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사실상 축출돼 사퇴한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는 2개의 타이머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이다. 2개의 타이머가 모두 멈추면, 한 전 대표는 부활할 수 있을까?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지난 16일 사퇴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3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거론됐던 피해자였다. 하지만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지난 14일 가결되자, 그는 당내 다수인 친윤(친 윤석열)계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이날 인요한·김민전·김재원·장동혁·진종오 등 선출직 최고위원 5명이 전원 사퇴하자, 한동훈 체제는 곧바로 무너졌다.
잘못한 선택
국민의힘 당헌에 따르면,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4명이 사퇴하면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체제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의원총회서도 참석자 93명 중 73명이 지도부 총사퇴에 찬성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오후 10시28분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한 전 대표는 그로부터 18분이 지난 오후 10시46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튿날 오전 12시24분엔 “군이 국회에 진입했다”며 “반헌법적 계엄에 동조·부역해선 안 된다”며 추가 입장을 내놨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국회 본회의장 안으로 들어갔다. 국회의원이 아니기 때문에, 원래는 들어갈 수 없었다. 비상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기관은 오직 국회뿐이었던 데다, 한 대표도 체포 대상에 포함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양해가 있었던 덕분이었다.
국민의힘 내 친한(친 한동훈)계·중립 성향 의원들과 야당 의원 190명이 계엄 해제요구 결의안을 전원 만장일치 가결시키면서 오전 1시1분 비상계엄이 해제됐다.
한 전 대표는 오전 3시27분 “민주당과 윤 대통령 탄핵 논의 관련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전 대표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처음 언급한 시점이었다. 같은 날 오후 8시 한덕수 국무총리, 국민의힘 추경호 당시 원내대표와 윤 대통령을 만났다.
당시 그는 윤 대통령에게 자신을 비롯한 정치인 체포 시도에 대해 강한 항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의 입장은 요지부동이었고, 한 전 대표와 윤 대통령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후 한 전 대표의 입장은 오락가락을 거듭했다. 5일 오전엔 “혼란으로 인한 국민 피해를 막기 위해 탄핵안은 통과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면서 탄핵소추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6일 오전엔 ‘조속한 직무 집행 정지’를 언급했다. 이유는 “윤 대통령이 여인형 당시 방첩사령관에게 주요 정치인 체포를 지시했고, 과천의 수감 장소에 수감하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7일 윤 대통령의 제3차 대국민 담화 이후에도 “윤 대통령의 정상적인 직무 수행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대통령의 조기 퇴진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탄핵이 아니라 조속한 직무 집행 정지와 조기 퇴진을 언급했기 때문에, 한 전 대표를 의심하는 시선이 있었다.
직무 정지·조기 퇴진 꺼내다
번복 후 돌연 탄핵 표결 불참
그 의심은 적중했다. 국민의힘은 지난 7일 제1차 탄핵소추 표결을 집단 퇴장하는 방식으로 무력화시켰다. 한 전 대표는 지난 8일 한 총리와 함께 “대통령을 사실상 직무서 배제하고, 질서 있는 퇴진을 시킬 것”이라며, “총리가 당과 긴밀히 협의해 주 1회 회동하면서 국정 공백을 막겠다”는 과도 체제를 발표했다.
그러나 과도 체제가 실제로 가동되는 일은 없었고 한 전 대표는 추락했다.
한 전 대표는 각계각층서 격렬한 비판에 직면했다. 강경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탄핵’이라는 두 글자는 언급하지 않았고, 그의 주장은 헌법과 맞지 않는 체제였기 때문이다. 집권여당 대표인 그가 홍준표 대구시장으로부터 ‘너’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결국 한 전 대표는 하루도 못 가서 “당 대표는 국정 권한을 행사할 수 없고, 총리와 함께 국정을 운영한다는 것은 좀 어폐가 있다”고 말을 바꿨다. 이어 “비상시국에 당이 조금 더 적극적이고 세심하게 총리와 협의하겠다는 의미로 보시면 될 것”이라며 “오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순간 잘못 굴린 ‘잔머리’로 인해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당내서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여론의 뭇매까지 맞는 지경에 몰린 셈이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과 검찰서의 오랜 인연을 계기로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됐고, ‘소통령’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지난해 12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취임한 후 지난 4월 제22대 총선을 진두지휘했다. 이미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에 대한 비판 여론이 상당해 총선 전망이 어두운 상황이었다.
