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고영미 기자]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31일 국무회의에서 여야 추천 몫인 2명(정계선·조한창)의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을 발표하자 대통령실은 새해 첫날 집단 사의를 표명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은 최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쌍특검법’(내란특검법·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수정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더불어민주당은 최 권한대행을 향해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조속한 임명을 촉구하면서도 ‘거부 시 탄핵’ 같은 후속 조치는 자제하는 분위기다.
대통령실 “최 권한대행이 도를 넘었다” 반발
대통령실은 1일 공지를 통해 정진석 비서실장, 성태윤 정책실장,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장호진 외교안보특보와 수석비서관 전원이 최 권한대행에게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이는 최 권한대행이 전날 헌법재판관 2명을 임명한 데 대한 반발로 풀이된다. 앞서 대통령실 측은 최 권한대행에게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할 것을 건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국무회의에서도 대부분 국무위원이 헌법재판관 임명에 반대했다고 한다.
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2명을 임명하자 대통령실에서는 "최 권한대행이 도를 넘었다"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전날 언론과의 통화에서 최 권한대행의 임명이 권한 범위를 벗어난다고 지적하며 민감한 정치적 가치판단을 권한대행의 대행이 일방적으로 내리면서 정치적 갈등을 오히려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대통령실의 반발은 최 권한대행이 이른바 '대대행' 위치에 있는 만큼, 대통령 권한을 최소한으로 자제해 사용했어야 하지만 헌법재판관 임명을 강행하며 권한을 넘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 직무정지 이후 침묵을 이어가던 대통령실이 이례적으로 입장을 표명한 배경에는, 헌법재판관 구성 변화가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기존 6인 체제에서는 재판관 전원의 찬성이 필요해 결론 도출이 어려웠지만, 8인 체제에서는 8명 중 6명만 찬성해도 탄핵안 인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이 오는 4월 18일 퇴임하더라도, 최소 6인 체제가 유지될 수 있어 심리에 필요한 요건을 충족할 수 있게 됐다.
그 사이 나머지 한 명의 헌법재판관이 추가로 임명되면 공백 없이 운영될 수 있어, 윤 대통령 측의 재판 지연 전략은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대통령실 참모진들은 지난해 12월 4일에도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여파로 일괄 사의를 표명한 바 있다.
국민의힘 “‘내란옹호’ 우려에 쌍특검 논의 가능”
국민의힘은 최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2명 임명에는 강한 유감을 표시하면서도 이른바 ‘쌍특검법’(내란특검법·김건희 여사 특검법)은 수정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같은 국민의힘 분위기 전환에는 최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에 대해 당에서 취할 수 있는 뚜렷한 대책이 없고, 국가 혼란을 초래한 12·3 비상계엄 진상규명, 김건희 여사 수사 여론이 커지면서 여당도 ‘무조건 비호’는 어렵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해 12월 31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쌍특검법에 대해 “헌법에 위배되는 요소가 굉장히 많다. 어렵고 복잡할수록 원칙에 충실해야 하고 법치주의에 충실하게 가야 한다”라면서도 “위헌성 요소를 제거한 특검은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며 논의 가능성을 열어놨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논의 가능성’을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도 지난해 12월 31일 원내대책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야당이 추천하는 야당 특검이기 때문에 저희 당은 두 특검 모두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밝히면서도 “저희 입장에서는 (국회에서의 재의결을) 일단 부결시켜 놓고 그다음 수순은 그때 가서 다시 논의할 계획”이라며 야당과 대화 여지를 열어놨다.
