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인가 시위인가"… '응원봉'·'이색 깃발' 달라진 집회 문화[Z시세]

"축제인가 시위인가"… '응원봉'·'이색 깃발' 달라진 집회 문화[Z시세]

머니S 2024-12-26 12:03: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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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에 참여해 윤석열 대통령 코스프레를 하는 시민의 모습/사진=박정은 기자 집회에 참여해 윤석열 대통령 코스프레를 하는 시민의 모습/사진=박정은 기자
전 국민이 힘을 모아 진행하는 대규모 집회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지난 21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결정을 촉구하거나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경찰 추산 총 6만1000명의 인파가 몰렸다. 이에 앞서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에도 국회의 탄핵소추안 표결을 촉구하기 위한 대규모 집회에 200만명(윤석열즉각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추산)의 인파가 모이기도 했다.

집회를 위해 많은 사람이 모인 것도 화제가 됐지만 예전과는 다소 다른 시위 문화가 이목을 끌었다. 미국 매체 뉴욕타임스는 "심각한 시위조차 매력적이고 낙관적이며 축제와 같은 분위기일 수 있다는 것을 한국인들이 보여주고 있다"고 현장 상황을 전했다.

집회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기자는 과거 집회와 비교해보기 위해 지난 21일에 열린 윤석열 탄핵심판 결정을 촉구하는 집회에 참여했다.

"못 가서 미안해" "와줘서 고마워"… 마음을 나누는 선결제

선결제 매장을 표시한 지도./사진=시위도 밥먹고 갈무리 선결제 매장을 표시한 지도./사진=시위도 밥먹고 갈무리
이전과 달리 이번 집회에서 눈에 띈 부분은 '선결제 문화'였다.

'선결제'는 집회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집회에 간 사람들을 응원하기 위해 집회 주변 가게에 미리 돈을 지불해 사람들이 자유롭게 수령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처음에는 각종 SNS에서 선결제를 인증하며 사람들이 하나하나 검색해서 찾아다녀야 했지만 한 개발자가 이를 종합해 놓은 사이트를 제작해 더 쉽게 이용 가능해졌다.

기자도 집회에 참석해 선결제된 음료를 판매하는 장소를 찾았다. 하지만 인파가 몰려 직접 마시지는 못했다. 선결제된 매장에서 따뜻한 차를 먹었다는 A씨(25)는 "오늘 오후 3시에 나와서 3시간 동안 밖에 있는데 손과 얼굴이 얼어 너무 힘들었는데 따뜻한 차를 먹으니 좀 살 것 같다"며 "선결제를 해줘서 고마운 마음도 크지만 여기에 오지 않으신 분들도 함께 한다라는 생각이 들어 벅차오른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이후로 집회의 규모는 작아지고 있지만 선결제 행렬은 끊이지 않고 있다. 큰 집회가 예정돼 있지 않은 날에도 선결제 물량이 남아 먹을 수 있을 정도다. 이에 대해 A씨는 "지금 학생이라 돈이 없어 선결제에 참여하진 못하지만 나중에 돈을 벌게 된다면 '선결제'처럼 의미 있는 곳에 사용하고 싶다"며 "몰랐는데 우리나라에는 참 따뜻한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전했다.

