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블룸버그에 “한국 대통령이 밸류업 정책에 이별을 고하다. South Korea’s Yoon Can Kiss His Stock Reform Goodbye”라는 칼럼이 공개됐습니다. 대통령의 계엄령 선언이라는 사건을 통해 한국 자본시장의 가족 경영 문제를 조망하며, 한국의 리더십 불안정을 강조하고 한국 주식시장의 저평가 상황을 피할 수 없었음을 언급한 글입니다.
한국 정치와 경제 모두가 리더십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한국에서 20년 가까이 투자를 직업으로 해 온 저로서는 외국인들의 이러한 시선과 의견을 접할 때마다 참담함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비관적인 결론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역설적으로 현재 한국이 직면한 도전이 거대한 투자 기회를 제공한다고 믿습니다. 프랭클린 템플턴 경의 말처럼, "가장 비관적일 때가 최고의 매수 기회이며, 가장 낙관적일 때가 최고의 매도 시기(The time of maximum pessimism is the best time to buy, and the time of maximum optimism is the best time to sell)"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저의 주장을 제쳐두고,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해 제 관점을 설명하겠습니다. 블룸버그 칼럼은 계엄사태 이후 대통령 리더십 상실이 한국 주식시장 밸류업의 종말이라고 주장했지만, 한국 상장기업들의 총주주수익률(TSR) 개선은 정치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진행 중입니다.
1. 지속되는 밸류업 : 현재 한국거래소(KRX) 밸류업 공시 게시판에는 77건의 공시가 있습니다. 특히, 계엄사태 12월 3일 이후에도 26건의 공시가 이루어졌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기업들이 밸류업 공시를 발표할 것입니다. 정부의 밸류업 정책이 마중물이 되긴 했지만, 이제는 정책적 압력을 사회적 요구가 대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장기업들이 기업가치를 높이고 주주환원을 높이는 것이 이제는 상식이 되어 가는 시대입니다.
2. 배당 수익률 : KRX300 지수의 배당수익률은 평균 약 2.5%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블룸버그 컨센서스). 이는 과거 전년의 2.03% 대비 21% 증가한 수치입니다. 2.5%가 미진하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300개 기업중 100여개 기업이 배당을 전혀 주지 않는데도 나온 수치고, 4% 이상의 고배당이 예상되는 기업도 60개가 넘습니다. 게다가 개선의 속도가 매우 높습니다.
3. 자사주 매입 및 소각 : 대부분의 밸류업 공시는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배당에 대한 과세 부담이 무거운 편이기 때문에 자사주 매입은 상대적으로 효율적인 주주환원 수단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한국 상장기업들은 자사주 매입이 인색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 자사주 매입은 전년 대비 25.1% 늘었습니다. 자사주를 사들이더라도 소각하지 않고 시장에 되파는 경우가 있어 문제가 됐는데 올해 상반기 자사주 소각금액은 전년대비 무려 190.5% 증가했습니다(KRX 자료).
4. 주당 가치 희석 문제의 반전 : 지난 20년간 KOSPI 지수는 2.8배 상승했으나, 시가총액은 4.97배 증가했습니다. 이는 기업들의 신규 상장이나 증자, 분할 등으로 상장 주식 수가 두 배로 늘어 주당가치가 희석되었음을 나타냅니다. 기업의 가치가 새로 발행한 주식으로 분산돼 시가총액 증가분의 절반 밖에 투자수익으로 연결되지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올해 들어 IPO나 분할상장 이벤트는 줄어들고 자사주 매입/소각이 증가했고 마침내 KOSPI 주식 수가 감소 중입니다. 이미 공시된 내년 자사주 매입/소각 규모만으로도, 2025년은 한국 주식시장 최초로 연간 기준 전체 주식 수가 감소하는 해(주당 가치가 증가하는 해)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통령 리더십 상실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주주환원 수치가 개선되는 이유는 뭘까요?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지속될 수 있을까요?
저는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복해 말씀드리듯이, 기업들의 밸류업 근본 요인은 정책이 아니라 사회적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야당 대표 이재명은 국회서 상법 개정을 논의하는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의회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은 소액주주에게 피해를 끼친 이사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개정은 한국 기업 지배구조 개선의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야당의 주식시장 부양 정책은 여당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의 밸류업도, 이재명 대표의 상법 개정도 더 나은 밸류에이션에 대한 요구와 대응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입니다.
