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이 뉴요커들 발음에 미친 영향 규명…현장 연구에 정량적 방법론 결합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사회언어학의 태두로 명성이 드높은 윌리엄 러보브 펜실베이니아대 언어학과 교수가 별세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24일(현지시간) 전했다.
NYT에 따르면 그는 지난 17일 필라델피아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부인인 질리언 생코프는 러보브의 사인이 파킨슨병에 따른 합병증이었다고 전했다.
윌리엄 데이비드 러보브는 1927년 12월 4일 뉴저지주 러더퍼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인쇄소를 경영하는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였고, 어머니는 전업주부였다.
러보브는 하버드대에서 영어영문학과 화학을 공부했으며, 1948년에 대학을 졸업한 후 아버지가 운영하는 인쇄 공장에서 10여년간 공업화학 엔지니어로 일했다.
그는 이 기간에 숫자로 된 정량 데이터를 다루고 실험을 하면서 공장에서 일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말투를 접한 것이 나중에 언어학을 연구할 때 아주 큰 도움이 됐다고 회고했다.
1961년에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언어학 박사과정 공부를 시작했으며 1964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 과정 중이던 1962년 매사추세츠주의 휴양지 마사스 빈야드 섬 주민들과 그 자녀들, 휴양객들의 말투를 비교·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 논문은 계급·젠더·인종·세대 등 사회구조와 언어 사이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학문인 '사회언어학'을 창시한 논문으로 꼽힌다.
그는 경험적·과학적·수학적 방법론을 동원했을 뿐만 아니라 언어를 분석하기 위해 사회학적 개념들을 이용했으며, 이는 당시로서는 유례가 없이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일이었다.
정성적·사변적 이론 작업에 머물렀던 대부분의 선배 언어학자들과 달리, 러보브는 현장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정량적이고 과학적으로 가설을 세우고 입증했다.
실제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하는 말을 테이프에 녹음해서 들어보고, 정리한 데이터로 연구 결과를 정량화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또 이를 통해 시기나 장소가 다르더라도 비교가 가능하도록 했다.
러보브의 다른 유명한 연구 중에는 뉴욕 사람들의 영어 발음이 계급의 영향을 어떤 식으로 받는지 규명한 것이 있다.
그는 뉴욕의 백화점 중 명품 위주인 '색스 피프스 애비뉴', 중간급인 '메이시스', 저가 위주인 'S. 클라인' 등 세 곳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이 연구에 사용했다.
사람들이 애써서 '올바르게' 하려는 발음이 아니라 실제로 평상시에 쓰는 자연스러운 발음을 포착하기 위해 트릭도 동원했다.
분석 결과 백화점이 고급일수록 'fourth floor'라는 말에서 'r'을 생략하지 않고 발음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색스 백화점의 점원 중 상류층 출신은 별로 없었으며, 이들은 고객이 누구냐에 따라 그에 맞도록 말투를 바꾸는 것으로 드러났다.
러보브는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는 뉴욕의 흑인 밀집 거주 지역인 할렘의 언어 연구를 통해 이 지역 폭력조직원들이 쓰는 말이 단순히 '틀린 영어'가 아니라 자체적으로 일관된 문법과 내적 논리를 갖춘 방언이라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이를 근거로 흑인 어린이들이 표준 영어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적 발달에 문제가 있다고 낙인찍어서는 안 된다는 전문가 의견을 법정에서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박사학위 취득 후에는 박사과정 모교인 컬럼비아대 교수로 있다가 1971년에 펜실베이니아대로 옮겨 말년까지 재직했다.
러보브는 매스미디어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미국 전역에서 방언의 차이가 더욱 심해지고 있으며, 이는 계급과 인종에 따른 거주지 분리 탓이라는 연구 결과를 2006년에 내놓기도 했다.
그는 2013년 과학·공학 분야에서 손꼽히는 영예인 벤저민 프랭클린 메달 수상 시 인터뷰에서는 "사람들은 수동적 상호작용에 의해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며 "TV 수상기에는 대인 상호작용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limhwaso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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