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주간 거래 종가 1,464.8원…금융위기 이후 첫 1,460원대 마감
"1,500원 넘어서면 위기 가능성도…적극적인 금리·재정 정책 필요"
(서울=연합뉴스) 민선희 기자 = 원/달러 환율이 금융위기 후 처음으로 장중 1,460원대 중후반으로 치솟으며 1,500원 돌파에 관한 우려를 키웠다.
국내외 요인이 모두 원화에 악재로 작용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의 탄핵이 가시화되는 등 국내 정치 혼란이 확대됐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속도 둔화 예상에 달러 강세가 계속됐다.
전문가들은 더 적극적인 시장 안정화 조치와 내수 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금리·재정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 원/달러 환율 1,460원도 뚫렸다…15년 9개월 만에 최고 수준
2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는 전 거래일보다 8.4원 오른 1,464.8원을 기록했다.
주간 거래 종가가 1,460원 선을 넘어선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13일(1,483.5원) 이후 15년 9개월 만에 처음이다.
이날 환율은 한 때 상승 기세가 주춤했으나 오후 한덕수 대행의 대국민 담화 발표를 계기로 다시 오름폭을 키웠다. 환율은 오후 3시 20분에는 1,466.0원까지 뛰며 1,470선을 위협했다.
한 대행은 담화에서 여야가 합의해 안을 제출할 때까지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즉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고, 오는 27일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치겠다고 밝혔다.
연말 거래량이 많지 않은 상황이라 변동성은 더욱 확대됐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한덕수 대행의 탄핵 가능성이 지난 24일부터 시장에 영향을 미치다가 오늘 원화 약세 압력으로 본격 작용했다"며 "국가 컨트롤 타워 부재에 대한 우려가 원화 투자심리를 취약하게 했다"고 말했다.
서정훈 하나은행 수석연구위원도 "무정부 사태에 준하는 상황에서 다음 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취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며 "이런 신인도 불안 요인으로 인해 일각에선 환율이 1,500원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미 연준이 내년 정책금리 인하 속도 조절을 시사한 것도 달러 강세를 촉발하면서 환율 상승 압력으로 작용했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결과가 발표된 지난 19일 환율은 1,450원을 넘었고, 이후 4거래일간 1,450원대 머물며 고공행진을 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지난주 108대로 올라선 이후 흔들리지 않고 있다. 이날 주간 거래 마감 무렵에도 108.145 수준을 나타냈다.
서 수석연구위원은 "내년에 연준이 정책금리를 두 차례만 내리면, 한은이 그보다 더 많이 인하하긴 어려울 텐데 그 정도로 내수 진작이 되겠느냐고 외국 투자자들이 의구심을 품으면서 원화는 약세를 나타냈다"고 말했다.
◇ "트럼프 취임 전후 1,500원 가능성도…적극적인 대응 필요"
서정훈 수석연구위원은 "트럼프 당선인 취임 전까지는 1,490원까지 오를 가능성이 있고, 취임 후 대중국 관세 정책 등이 바로 실행되면 1,500원을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도 "트럼프 행정부가 빠르게 관세 정책을 추진하면 글로벌 경기 우려가 커지고 연준의 금리 인하가 조기에 중단되면서 달러 추가 강세로 이어질 수 있다"며 "경기 둔화에 따른 한은의 금리 인하가 맞물리면 환율은 1,500원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백석현 이코노미스트는 환율 수준을 특정하지는 않으면서도 "내년 초 달러 매수세가 들어오면서 환율이 더 오를 수 있다"고 예상했다.
반면, 환율이 1,500원 선을 넘진 않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달러 가치도 이미 많이 올랐고, 원화 가치도 추가로 다른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한 더 하락할 가능성이 크진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당선인 취임 전까지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다가, 취임 후에는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조금 진정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고환율 여건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서 수석연구위원은 "환율 1,500원까지는 감내할 수 있다고 해도, 계속 더 오르면 외환위기가 재발할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를 내놨다.
그러면서 "환율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외환 당국이 단기적 시장 안정화 조치를 해야 하고, 중장기적으로 내수를 끌어 올리기 위해 적극적인 금리·재정 정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예전과는 달리 환율 상승이 수출에 전적으로 호재가 되진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는 "수출기업들이 예전에 싸게 수입해뒀던 중간재로 제조해서 고환율 여건에서 내다 팔면 이익이 날 수 있지만, 트럼프 시대에 세계 경제 교역량 자체가 쪼그라드는 문제를 극복하기 어렵다"이라며 "일부 고부가가치 산업군을 제외하고는 고환율이 채산성에 도움이 되는 수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ss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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