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뉴스영 변영숙 기자) 습지는 생물과 인간이 어우러져 함께 살아가는 생명의 땅이다. 다양한 동식물에게 서식처를 제공하고 이 생명체들은 자연 생태계를 안정된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게 하는가 하면, 기후조절 기능과 수질오염 물질을 제거 기능도 수행한다.
습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농경지 확장이나 갯벌 매립 등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습지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1971년 2월 2일 처음 전 세계적인 습지 보호 조약인 ‘람사르협약’이 맺어졌다. 람사르협약 가입국인 우리나라에는 모두 25개의 습지가 람사르협약에 등록되어 있다.
강화 매화마름 군락지, 두웅습지, 무안갯벌, 운곡습지, 오대산국립공원습지, 한반도습지, 우포늪, 제주의 물영아리 오름, 제주 1100고지 습지 등이 대표적이다.
□ 장항습지-국내24번째 람사르습지
한강 하구에 조성된 고양 장항습지는 2021년 국내 24번째로 람사르습지로 등록됐다. 고양시 신평동, 장항동, 법곳동에 걸쳐 있으며 면적 5.95k㎡, 길이 7.6km 규모로 멸종 위기종 33종, 천연기념물 24종, 해양보호생물 5종 등이 서식하고 있다.
장항습지는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물게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기수역으로 민물 식생과 염지 식생이 공존하는 곳이다. 버드나무와 말똥게가 독특한 공생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고 있고 멸종 위기 야생동물 2급 재두루미 등을 비롯해 큰 기러기, 개리 등 매년 3만 마리 이상의 철새가 날아드는 생태계의 보고이다.
2024년 환경부는 장항습지의 가치를 인정해 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했다.
□ '내년에 또 와라'...'장항 철새급식봉사대'
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된 장항습지가 훼손되지 않고 더 많은 철새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먹이와 잠자리를 만들어 주는 사람들이 있다.
고양시 ‘장항습지드론급식봉사대'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드론을 이용해 장항습지를 찾아드는 철새들에게 먹이를 제공한다.
봉사대는 매주 수요일 오후가 되면 드론 장비와 볍씨를 가득 싣고 겨울 걷이가 끝난 텅 빈 들녘으로 나선다. 장항습지를 찾는 철새들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서이다.
10여 명의 봉사단원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볍씨를 실은 드론은 순식간에 하늘로 솟아올라 볍씨를 살포하기 시작한다. 드론을 따라 볍씨가 가루처럼 날린다. 순식간에 ‘급식 봉사’를 끝낸 드론은 다시 볍씨를 싣고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날아오른다. 봉사단의 볍씨 뿌리기는 보통 한 시간 정도 계속된다.
한 번에 뿌리는 볍씨의 양은 500kg이다. 고양시는 올겨울 약 20톤의 볍씨를 먹이로 제공할 계획이다.
고양시는 장항습지를 찾는 철새에게 드론을 이용해 먹이를 주기 시작한 것은 2년여 전부터이다. 드론 살포가 조류 독감에도 효과적이라는 전문가들의 말을 반영해 지난해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올해부터 전면적으로 실시하게 됐다. 과거 트랙터나 사람이 직접 먹이를 줄 때 보다 친환경적이라는 평이다.
봉사단은 1종 드론 조종 자격증을 보유한 농민, 공무원, 시민들로 구성돼 있다. 봉사대는 내년 3월까지 매주 2회 토요일과 수요일 정기적으로 급식 봉사를 할 예정이다.
단장을 맡고 있는 이준석 씨는 “아무런 대가가 없는 활동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장항습지를 지키는 활동에 참가할 수 있어 큰 보람을 느낀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 고양시, 철새에게 먹이와 잠자리 제공... 살포하는 볍씨는 어떻게 조달할까.
고양시는 장항습지에는 시 소유의 벼 경작지 12개가 있다. 고양시는 농부에게 농사를 위탁하고 수확한 벼를 수매하여 철새 먹이로 활용한다.
12개 경작지는 1~12번까지 번호를 매겨 관리한다. 1번 논에는 다른 논들과 달리 자박자박하게 물이 채워져 있다. 이 또한 철새를 위한 배려이다.
재두루미가 잠든 시간 천적인 삵이 공격해 올 때 ‘첨벙’대는 물소리를 듣고 피하라고 일부로 논에 물을 채워 두는 것이다. 또 다른 논에는 철새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볏짚을 존치해 둔다.
시 관계자는 “겨울철새먹이주기’등 매년 겨울마다 장항습지를 찾는 철새들에게 먹이와 잠자리를 제공해 생태계의 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한다”며 “드론으로 먹이를 주기 시작한 이래 장항습지를 찾는 철새 수가 확연히 늘어 지난달에만 3만 마리가 넘는 철새가 장항습지를 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급식봉사단 활동을 더 잘 하기 위해 드론조종자격증까지 땄다”며 “언젠가 직접 드론을 조종해 먹이를 줘 볼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멸종 위기에 처한 철새들을 보호하고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공생’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 장항 군막사, ‘람사르 고양 장항습지 생태관’되다... 고양 생태관광 거점으로 우뚝
고양 시는 생태관광과 생태교육의 거점 시설인 ‘람사르 고양 장항습지 생태관’을 올 10-11월 시범운영했다. 군인들이 사용하던 막사를 리모델링한 생태관은 상설전시실과 미디어아트관, 4D 영상관 및 전망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항군막사는 한강 하구의 무장간첩의 침투를 막기 위해 설치한 한강 철책을 지키던 제9보병사단의 막사였다. 실제로 1980년 3월 23일 새벽 2시 50분쯤 북한의 3인조 무장간첩 침투 사건이 일어났던 곳이다.
2008년 한강철책 제거 협약에 따라 2018년 군 병력 철수와 김포대교~일산대교 구간 철책 제거 작업이 완료됐고, 고양시로 군 시설이 인계됐다. 이후 설치됐던 지뢰 제거 작업을 하다 희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분단의 상흔이 가득했던 장항습지는 이제는 ‘생명의 땅’이자 ‘평화의 땅’으로 거듭났다.
습지 해설사가 들려주는 장항 습지 이야기가 무척이나 흥미롭다. 전에 알지 못했던 신기한 세상을 만날 수 있다. 버드나무와 말똥게의 공생관계는 새삼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3개 벽면을 활용한 미디어아트를 통해 펼쳐지는 장항습지의 4계절은 단연 관람객을 압도한다. 마치 실제로 장항습지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다.
생태관은 11월까지 시범 운영을 마치고 정식 개관할 예정이다. 정식 개관일은 아직 미정이다.
버드나무 군락 가득한 장항습지는 ‘이름 모를 수많은 생명체들의 천국’이었다. 두루미가 날아들고, 가재와 게가 노래하는 땅이었다.
전망대를 오르면 차들이 쌩쌩 달리는 자유로 넘어 드넓은 장항습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철새들이 수런수런 잠자리를 날아들 것이다. 화려한 군무를 추면서. 봉사단이 뿌린 볍씨가 먹이를 찾아 헤매는 고단한 철새의 날갯짓에 작은 휴식을 줄 것이다.
이제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습지의 생태적 특성을 보존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생태관광지역 지정과 함께 자전거도로 및 둘레길 조성 등으로 인한 탐방객의 급격한 증가와 주변 환경의 변화는 자칫 철새 서식지 환경의 교란과 파괴로 이어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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