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 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 자정
자정(子正)을 어떻게 할 것인가.
뉴스에서 '자정'을 잘못 쓰는 경우가 너무 많다. 예컨대 20일 밤 8시에 "우리 시각 오늘 밤 자정 한미 정상회담이 열립니다" 하면 오류다.
자정을 한밤중으로 생각해 하루를 마무리 짓는 즈음으로 여기는데 잘못이다. 자정은 하루의 시작이다.
즉 0시다. 십이간지(十二干支)에서도 자시(子時)가 23시~01시로 제일 먼저 나오지 않던가. 정(正)도 시작이란 의미다.
앵커가 말하는 오늘 밤 자정은 20시간 이상 지난 시점이 되고 만다. 사실 20일 자정은 그 전날인 19일 밤 24시와 겹치는 시각이다. 그러면 "내일 밤 자정 회담이 열립니다"가 옳겠지만, 그러면 또다시 시청자는 헛갈린다.
따라서 이럴 땐, "우리 시각 오늘 밤 12시, 한미 정상회담이 열립니다"로 하는 게 정확한 의미 전달에 용이하다.
◇ 첩첩산중과 점입가경
"가수 000가 불법 촬영물 유포 혐의로 추가 입건됐습니다. 성매매 알선 혐의도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데요. 여기에 횡령·배임·탈세 혐의까지 첩첩산중입니다. 더구나 앞선 해명들 역시 거짓말로 탄로 나고 있습니다. 000 기자의 보도입니다."
첩첩산중(疊疊山中)은 산세가 더 깊어진다는 뜻이다. 하려는 일이 더 막히고 어려워지고 가능성이 작아질 때 쓰는 표현이다.
'부장 결재도 받아야 하고, 국장도 설득해야 하고, 사장의 최종 판단도 기다려야 하니 첩첩산중일세(○)'
점입가경(漸入佳境)은 "가면 갈수록 경치(景致)가 더해진다"라는 의미로, 보통 어떤 일·사건·상황이 더 보태지거나 심각해지거나 흥미로워지거나 할 때 비유적으로 쓰인다.
가수 000 사건은 당사자 입장에서는 '첩첩산중'이지만, 국민·시청자 입장에서는 비록 혀를 끌끌 차기는 하겠으나 '점입가경'이 어울린다.
◇ 지켜본다고?
"지켜보겠습니다"
뉴스 진행자나 시사 프로그램 MC가 클로징 멘트할 때, 곧 잘 쓰는 표현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다"로, 별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말이란 상대적이며 특유의 분위기와 뉘앙스가 있다.
거기다 방송국이라는 공간은 언어 예절이 비교적 엄격히 작동되는 곳이다. 시청자가 보고 배우고 따라 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네가 앞으로 어떻게 하는지 지켜볼 거야" 학생 때, 선생님께서 많이 해주시던 말이다. 대개 학생 누군가가 잘못하고 난 후 용서해줄 때 쓰셨다. 관용적인 쓰임이며 제대로 된 사례다.
지켜보겠다는 건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써야 어울린다. 혹은 잘못이 없는 당당한 사람이 일견 어수룩하고 모자란 사람을 대하며 사용해야 대체로 걸맞다. 우리 언어 정서가 그렇다.
뉴스 진행자들이 매사에 그렇게 당당한 사람들인가? 고위 공무원이나 기업 관계자들은 앵커 앞에서 독 안에 든 쥐 신세여야만 하나? 요즘 오만하고 무례한 뉴스 진행자가 많다.
'지켜보겠다'라는 표현에는 문제가 또 있다. 실제로 잘 지켜보는지 아닌지 시청자는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잘 지켜 봤으면 같은 사건, 사고가 계속 일어날 일이 만무하다.
따라서 허언(虛言)에 가깝다. 이게 혹여 보통 사람의 관계에서도 맺음말로 자리 잡지나 않을까 저어한다. 대안은 무엇일까? 자기 자신이 아니라 대신 '국민'을 넣는 것이다.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걸 잊지 마시고 잘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국민들께서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등으로 바꾸는 게 좋다.
◇ 옷깃을 여미다?
옷깃은 목둘레를 영역으로 한다. 옷의 앞부분이 아니다. 영어로도 칼라(collar)다. 칼라는 옷의 중앙이나 앞부분은 해당하지 않는다. 옷깃은 여미는 게 아니라 세우는 거다.
정작 여며야 할 대상은 옷깃이 아니라, '옷섶'이다. 앞을 여밀 때 중심부로 오는 천을 말한다. 옷이 벌어진 채로 있거나 단추가 풀려 있을 때 가지런히 반듯하게 합치는 행위, 다시 말해 옷매무시를 단정히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옷깃을 여미다'는 비유적 관용 표현으로도 곧잘 쓰인다. 마음을 다잡는다거나 새 출발의 각오, 혹은 경건한 마음 자세 등을 나타낼 때 사용되지만, 옷섶을 여민다고 해야 제대로 한 것이다. 옷깃을 세우는 건 외려 당당하거나 자신만만하거나 혹은 오만한 태도나 모습 등을 보일 때 쓰여야 더 적절하다.
비슷한 오류로 '꿰다'가 있다. 첫 단추를 잘못 꿰다/뀄다/꿰었다 등으로 많이 쓰지만 잘못이다. '꿰다'는 실/끈/구슬이 대상이다. 단추는 끼우는 것이다. 놀랍게도 '끼다'도 맞는다. '끼우다'의 준말이 그냥 '끼다'이기 때문이다.
첫 단추부터 잘 ①끼어야 ②껴야 ③끼워야 한다. ①②③ 다 맞는다. '꿰다'는 단추에서는 쓸 수 없다.
'옷섶을 여미다 | 옷깃을 세우다'
'실을 꿰다 | 단추를 끼우다'
강성곤 현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 전 KBS 아나운서.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어특위 위원. ▲ 전 건국대·숙명여대·중앙대·한양대 겸임교수. ▲ 전 정부언론공동외래어심의위원회 위원. ▲ 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어특위 위원. ▲ 현 가천대 특임교수.
* 더 자세한 내용은 강성곤 위원의 저서 '정확한 말, 세련된 말, 배려의 말', '한국어 발음 실용 소사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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