당내에서도 ‘여야 협상’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권영진 의원은 같은 날 KBS라디오에서 “여야가 같이 머리를 맞대고 협의해서 새로운 좋은 길을 찾을 수 있으면 찾아야 한다”고 했고, 박형수 원내수석부대표도 전날 “쌍특검에 거부권이 행사돼 국회로 되돌아온다면, 야당과 위헌적인 조항을 삭제하는 방법으로 충분히 협상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이는 국회에서 쌍특검 재표결이 이뤄질 경우 부결을 확신할 수 없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재표결은 재적 과반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하면 가결된다. 범야권이 모두 찬성표를 던진다면 국민의힘 의원 8명만 이탈하면 되는데 이미 내란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 국회 본회의 표결 당시 각각 7명, 6명의 여당 의원이 이탈한 바 있다. 특히 내란 특검법의 경우 반대를 거듭하다가는 ‘내란 동조당’이라는 야당 공세에 시달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편 권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최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 강행은 헌법상의 '소추와 재판 분리'라는 원칙을 위배한 것"이라며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 권한대행의 결정은 야당의 탄핵 협박에 굴복해 헌법상 적법절차 원칙을 희생시킨 것"이라며 "오늘 결정은 잘못된 선례로 남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비상상황임을 고려…최대한 인내”
민주당은 최 권한대행이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3명 중 2명만 임명한 것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면서도 당의 공식 입장은 탄핵과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지난해 12월 31일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비공개로 진행된 의원총회에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최 권한대행이 국회 권한을 침해했다고 비판했지만 당내 친명계 중진 의원들이 당내 지도부의 메시지가 너무 거칠다라는 의견을 최근 이재명 대표에게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1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열린캠프’ 출신 친명계 중진 의원들은 최근 이 대표에게 당 지도부 메시지 관리에 대한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열린캠프는 2022년 대선 당시 이 대표의 대선 경선 캠프로 우원식 국회의장이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고, 조정식‧정성호‧윤후덕‧박홍근‧김영진 의원 등이 중책을 맡고 있다.
이들은 특히 최근 당 지도부에서 국무위원에 대한 ‘줄탄핵’을 예고한 점을 지적한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김민석 최고위원은 지난해 12월 26일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와 관련해 “(임명을 하지 않는 국무위원들에 대해) 따박따박 탄핵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지난해 12월 23일 “내란 사건 동조 가능성 등을 판단해 한 번에 탄핵하는 방법이 있다. 국무위원 15명 중 5명을 탄핵하면 국무회의 의결을 못 한다”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두고 한 중진 의원은 막중한 시기인 만큼 거친 말이 나오는 걸 조심해야 한다는 취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중진들은 이 대표에게 경제‧외교‧안보에 대해선 정부를 초당적으로 돕겠다는 발언도 해야 한다는 조언을 전했다고 알려졌다. 이같은 조언들에 대해 이 대표도 공감의 뜻을 표했는데, 실제로 이 대표는 최근 여러 차례 당 소속 의원들에게 사무총장 명의 공문을 통해 “언행 주의”를 당부한 바 있다.
최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한 ‘쌍특검법’에 대해서도 중진의원들은 “헌법재판관 임명 후 수정안을 협상하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알려진다. 현재 발의된 내란·김건희 특검법은 2명의 특검 후보를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각각 한명씩 추천하는 방식이다. 국민의힘은 “여당 추천 몫 없이 야당만 후보를 추천하는 건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한편 민주당은 최 대행이 특검법 공포를 거부하고 헌법재판관을 모두 임명하지 않은 것에 대해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윤종군 원내대변인은 “최 대행의 국회 권한 침해에 대해 부글부글 끓었지만, 탄핵 추진 여부는 지도부에 위임한다는 정도로 (의총 분위기가) 정리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비상상황임을 고려해 최대한 인내하며 가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최 권한대행이 ‘쌍특검법’으로 불리는 ‘내란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데 대해 재표결을 추진한다면서도 두 특검법과 관련해 당장 협상의 여지는 없다는 입장이다.
당 지도부 소속의 한 의원은 전날 국민의힘 일부가 협상 가능성을 언급한 ‘3자 추천 특검법’에 대해 “재의 투표에서 내부 단속을 위한 시간 끌기이자 지연책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다만 민주당은 재표결 끝에 부결돼 법안이 폐기되면 여당 의원을 설득하기 위해 제3자 추천 특검법을 고려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윤 대통령의 내란 혐의는 기정사실로 굳어진 만큼 추천 주체에 따라 특검 수사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낮다는 주장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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