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HÔNE STYLE & SPARKLING
」
스택스 립의 왕 쉐이퍼 빈야드가 1984년부터 와이너리에서 와인메이커로 일해온 엘리아스 페르난데스의 ‘퀄리티를 좇으려는 끈질긴 노력’을 기리기 위해 출시한 시라 단일 품종의 와인이다. 2018 빈티지는 1999년에 처음 출시된 쉐이퍼 릴렌틀리스의 20주년을 기리는 와인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 15.8%에 달하는 고도수의 이 레드와인은 블랙 베리, 과숙한 자두, 검은 체리의 향과 연필심, 후추 향, 가죽, 흙, 삼나무, 육두구, 정향, 마르지 않은 담뱃잎 등 우리가 시라 품종에서 기대하는 거의 모든 향미를 담고 있다. 프랑스 론 지역의 시라와는 확연히 다른 쉐이퍼의 릴렌틀리스는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시라의 재해석이라 할 만하다.
(2) Esprit de Tablas
피에몬테의 고급 와인을 떠올리게 하는 빛깔의 에스프리 드 타블라스는 샤토 드 보카스텔을 소유한 론 밸리의 유서 깊은 페랑 가문과 미국의 와인 수입상 로버트 하스가 손을 잡고 만든 ‘타블라스 크릭’의 대표적인 론 블렌딩 와인으로 ‘미국 최고의 GSM 블렌딩’으로 꼽아도 같은 가격대에서는 반대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각각의 품종을 따로 발효를 마친 뒤 2019 빈티지는 무베드르 39%, 그르나슈 30% 시라 21%, 쿠누아즈 10%의 비율로 블렌딩해 거대한 오크 배럴인 푸드르에서 1년간 숙성했다. 큰 통에서 숙성한 만큼 오크의 터치는 거의 느껴지지 않으며, 체리, 달지 않은 딸기, 레드 커런트 등 붉은 계열의 과실 향과 함께 후추, 카카오, 흙 등의 아로마들이 복합미를 더한다.
(3) Sol Rouge Viognier
와인 인듀지에스트로부터 ‘최고의 론 품종 와이너리’라는 평가를 받은 솔 루즈의 와인메이커 브라이언 케인은 같은 매체에서 뽑은 세계 최고의 와인메이커 100명에도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와인 비평 매체인 와인 인듀지에스트로부터 미국 비오니에 단일 품종 중 최초로 90점 이상(94점을 받았다)을 받은 솔 루즈 비오니에는 압도적인 아로마와 다층적인 복합미를 선보인다. 살구, 단단한 복숭아의 껍질, 허니서클, 엘더플라워, 아카시아의 강렬한 과실 유래 향이 지나가고 난 자리엔 지난 7년 숙성의 시간을 알려주듯 아몬드와 호두 껍질로 표현되는 옅은 산화의 뉘앙스가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솔 루즈는 홈페이지를 통해 ‘콩드리유 스타일을 목표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4) Joseph Phelps Vineyard Ovation Brut
조셉 펠프스가 대단한 이유 중 하나는 그 오래전에 이미 나파 밸리에서 벗어나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서늘한 곳에 샤르도네 밭을 사뒀다는 점이다. 소노마 코스트의 프리스톤 에스테이트에서 난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를 블렌딩한 이 와인이 데고르주망 전까지 병 숙성하는 기간은 자그마치 46개월. 풋사과, 레몬 껍질, 라임 등의 산미와 브리오슈와 갓 구운 빵의 고소한 풍미 외에도 호두 껍데기나 구운 아몬드에서 맡을 수 있는 산화의 뉘앙스가 오랫동안 숙성한 샴페인만이 가진 시간의 흐름을 훌륭하게 표현한다. 잔에 따르고 난 뒤에도 한참 올라오는 자글자글한 기포들이 무척 아름답지만, 기포가 다 빠져나간 뒤에 마셨을 때도 무척 근사했다.
(5) Schramsberg Blanc de Blanc
미국 최고의 스파클링 와인이 뭐냐고 묻는다면, 주저할 것 없이 슈램스버그라고 대답해도 좋다. 딴지를 거는 사람은 절대 없을 테니까. 일찍이 미국 최초로 샴페인 방식의 스파클링을 생산한 슈램스버그는 매해 캘리포니아 지역 150여 개의 포도밭에서 수확한 다양한 포도로 베이스 와인을 만들고 그해의 빈티지를 만들거나 저장한다. 알래스카 해류의 영향을 받아 서늘한 소노마 코스트 쪽에서 수확한 산도 높은 샤르도네들이 큰 비중으로 섞이는데, 토털 애시디티(TA)가 리터당 9g에 달한다. 보통 샴페인이 5~7g 정도인 걸 생각하면 엄청나다. 산미가 튈 법도 한데, 우아한 복합미를 가진 다른 요소들이 이를 단단하게 받쳐줘 완벽한 밸런스를 완성한다.
