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권선형 기자] 올해 한국산업은 20일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작년 상반기 대(對) 미국 수출액이 역대 1위(643억달러)를 달성하는 등 최근 한국 산업의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로 미국이 부각돼 온 만큼 트럼프의 정책에 따라 업황이 좌우될 전망이다.
작년 한 해 미국은 한국산업의 수출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 왔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작년 대미 수출액은 11월(-5.1%)을 제외하고는 매월 전년 동기 대비 상승했다. 매월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1월 27.2%, 2월 9.1%, 3월 11.3%, 4월 24.2%, 5월 15.5%, 6월 17.7%, 7월 9.4%, 8월 10.9% ,9월 3.4%, 10월 3.4%를 기록하는 등 미국 수출에 훈풍이 불었다.
국내 산업계, 경제계, 경제연구소들은 올해 산업전망의 가장 큰 변수로 트럼프의 통상정책을 꼽고 있다. 특히 트럼프가 대선 후보 시절 각국에 보편 관세 10~20%, 중국에게 60~100%를 부과하겠다는 정책을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어, 트럼프가 취임하면 가장 먼저 각국에 대한 무역불균형 문제부터 해결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은 관세 시나리오는 10~20% 정도로 예상되는 보편 관세다. 산업연구원의 ‘2025 경제‧산업 전망’에 따르면 미국이 한국에 보편적 관세 10~20%를 부과하고 중국에 60%를 부과할 경우 한국의 대미 수출은 약 8.4%~14% 감소할 전망이다. 산업연구원은 10% 관세를 부과하면 한국의 대미 수출은 2021~2023년 평균 수출액 대비 55억달러(8.4%) 감소하고 20% 관세를 부과할 경우 93억달러(-14%) 감소해 경제성장률은 0.1~0.2%p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의 대선 후보시절 공약을 척도로 전망해 보면 산업별 영향은 세부적으로 갈릴 전망이다. 우선 트럼프의 정책이 한국 반도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복합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상공회의소는 트럼프의 정책이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상당한 불확실성을 가져올 것이라고 바라봤다. 반도체법의 가드레일 조항을 강화하고 동맹국 투자 요건을 더 엄격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아서다. 예를 들어 한국, 대만, 일본, 유럽 반도체 기업들에게 투자 인센티브보다 투자를 하지 않을 경우에 대한 페널티를 부과하는 정책이 나올 수 있다고 대한상의는 전망했다. 다만 미국의 대중국 수출·투자 통제 강화로 중국의 첨단 반도체 성장이 지체될 경우, 한국 기업들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도 열려있다.
한국무역협회는 트럼프의 정책이 한국 반도체 산업에 양면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주요 변수로는 반도체지원법(칩스법)의 축소 또는 폐기 가능성을 지목했다. 또한 보편적 관세 도입으로 인한 무역 장벽 강화도 변수로 꼽았다. 반면 대중국 제재 강화로 인한 반사이익도 생길 가능성도 존재한다.
산업연구원은 트럼프의 정책이 한국 반도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산업연구원은 미국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투자가 미국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반도체 보조금 정책의 급격한 변화 가능성은 낮다고 바라봤다. 오히려 대중국 제재 강화로 한국 기업들에게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배터리는 트럼프 정책으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무역협회는 트럼프 행정부가 전기차 보조금을 대폭 축소하고 배터리 소재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한국 배터리 산업에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특히 미국의 배터리 소재 수입 시장에서 한국이 1위를 차지하고 있어, 관세 부과 시 직접적인 타격이 우려된다고 바라봤다. 산업연구원은 트럼프 집권 시 IRA(인플레이션감축법) 폐지 또는 생산·소비 보조금 축소로 한국 배터리 주요 기업의 사업계획 재검토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자동차 산업도 부정적인 영향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자동차 산업은 트럼프 당선에 따른 통상 환경 악화와 중국 자동차 산업 팽창으로 인해 업황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자동차 수출은 작년보다 3.1% 감소한 270만대로 예상된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는 “대미 흑자 비중이 가장 높은 자동차·자동차부품의 추가 관세 도입 가능성, 주요국의 재고량 증가, 보호무역 정책에 따른 현지화 비중 증가 등 불확실성 요인이 크다”고 분석했다.
한국무역협회도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자동차 업계를 둘러싼 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졌다고 평가했다. 수입 자동차에 대한 관세 부과 시 한국의 대미 수출 물량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일부 수익성 하락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나아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보조금 축소 등 친환경 정책 후퇴 시 미국 전기차 시장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트럼프의 보편관세 10~20%가 실제 적용될 경우 한국 자동차 수출액은 222억~448억달러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산업연구원은 보편관세가 적용될 경우 자동차 산업의 부가가치 감소 비중이 가장 크며, 관세 규모에 따라 수출액의 10~16%가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은 철강 산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대한상의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와 수입쿼터 축소 가능성이 높고, 자동차·건설 등 수요 산업의 부진, 중국의 저가 공세 등으로 인해 하방 리스크가 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철강협회는 올해 수출이 작년 대비 1.6%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여전히 트럼프 관세 정책 등의 하방리스크가 큰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산업연구원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한국의 철강시장이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전망하며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철강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석유화학 산업도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석유화학 산업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와 수입쿼터 축소 가능성이 높고, 중국의 저가 공세 등으로 인해 하방 리스크가 큰 상황이라고 전망했다. 한국무역협회도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관세 정책, 중국발 공급 과잉 등이 한국 석유화학 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신용평가는 트럼프 정부의 화석연료 기반 산업 지원과 공급 확대, 이에 따른 유가 하락(원재료 부담 완화), 미국 석유화학 수요(미국향 수출) 증가 가능성 등은 긍정적 요인이지만 미국의 대중국 무역 적자규모 축소를 위한 관세율 인상 정책의 경우, 국내 석유화학 산업에 부정적 파급효과가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조선업과 건설업은 가장 큰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트럼프 행정부는 화석연료 생산을 늘리고 친환경 정책을 약화시킬 것으로 예상돼 이는 LNG(액화천연가스)와 LPG(액화석유가스) 수요 증가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에 조선업의 경우 에너지 운반선 수요가 증가할 전망이다. LNG와 LPG 수요 증가로 인해 에너지 운반선 건조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화석연료 생산과 수출이 늘어나면, 이를 운반할 선박 수요도 증가한다.
건설업도 수혜를 받을 전망이다. 특히 트럼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지속적으로 언급해 와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건설업은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을 포함한 해외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 기회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의 제조업 강국 정책에 따라 미국 내 인프라 투자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어 한국 건설사들의 미국 시장 진출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올해 수출은 인공지능(AI) 산업 성장으로 인해 AI PC(컴퓨터)·모바일, 온디바이스 AI 신제품 출시, 자율주행, 국방용 AI 개발 등으로 인한 반도체 수요가 지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전통적 효자 품목인 반도체와 무선통신기기 등 IT 수출이 이끌 것”이라며 “다만 트럼프 2기 미국의 고율 관세 정책은 한국 수출에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미국의 관세 정책이 한국 수출 성장세를 더 둔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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