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구씨 작가] 최근에서야 이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음을 조금 더 실감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은 대체로 안 좋은 경험으로 인해 더 깊이 생각해 보는 경우가 많다. 나와 다르다는 건 사실 존중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다르다는 것은 익숙하지 않기에 존중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일이 된다. 나와 다른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살아간다는 건 단순히 거리를 걷는 것이나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쉽게 느낄 수 있다. 다른 사람으로 뒤덮인 지구에 살면서 다르기에 존중하지 못한다면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한 삶이 될 것이다.
함께 있는 것은 사랑스럽다가도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멈춰 선 차처럼 우–뚝 멈추게 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어떠한 의심은 확신이 되고 어떠한 생각은 증거를 잡은 듯이 기쁘다. 또 한편으로 그 사람을 더 믿고 싶은 마음도 든다. 나는 종종 내가 누군가의 허점을 잡기 위해 애쓰는 생각의 꼬리를 목격한다. 그 생각은 정말 쓸데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무엇이든 집중하면 옆이 안 보이기 마련이기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그리고 또 꼬리에 꼬리를 물며 그 꼬리의 꼬리가 어느새 아주 작아졌을 때에서야 작은 감정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살아가며 몇 번이고 인지하고 후회하면서도 계속해서 드는 생각은 ‘어떻게 의심하는 것을 안 할 수 있는가’라는 조금은 인간적인 외침은 우로보로스 같은 마음의 또 다른 시작점이 된다.
다시, 나는 누군가를 존중할 수 있을까? 나는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 나는 얼마나 복잡한 상황을 견뎌내야 하는가. 생각해 보면 내가 가장 가까이해 온 영화나 책은 단순한 감정선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삶에서 경험하는 복잡한 감정은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다고 말한 스파게티를 만들어 왔기 때문에 불같이 화가 나는 속마음’과 비슷하다. 상황과 글을 놓고 보아도 그 감정선이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는 게 선행되지만 아주 찬찬히, 더 찬찬히 뜯어보면 나 스스로만 알게 되는 부끄러운 이유가 있는 것이 복잡한 감정이다.
가끔 영화나 책에 그런 감상 리뷰가 있었던 것 같다. ‘복잡한 감정선을 다루는 영화!’ ‘두 인물의 복잡한 관계 보여주는 책!’ 그런 말들은 이런 감각으로부터 비롯된 말일까. 많은 고민과 불평 끝에 또 다다르게 되는 것은 결국 ‘사람에게 잘하자’라는 문장이다. 우로보로스.
약간은 머리를 징징거리게 하는 이런저런 고민과 달리 연말이라 약속이 잦다. 춥지만 따뜻한 시간들이 캘린더에 자주 업데이트되고 나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걷고, 입김을 내며 기다리고, 따뜻한 곳에서 따뜻한 음식과 함께 웃는다. 사람들과 같이 시간 속에 있다는 사실은 또 다른 시간을 상상하게 하며 순간 문득 두려운 감정을 갖게 하지만 그럼에도 즐거운 그날을 기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스스로 다짐해 본다.
모두가 2024년 이 연말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지구에서 누군가의 눈을 바라보며 매일을 보내는 것은 어떤 날은 분명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마주하고 함께 하지 않을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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