BORDEAUX STYLE RED & WHITE
」
만약 당신이 나파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이 궁금하다면, 주저 없이 이 와인을 마셔보길 권한다. 향미의 강도, 밸런스, 여운, 복합미 어느 것 하나 기울지 않고 꽉 찬 밸런스를 선사한다. 이 와이너리의 슈퍼스타인 ‘인시그니아’와 이 와인의 가장 큰 차이는 전자는 에스테이트 빈야드의 포도만을 사용하고, 후자는 농가에서 사입한 포도를 함께 사용한다는 점이다. 또 다른 점이라면, 인시그니아는 먼 훗날에 마시는 게 좋고, 조셉 펠프스 카베르네 소비뇽은 ‘숙성 잠재력이 있으면서도 지금 바로 마셔도 좋은 와인’이라는 것이다. 담배, 흙, 씁쓸한 카카오, 고기를 연상케 하는 감칠맛의 풍성한 향미가 매우 복합적이며, 타닌의 양은 적지 않으나 무척 부드럽다.
(2) Aperture Cabernet Sauvignon
애퍼처 셀라스의 와인메이커 제시 카츠는 사진작가인 아버지와 함께 어린 시절부터 프랑스 전역을 돌아다니며 와인 영재 교육을 받았으며, 20대 시절엔 만드는 와인마다 로버트 파커 점수 90점 이상을 받으며 와인 & 푸드 분야 30세 이하 30인에 뽑히기도 했다. 그가 독립해 만든 애퍼처 셀라스의 카베르네 소비뇽은 알렉산더 밸리에 있는 화산토가 풍부한 구릉지 남향 경사면 밭에서 경작해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리치한 미네랄리티’를 표현했다. 내가 시음한 2022 빈티지에선 블랙베리, 블루베리의 검은 과실들과 함께 잘 익은 체리의 산미가 느껴졌고 은은한, 그러나 과하지 않은 코코아와 삼나무, 흑연과 흙의 느낌이 매우 복합적인 경관을 그려냈다.
(3) Freemark Abbey Cabernet Sauvignon
프리마크 애비는 앞서 잠시 언급한 1976년 ‘파리의 심판’에서 레드와 화이트 부문 모두에서 10위 안에 랭크된 유일한 와이너리다. 그러나 카베르네 하우스답게 이들의 대표 와인은 역시 카베르네 소비뇽. 2019년 빈티지를 기준으로 카베르네 90%, 메를로 5%, 프티 베르도와 말벡이 각각 2%, 카베르네 프랑이 1% 블렌딩됐다. 24개월 프렌치 오크 배럴에서 숙성한 알코올 농도 14.5도의 이 와인은 그야말로 나파 밸리의 클래식이 뭔지를 잘 보여준다. 블랙체리, 시가 박스, 각종 향신료 특히 후추와 정향의 향미가 생기를 불러일으킨다. 지금 즐기기 좋지만, 10년 이상의 숙성에도 끄떡없는 와인이다.
(4) Twomey Sauvignon Blanc
카베르네 소비뇽의 명가 실버 오크 셀라스에서 카베르네 소비뇽이 아닌 다른 품종에 쓰는 브랜드가 바로 ‘투미 셀라스’다. 투미의 소비뇽 블랑의 특징은 나파 밸리 56%, 소노마 카운티 44%의 비율로 지역 블렌딩을 했다는 점이다. 나파 밸리에서 가장 서늘한 곳보다도 바다에서 가까운 소노마 대부분의 지역이 더 서늘하다. 나파 밸리의 오크빌과 칼리스토가의 밭에서 기른 포도는 좀 더 남쪽에서 난 과실의 향, 이를테면, 구아바, 파파야 등의 향기를, 소노마 카운티의 힐스버그 에스테이트와 메리노 빈야드의 포도들은 구스베리, 자몽, 아스파라거스 등의 향기를 더한다. 60%를 우드 배럴에서 숙성해 복합미를 더했다.
(5) Illumination
칠레의 작은 와이너리였던 콘차이 토로를 세계 최대의 와인 그룹으로 발전시킨 주역 중 하나가 바로 나파 컬트 와인인 ‘퀸테사’의 오너 어구스틴 후니우스다. 198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온 그의 ‘후니우스 와인스 그룹’은 캘리포니아와 오리건 일대에서 컬트적인 와이너리 여럿을 거느리고 있다. 퀸테사, 플라워스, 리바이어던, 파우스트가 전부 그의 와이너리다. 일루미네이션은 퀸테사가 만든 보르도 스타일의 화이트로 소비뇽 블랑, 소비뇽 블랑 뮈스케, 세미용이 블렌딩됐으며,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마셔본 해당 스타일 중에 가장 복합적인 향미를 선사했다. 자몽 껍질, 구스베리, 레몬 제스트 등의 산미가 지나가면 오렌지의 씨앗을 살짝 깨문 듯한 씁쓸함이 얇게 퍼진다.