한국의 리더십 위기는 심각합니다. 대통령은 이미 탄핵됐고, 대기업 총수들의 도덕성과 경영능력에 대한 사회의 의구심도 큽니다. 하지만 리더십 문제를 제외하면 한국의 위기가 우려만큼 심각한 것은 아닙니다. G10 경제권의 일원으로, 5천만 명의 인구와 탄탄한 펀더멘탈을 갖고 있습니다. 몇몇 잘못된 리더들이 아니었다면 한국 주식시장은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대접을 받을 만한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블룸버그 컨센서스에 따르면 MSCI Korea의 Forward PER은 현재 7.7배입니다. 최근들어경쟁력과 성장성에 대한 논란이 많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대형 반도체 기업을 제외해도 한국 주식시장의 평균 PER은 7.8배에 불과합니다. 이 정도의 밸류에이션이라면 사실상 모든 악재는 이미 다 가격에 반영돼 있고 5천만 명의 성실한 한국인들의 펀더멘탈은 조금도 반영하지 못한 것입니다. MSCI유럽의 PER이 13배, MSCI 이머징마켓이 11.7배입니다. 한국이 아무리 우울하다고 해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위기를 맞고 있고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는 유럽보다 한국의 펀더멘탈이 나쁜가요? 아직도 외채 부담으로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머징마켓 대다수의 국가보다도 40% 할인받을 만큼 한국이 위기인가요?
유럽과 이머징마켓 그 어느 나라도 한국만큼의 경제규모, 한국만큼 고도화된 산업, 한국만큼의 성실한 국민들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무엇을 고려해도 한국 시장의 극심한 할인은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주가가 50% 올라서 한국 주식시장이 PER 10배에 도달하더라도 한국은 여전히 전 세계에서 가장 쌉니다.
리더십 위기 속에 촉발된 우울한 분위기와 전망에 우리는 지나치게 중독돼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근원인 리더십 위기는 최악의 상황에 있으며, 이제는 개선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 있습니다:
1. 정치적 변화 :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남아 있지만 내년 새로운 선거가 열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한국은 샤머니즘에 빠져 계엄령을 선포한 대통령을 선출한 것에서 많은 교훈을 얻었고 시민들은 매일 평화적인 집회를 통해 리더십 교체와 정치 정상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대통령이 되고 지금의 리더십 공백은 곧 해소됩니다.
2. 기업 개혁 : 지배구조 문제를 일으킨 대부분의 재벌 가문은 상속 과정에서 법적 처벌을 받았습니다. 일부 전과자 회장님들이 여전히 리더십을 유지하고 있으나, 더이상 과거의 잘못된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용인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3. 행동주의 캠페인 증가 : 한국은 행동주의 캠페인 수에서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번에 상법 개정이 통과된다면 2025년에는 행동주의 캠페인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입니다.
4. 전문 경영 체제 : 많은 대기업이 가족 경영에서 전문 경영인 체제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다수의 대기업 총수들이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이미 공언했습니다. 이는 한국의 지배구조가 가족 중심에서 전문 경영인과 금융 자본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블룸버그가 비판한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은 가족 경영체제가 전문 경영과 금융 자본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을 상징하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전쟁 이후 태동한 한국의 재벌 가문들은 이제 거대 기업을 경영하는데 한계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리더십 위기는 절호의 투자 기회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한국 증시는 그 어떤 나라보다도 50% 가까이 할인된 가격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템플턴의 말처럼 “최대 비관의 시기가 최고의 매수 기회”입니다. 한국의 리더십은 너무 나쁘기 때문에 오히려 쉽게 개선될 수 있습니다. 기업 지배구조 개혁이 가속화되고, 주주환원이 전례 없이 개선되고 있습니다. 세상 모두가, 특히 한국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서 비관적이지만, 저는 낙관적입니다. 제가 운용하는 라이프자산운용은 리더십이 개선되는 기업에 투자하는 전략으로 지난 3년간 KOSPI가 20% 하락하는 동안 60%가 넘는 수익률을 낼 수 있었습니다. 시장이 붕괴하고 리더십에 소멸하는 3년 동안에도 이렇게 했는데, 비관이 극에 달하고 이제 개선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제가 비관적일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 강대권 대표는 현재 라이프자산운용을 이끌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 및 동대학원 석사(산업경제학 전공)를 마쳤고, 서울대 가치투자 동아리 '스믹(SMIC)' 출신으로도 유명하다. 가치투자 2세대 스타 펀드매니저인 강 대표는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을 거쳐 유경PSG자산운용에서 최고투자책임자(CIO)를 역임했다. 당시 국내 운용사 최연소 CIO다. 지난 2016년, 2020년 국내 주식형 운용사 수익률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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