'알록달록' 꺼지지 않는 촛불 행렬

과거 박근혜 탄핵 촛불 집회와 최근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를 상공에서 찍은 모습./사진=엑스 갈무리 과거 박근혜 탄핵 촛불 집회와 최근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를 상공에서 찍은 모습./사진=엑스 갈무리
지난 21일 광화문 집회가 끝난 시각 엑스(X·옛 트위터)에는 과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집회 때의 행진과 비교한 사진이 올라왔다. 촛불의 영향으로 붉은빛만 보이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집회 때와 달리 최근 집회에는 다양한 색의 빛이 꼬불꼬불한 모양으로 보였다. 촛불이 꺼질까 고정한 채로 행진했던 과거와 달리 불이 꺼질 걱정이 없는 응원봉은 흔들며 행진할 수 있기에 이러한 사진이 나온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집회 때에도 촛불 대신 응원봉을 든 젊은 세대가 종종 있었으나 당시에는 '시위를 장난인 줄 안다' '집회의 본질을 흐린다' 등의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집회에선 남녀노소 나이 불문 응원봉을 흔들며 '윤석열 퇴진'이라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좌 엑소 에리다봉을 들고 집회에 참가한 20대, 우 엑소 에리다봉을 들고 집회에 참가한 50대의 모습./사진=박정은 기자 좌 엑소 에리다봉을 들고 집회에 참가한 20대, 우 엑소 에리다봉을 들고 집회에 참가한 50대의 모습./사진=박정은 기자
광화문 시위에는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참여한 40·50대를 많이 볼 수 있었다. 딸이 빌려준 응원봉을 들고 참석했다는 B씨(58)는 "평소에는 아이돌 물건들을 만지지도 못하게 했는데 시위 간다고 하니까 빌려줬다"며 "같은 응원봉을 들고 있는 친구들이 많아 뿌듯하고 동지애가 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응원봉을 들고 집회에 참석한 이들은 응원봉을 흔들며 같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윤석열 퇴진을 외쳤다. 연대감을 느낀 사람들은 웃음을 짓는 것은 물론 곳곳에선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가족과 함께 집회에 참석한 C씨(24)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응원봉을 모두 빌려줬다. B씨는 "콘서트갈 때 잠깐 키고 아껴 놓았는 데 의미 있는 곳에 사용해서 기분이 좋다"며 "아이돌을 좋아하는 문제로 가족과 많은 갈등이 있었는데 함께 응원봉을 흔들며 같은 목소리를 내니 기분이 오묘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C씨의 어머니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딸이 이런 물건(응원봉)을 사는 게 이해되지 않았는데 사용해보니 좋다"며 "이쁘기도 하고 재밌어서 나중에 하나 사고 싶다"고 답했다.

집회에 등장한 '전국 냥냥학 연구회'

시위 현장에 등장한 전국 냥냥학 연구회. /사진=박정은 기자 시위 현장에 등장한 전국 냥냥학 연구회. /사진=박정은 기자
집회하면 구호와 함께 펄럭이는 깃발이 먼저 생각난다. 이번 광화문 집회에도 다양한 단체에서 참여해 깃발을 휘날렸다. 정당, 시민단체, 대학교는 물론 기업의 이름이 적혀있는 깃발도 있었다. 수많은 깃발 사이 '전국 냥냥학 연구회'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고양이를 키운다는 D씨(48)는 "전국 냥냥학 연구회는 처음 들어보는데 있는 줄 알았으면 가입했을 것"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이어 "시위가 옛날과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예전에는 엄숙했던 것 같은데 이번 시위는 친숙하고 유쾌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다양한 이색 단체의 깃발./사진=뉴스1 다양한 이색 단체의 깃발./사진=뉴스1
이번 집회에 참여한 이색 단체가 '전국 냥냥학 연구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강아지발냄새연구회' '돈 없고 병든 예술인 연합' 등 실제 존재하는 것이 맞나 싶은 단체의 명이 적혀 있는 깃발을 집회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물론 해당 단체들이 실제 존재하는 단체는 아니지만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집회의 분위기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집회'의 분위기로 바꿔주는 것에 큰 역할을 했다.

이에 대해 이기훈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뉴욕타임즈를 통해 "이번 시위에 여러 깃발이 나온 것은 군부 통치를 강행하려는 대통령의 시도에 자극받은 사람들이 다양성을 표현한 것"이라며 "시위대가 자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은 화났을지언정 엄숙해지거나 도덕주의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깃발 존재가 긴장도를 완화해 주는 효과를 냈다"고 해석했다.

흔히 갈등의 시대라고 한다. 남녀갈등, 세대 갈등, 빈부갈등, 종교갈등 이번 윤석열 퇴진 집회는 단순히 정치적 의미의 집회를 넘어 우리 사회가 통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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