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여민의 뮤지엄로드]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 : 꼭 하고 싶은 말①에 이어
[문화매거진=최여민 작가]
[나의 조국]
어릴 적,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 애국가를 부를 때면 늘 가슴이 두근거리곤 했다. 그것이 조국에 대한 벅찬 감정 때문인지, 아니면 음정을 틀릴까 하는 긴장감 때문인지는 흐릿하다. 다만, 그런 몇몇 날들을 제외하면 조국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 없었음은 분명하다.
나의 조국은 부모님과 조상들이 대대로 살아온 땅이자 내가 태어나고 자라온 곳이며, 앞으로 태어날 후대가 발을 딛고 살아갈 터전이다. 조국은 각자의 처지에 따라 자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리움을 안겨주기도 하며, 때로는 분노와 먹먹함을 던져주기도 한다. 평소에는 너무나 익숙해 일상에 파묻혀 있는 조국이지만, 시대와 상황에 따라 그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김창열의 ‘나의 조국’은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이 나타난다. 그가 경험한 한국 전쟁과 같은 역사적 사건은 물방울로 표현되어 복합적이고 섬세한 감정을 전달한다. 신문지 위에 물방울과 함께 등장하는 강렬한 선들은 마치 상처, 분열, 그리고 고뇌를 암시하는 듯하다. 그의 표현은 우리나라가 겪은 역사적 갈등과 더불어 그의 내면적 갈등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면서도, 그 모든 고비 속에서도 기적적으로 꺾이지 않는 강직함이 함께 깃들어 있다.
고귀한 정신을 이어받아 더 나은 미래의 조국을 위해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 어릴 적 애국가를 부르던 아침 조회 시간 이후로 한 번도 떨리지 않던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혼란스러운 12월의 추운 거리로 겁 없이 나선 이들, 잠을 설치며 응원의 마음을 전하는 이들, 차분히 자신의 생각을 글과 말로 알리는 이들까지—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조국을 사랑하고 있다. 나의 조국은 때로 상처받고 흔들리기도 하지만, 수많은 눈비를 맞으며 지나온 시간 속에서도 그 뿌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우리 모두의 이야기와 역사가 이 땅 깊이 새겨져 있다.
[투쟁]
더운 날엔 에어컨 아래에서 시원한 바람을 쐬고, 추워지면 보일러와 두툼한 외투로 몸을 녹인다. 배가 고프면 냉장고를 열어 간편히 한 끼를 해결한다. 언제나 준비된 적정한 온도와 견뎌본 적 없는 배고픔은 투쟁할 필요가 없게 만든다. 하지만 아무리 온실 속 화초라고 해도 잔잔한 투쟁은 존재한다. 화염병을 쥔 적 없을 뿐이지 화초 역시 더 성장하기 위해 늘 고분분투한다. 스스로를 발견하고, 불안한 가치와 존재에 대해 고민하며 마주한 한계를 인정한다. 투쟁의 끝에서 얻은 것이 세상에겐 무의미하게 여겨질지라도, 그 과정에서 내 안의 쌓인 티끌만큼의 용기와 인내가 덧대져 나로 자라난다.
투쟁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당장의 안락함을 포기하고 불확실한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 이와 함께 고통과 희생, 두려움과 분노등 온갖 부정적인 것들이 따라붙지만 그것마저 밝은 내일을 향한 염원과 함께 삼킨다. 개인의 투쟁은 스스로의 갈등으로 끝날 수 있지만, 사회, 정치, 경제 등 모든 영역에서의 투쟁은 더 큰 갈등과 좌절 속에서 견뎌내야 한다. 때가 되어 사활을 걸어 모든 것을 내던질 준비가 되었다. 결의에 찬 마음으로 투쟁을 시작했다면, 모든 것을 잃게 되더라도 나아가야 한다.
김창열은 물방울을 통해 맞선다. 그의 작품 속 물방울은 투쟁의 본질을 섬세하게 담아내며, 신문지 위에 그려진 맑고 투명한 물방울과 대비되는 검은색과 붉은색, 그 위로 스민 강도 높은 노란색은 투쟁의 긴장감과 격렬함을 느끼게 하는데 모자람이 없다. 이는 투쟁에서 피할 수 없는 상처와 분열이 확고한 의지와 불굴의 에너지로 승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물방울은 투쟁의 고통과 정화, 그리고 희망과 재생의 가능성을 동시에 품으며, 투쟁이라는 주제의 보편적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그가 꼭 하고 싶었던 말은 그 어느 때보다 완곡하면서 강렬하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시각적 아름다움을 넘어, 깊은 성찰과 강렬한 메시지를 품고 있다. 신문지와 물방울이 결합된 그의 작품은 복합적이면서도 감성적인 해석을 이끌어내며, 물방울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치유의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그것은 시간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아, 우리의 흔들림과 멈춤을 가늠하게 하는 기준이 된다.
Copyright ⓒ 문화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