕심도 여전하다. 아르노는 죽기 직전까지도 인수합병을 하다 죽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욕심은 끝도 없다는 말처럼 아르노의 욕심도 끝이 없다. 과연 그 욕심의 끝은 어디까지이고, 또 그 대상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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