BOURGOGNE STYLE RED & WHITE
」
부르고뉴 와인에 지나치게 빠져버린 와인메이커 조시 젠슨이 피노 누아를 기르겠다고 캘리포니아 해안을 2년 동안 헤집고 다니며 찾아낸 땅이 몬터레이만에서 내륙 쪽으로 50여 킬로미터 떨어진 할란산이었다. 고도가 670m에 달하는 고원지대라 기후는 서늘하면서 일조량은 충분한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와이너리의 이름 ‘칼레라’가 상징하듯 석회암 지대인 이 땅에서는 피노 누아의 짝꿍인 샤르도네 역시 완벽하게 자랐는데, 샤르도네의 상징과도 같은 단단한 흰 복숭아와 설 익은 자두, 따듯한 햇살을 떠올리게 하는 파인애플과 파파야의 향, 딜과 이끼 등과 같은 복합적인 풍미들이 지나치게 활달한 소비뇽 블랑과 비교되는 점잖은 매혹으로 다가온다.
(2) Hartford Court Russian River Valley Chardonnay
캘리포니아 소노마 카운티에 위치한 하트포드 코트의 홈 랜치는 해안에서 불과 20여 킬로미터 남짓 떨어져 있다. 하트포드 패밀리는 샤르도네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다. 러시안 리버 밸리, 소노마 코스트, 그린 밸리, 앤더슨 밸리, 마린, 오리건 등 다양한 지역에서 15종의 샤르도네만을 만들어낸다. 캘리포니아의 북단 소노마 카운티에서 안개가 자주 끼는 지역인 러시안 리버 밸리에선 같은 품종이라도 다른 지역에 비해 15~20%가량 생장 기간이 길 정도로 천천히 익는다. 한낮에는 대체로 햇살이 쨍쨍하지만, 그럼에도 과숙되지 않은 좋은 산미의 샤르도네를 기를 수 있는 이유다. 감귤, 서양배, 키위, 레몬 제스트의 풍미와 함께 레몬 씨앗을 깨문 듯한 씁쓸함이 특징이다.
(3) Ramey Russian River Valley Pinot Noir
‘샤르도네 교수님’으로 칭송받아온 데이비드 레미가 만든 피노 누아는 부르고뉴 품종에 대한 와인 메이커의 이해의 깊이를 가늠케 한다. 포도는 숙성할수록 당도가 올라가고 산미가 떨어진다. 그러나 러시안 리버 밸리와 같은 환경에선 낮 사이에 당도는 올라가면서도 밤과 새벽까지 서늘한 기후와 햇볕을 가려주는 안개가 산미를 지켜줘 매우 복합적인 풍미가 완성된다. 2017 빈티지에선 레드 체리, 빨갛게 익은 자두의 껍질, 앵두 등 빨간 과실 향은 물론 정향, 육두구, 삼나무 향, 섬세한 바닐라 터치, 야생 덤불 숲을 떠올리게 하는 가리그와 이끼, 흙, 옅은 가죽 냄새가 무척 훌륭하게 어우러진다.
(4) Cobb Wines Doc's Ranch Vineyard Pommard & 114 Selection Pinot Noir
로스 콥은 정통 부르고뉴 스타일의 피노 누아를 만드는 메이커로, 로버트 파커로부터 97점을 받은 피노 누아 장인이다. ‘독스 랜치’는 300m 고도에 있는 남동향 밭으로 콥이 공동 소유한 에스테이트 빈야드다. 일교차가 엄청난데, 이곳에서 자란 피노 누아들은 밤마다 추운 바다 안개에 휩싸여 산도 훌륭하게 유지한다. 콥의 와인 밭은 셀 수 없이 작은 구획으로 구분되는데, 이 와인은 부르고뉴 클론인 ‘포마르’와 ‘114’로 만든 클론 블렌딩이다. 2017년 빈티지는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양조 과정에서 ‘홀 번치’(whole bunch) 발효를 통해 강조한 키르시, 레드체리와 레드 커런트의 과실 향과 놀라운 산미가 선연하게 살아 있다.
(5) Brewer - Clifton Sta. Rita Hills Pinot Noir
브루어-클리프턴의 산타리타 힐스는 최남단에 위치한 ‘제1 기후지대’다. 포도 생장기의 미세기후에 따라 양조용 포도밭을 구분한 윈클러 분류표에 따르면 제1기후대는 높은 품질의 조생종, 쉽게 얘기하면 피노 누아를 심기에 적합하다. 이렇게 남쪽에서 고품질의 피노 누아를 기를 수 있는 이유는 이 지역이 바닷가에서 불과 2km가량 떨어진 고지대이기 때문이다. 두 와인메이커 그렉 브루어와 스티브 클리프턴이 프렌치 오크와 송이째 발효 기법으로 완성한 이 피노 누아는 잘 익은 딸기, 붉은 자두, 삼나무와 클로버, 딜과 옅은 로즈메리 그리고 말리지 않은 타임의 상쾌한 향들이 기가 막힌 복합미를 표현한다. 몇 년 뒤에는 더욱 성숙한 향들이 올라올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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