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야당이 대통령에 이어 권한대행까지 탄핵을 추진하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한덕수 전 권한대행이 쥐고 있던 국정 배턴은 국무위원 서열 2위인 최상목 권한대행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향했다. 혼란의 시대 속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 권한대행 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라는 역대 타이틀이 탄생했다.
지난 24일 국회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이 김건희·내란 특검인 이른바 ‘쌍특검’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시사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곧바로 탄핵을 당론으로 채택한 것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한 권한대행은 내란 행위를 지지,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과 같다. 또 다른 헌정 질서 문란과 국헌 문란 행위로 독립적인 내란 행위라고 생각한다”며 책임을 묻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투아웃
당시 한 전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 사유는 총 5개였다. 구체적으로는 ▲대통령에게 채상병·김건희 특검법 거부권 건의 ▲12·3 내란 사태 당시 비상계엄 공모·묵인·방조 ▲내란 사태 이후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 공동 국정운영 체제 시도 ▲권한대행으로서 내란 상설특검 후보 추천 의뢰 지연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 등이 명시됐다.
일사천리로 탄핵안이 작성됐지만 민주당은 발의 직전 갑작스럽게 노선을 틀었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그동안 민주당은 상설특검 후보에 대한 추천을 즉시 의뢰할 것, 김건희 특검 및 내란 특검을 즉시 공포할 것, 헌법재판관을 지체 없이 임명할 것 등을 요구해 왔다”며 “26일에 우리의 요구사항이 이행되는지 인내를 갖고 기다리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표면적으로는 헌법재판관 임명 여부까지 지켜보겠다는 주장이지만 권한대행 탄핵이 가져올 파장을 염두에 두었다는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야당은 한 전 권한대행이 12·3 내란사태 당시 국무회의를 소집해 내란에 적극 동조했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즉각 탄핵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상화’를 기조로 하는 민주당에 잇따른 탄핵은 부담스럽다. “이 대표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민주당이 ‘정국 혼란’과 ‘셀프 수습’을 반복하고 있다”는 프레임이 씌워지면 오히려 자충수로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신중론을 내세우던 민주당은 이틀 만에 다시 한 전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안을 꺼내 들었다. 지난 26일 한 전 권한대행의 대국민담화가 탄핵 도화선이 됐다는 평이 나온다.
그동안 여야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의 주요 변수인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를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공은 한 전 권한대행에게 넘어갔고 그는 지난 26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는 여야 합의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사실상 민주당의 요구를 거절했다.
한 전 권한대행은 여야가 합의된 안을 제출하기 전까지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하겠단 입장을 밝혔다.
또다시 국회에 떠넘긴 헌법재판관 임명
“더는 못 참아” 한 대행 탄핵 ‘풀악셀’
그는 “대통령 권한대행은 나라가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안정적인 국정운영에 전념하되,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 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우리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정신”이라며 “불가피하게 이런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면 국민의 대표인 국회서 여야 합의가 먼저 이루어지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 헌정사에서 단 한 번도 깨진 적 없는 관례”라고 설명했다.
이에 반발한 민주당은 “권한대행이 아니라 ‘내란대행’임을 인정했다”며 담화 직후 국회 본회의에 탄핵안을 보고했다. 이튿날인 지난 27일 한 전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안은 여당의 집단 항의 가운데 재석 의원 192명 중 찬성 192표로 통과됐다.
이후 정치권의 시선은 차기 국무위원인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 장관에게 향했다. 한 전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이 가결돼 직무가 정지되면 정부조직법 제26조에 따라 다음 순번인 최 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되기 때문이다.
최상목 권한대행은 지난 30년 동안 기재부 등을 두루 거친 정통 관료 출신으로 통한다. 윤석열정부의 초대 경제수석비서관을 역임했으며 지난해 12월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으로 임명됐다.
윤정부 초대 인사지만 민주당서 “한덕수보다 최상목이 낫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최 권한대행이 현 정부와 다소 선을 긋는 듯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비상계엄 사태 당일 국무회의서 윤 대통령에게 반대 의견을 냈다고 밝힌 국무위원 중 한 명으로 알려졌다. 이후 “계엄을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비상계엄 해제 이후 사의를 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현재까지 직을 유지하고 있다.
“차라리 최가 낫다” 차선책 선택
달러 고공행진에 무리수 비판도
한 전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이 가시권에 접어들자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최 부총리는 국무회의서 비상계엄에 대해서 가장 먼저 가장 강하게 반대하고 가장 먼저 일찍 국무회의장을 뛰쳐나온 사람”이라며 “국정 공백 상태서 적극적으로 국무회의에 임하는 것 등등을 봐서는 한 전 권한대행보다는 낫다”고 평가했다.
한 야당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민주당과 최 권한대행 간의 물밑 접촉 가능성을 언급하며 “그는 경제 우선주의다. 비상계엄 후폭풍이 경제 상황을 악화시킨 만큼 이 정권을 수습하고 싶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야당이 추진하는 각종 탄핵과 특검에 대해 원활한 협상이 이루어질 것이란 기대감도 모였다.
그러나 최 권한대행도 결국 윤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이다. 두 번째 권한대행을 맡더라도 민주당의 기대를 충족하기 어려울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게다가 최 권한대행이 한 전 권한대행과 마찬가지로 쌍특검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민주당은 또다시 탄핵 카드를 꺼내 들 수밖에 없다. 권한대행의 권한대행까지 탄핵하자니 민주당의 셈법도 복잡하다.
한 여권 관계자는 “민주당은 자신들이 만든 잣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탄핵, 탄핵, 또 탄핵하겠다는 방침”이라며 “최 권한대행이 탄핵당하면 차순위 국무위원인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권한대행을 승계한다. 이 장관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때도 탄핵안을 꺼내 들 것이냐”고 의문을 표했다.
최 권한대행은 지난 27일 오후, 직 승계 이후 입장을 밝혔다. 기재부는 최 권한대행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무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현 상황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송구하다”며 “정부는 국정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낙장불입
국민의힘은 최 권한대행 체제가 오히려 국정 혼란을 키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비상계엄 이후 달러가 1480원까지 치솟았고, 경제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경제부총리의 역할이 중요한데 이런 상황서 권한대행까지 떠안는다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는 설명이다.
‘최상목 권한대행’ 시나리오에도 민주당의 고심은 깊다. 탄핵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면서 정국이 혼란에 빠진다면 일부 화살은 민주당에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에서도 최 권한대행에 대한 평가가 갈리고 있다. 야당은 그에게 ‘온건파’의 모습을 기대하지만 자리에 앉기 전까지 속내를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민주당의 선택에 어떤 책임이 따를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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