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구씨 작가] Have you ever dreamt of a better version of yourself?
Younger, more beautiful, more perfect. One single injection unlocks your DNA, starting a new cellular division, that will release another version of yourself. This is the Substance. You are the matrix. Everything comes from you. Everything is you. This is simply a better version of yourself. You just have to share. One week for one and one week for the other. A perfect balance of seven days each. The one and only thing not to forget: You. Are. One. You can't escape from yourself. -영화 ‘더 서브스턴스’ 나레이션 중-
고등학교 교복을 입었을 즈음부터 다이어트라는 단어를 인지하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다이어트가 등장했다기보다 웰빙의 논점이 흐려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웰빙이라는 단어와 함께 등장한 자기관리 비스무리한 것은 모두가 함께하는 다이어트였다.
“모두 함께 말라보아요!”를 실천하듯 함께 어플을 깔고 서로의 식단을 체크했고, 외모를 평가했다. 해외 패셔니스타의 사진이 도배되면서 핸드폰 속과 현실에는 틈이 생겼다. 모델들의 아름다운 사진들을 배경화면으로 놓고 사람들은 식단을 하며 체중감량을 했다. 내가 기억하는 미디어는 그러했다. 다이어트 음식은 식사를 지배했고 덴마크 식단, 아이유 다이어트 식단 등 말도 안 되는 칼로리와 영양소를 내세우는 방식과 간헐적 단식, 채소 과일식 그리고 변질된 비건식단이 우리나라에 안착했다. 다이어트를 담당하는 업체가 눈에 띄게 증가했고 약과 시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은 ‘군살’을 지배해 나갔다. 정말로 건강하거나 아름다운 몸이 되기도 했지만 꾸준한 관리에는 돈이 들었고 어떤 이들은 기술에 발맞춰 간단한 보정 어플로 맞이하는 아름다움에 만족하는 듯 보였다. 길거리의 한국 사람들은 아름다워졌고 미의 기준은 통일되어 가고 있다.
많은 예술가들이 미와 추를 고민하는 시간 동안 식품공학은 발전해서 최근에는 모든 음식이 ‘제로’를 내세우며 광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기술의 발전은 빠르게 아름다운 이의 사진을(모공도 없는) 눈앞(핸드폰 스크린)에 들이밀었다. 누구도 거울에서 만족감을 얻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고 많은 돈과 시간을 쇼핑에 사용한다. 뷰티와 옷 브랜드는 매해 생겨나고 또 사라진다.
내가 경험해 온 한국을 통해 ‘더 서브스턴스’를 풍족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의 중요한 요소는 에이징(aging)이다. K-화장품, 화장법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시대에 우리나라에서 반대되는 안티에이징이라는 단어로 흔히 마주해 오던 현상이다. 한국에서 자라오며 노화과 관련된 두려움은 스스로 거울과 신체를 보며 느끼기보다 외부적으로 강요받아 왔던 것 같다. 그런 나에게 또는 우리에게 영화 ‘더 서브스턴스’는 60대를 넘어선 ‘데미무어’가 아니더라도 익숙한 이야기였다.
영화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면 ‘더 서브스턴스’의 주인공 앨리자베스(데미무어)는 과거 잘 나가는 스타였지만, 늙었다는 무대 밖의 뒷담화를 들으며 동시에 자신이 사랑하던 무대에서 내려오게 된다. 수도 없이 서 본 빛나는 무대와 달리 내려오는 것은 그 긴 스타의 시간 동안 겪은 적 없었을 어쩌면 가장 비참한 일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모습과 어떤 것의 끝남에 절망하던 찰나 우연한 기회로 늙어버린 자신의 ‘상위버전’이 되는 법을 얻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여기서 자신의 상위버전이 등장하는 방식이 꽤 흥미롭다. 나의 상위버전은 자신에게 주사를 통해 스스로 주입하는 ‘활성제(Activator)’의 영향으로 자신의 등을 쪼개며 태어난다. 태어나는 과정에서 본체는 갈비뼈나 신체 내부의 장기가 어떠한 뒤틀림과는 무관하게 ‘탄생’하며 말 그대로 알을 깨고 나오듯 새로운 신체가 등장한다. 장면의 연출을 통해 나는 영화의 신체가 점점 내가 알고 있는 신체와 다른다는 것을 감각할 수 있었다.
영화는 분명 노화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상위버전의 나는 간단하게 나의 젊은 상태가 아니다. 완벽히 다른 아름다운 인간이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거울로 마주하며 본체의 등(엘리자베스의 등)을 꿰매고 7일간 아름다운 상위버전의 나(수)로 살아가는 것 전체 내용이다. 아름다운 나(수)로 살아가는 동안 벌거벗은 채 등이 꿰매진 본체(엘리자베스)를 돌봐야 한다. (돌보기보다는 대체식만 주입해주면 된다.)
모든 과정에서 영화에서는 계속해서 ‘둘은 하나다 | You. Are. One.’라는 말을 강조한다. 7일 이상의 아름다운 상태를 유지하게 될 경우 본체는 그만큼의 노화를 감당하며 본체의 신체 일부는 배속으로 늙게 된다. 두 개의 인간 모두 ‘나’이지만 둘은 기억을 공유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아름다운 ‘나(수)’가 깨어났을 때 본체의 ‘나(엘리자베스)’가 더럽혀 놓은 방과 폭식한 상태를 보며 분노하는 장면을 통해 드러난다. 둘은 정신적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신체적으로 묶여 있고, 서로의 미와 추의 교환은 절대적으로 사람은 얻고 한 사람은 잃는 과정을 통해 그 연결성은 잔인하게도 절대적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가며 하나의 괴물이 등장한다. 괴물은 신체의 일부인 피부와 얼굴, 손, 귀, 가슴이 제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에 신체가 아닌 상태로 존재한다. 각각의 파트는 신체이지만 잘못된 위치와 단단함 만으로 신체는 시각적으로 거부된다. 무대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하나 둘 일어서서 냅다 소리를 지르며 몬스터를 쏴 죽이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한다. 새로운 크리처(엘리자-수)의 죽음은 젠가가 무너지는 것처럼, 질소 포장이 터지는 것처럼 무식하게 쓰러지고 뭉개진다.
‘더 서브스턴스’는 여성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극단적인 추를 통해 극단적인 미를 발견할 구실을 만든다. 가장 아름다운 수의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이빨과 그럼에도 무대 위에 서는 엘리자 수.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이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닌 것을 향해 비명을 지른다. 아름다운 것은 결국 답이 정해져 있었고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다. 심장이 아닌 얼굴만 남은 엘리자베스가 스스로(살아남아) 결국 자신의 가장 빛나던 자리를 찾아간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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