당시 그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심판 대상으로 삼아 프레임을 전환하려고 했던 ‘이조심판론’을 주장했다. 하지만 위기에 빠진 당의 비상 상황과 총선을 한꺼번에 책임져야 할 비대위원장이 제기할 총선 구호로선 부적절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아울러 국민의힘 김경율 전 비대위원을 마포을에 출마시키려고 했던 것에 대해 대통령실과 친윤 그룹서 비판을 제기하면서 윤 대통령과의 관계도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이후 윤 대통령과 한 전 대표는 갈등의 연속이었다. 이 갈등은 ‘윤한 갈등’이라는 표제로 꾸준히 언론과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윤 대통령의 ‘격노’를 불러온 결정적 계기는 그 유명한 ‘문자 읽씹’ 논란이었다.
김건희 여사가 한 전 대표에게 “자신의 논란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할 의사가 있다”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냈지만, 한 전 대표가 이 문자를 읽었음에도 답장하지 않아 입길에 올랐다. 이로 인해 윤 대통령은 욕설을 곁들이면서 한 전 대표에 대한 ‘격노’를 숨기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경율 공천으로 시작
체포 대상 되기까지…
한 전 대표는 총선 패배 책임을 지고 비대위원장직서 사퇴했지만, 지난 7월 진행된 전당대회서 가볍게 승리해 당대표로 취임했다. 윤 대통령과 결별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7·23 전당대회서 총 62.8%를 득표해 당 대표로 당선됐다.
갈등은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 전 대표를 따르는 친한계도 현역 의원 20명 안팎으로 구성된 소수 계파였기 때문에 당내 갈등은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직전까진 “한 전 대표의 아내 진은정 변호사가 당원 게시판서 가족들의 명의를 이용해 윤 대통령 부부를 비난했다”는 ‘당게 의혹’까지 불거져 있었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19일, 관련 질의를 하려던 기자들로부터 도주해 ‘런동훈’이라는 별명까지 붙는 굴욕을 감수하면서도 의혹에 대한 해명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명태균 게이트 관련 녹취록이 공개되자, 윤 대통령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이 앙금을 잊지 않은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후 한 대표도 체포 대상으로 지정했다.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을 떠났지만, 여전히 유력한 국민의힘 대권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뉴스1>이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10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지난 12일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 전 대표는 7%의 지지를 얻었다. 홍 시장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각각 5%와 4%의 지지를 얻었다.
홍 시장과 오 시장은 명태균 게이트 연루 가능성이 꾸준히 거론된다. 명태균씨는 검찰에 황금폰을 제출했다. 검찰과 명씨의 선택에 따라, 두 사람은 한순간에 무너질 위험이 있다. 국민의힘의 4선 이상 중진 중엔 안철수 의원만이 4%의 지지를 얻은 것이 확인된다.
하지만 안 의원은 공개적으로 탄핵 찬성 의사를 밝혔고, 제1차 표결 당시에도 이탈하지 않았다. 한 전 대표 못지않게 윤 대통령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기 때문에, 친윤 입장에선 안 의원도 ‘만만한 대권주자’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이대로 끝?
한 전 대표가 윤 대통령과 결별한 상황서도 62.8%의 지지를 얻어 당 대표로 당선됐던 것은 여전히 의미심장하다. “친윤이 다수인 의원들의 생각과 다르게 당원 민심은 따로 돌아간다”고 해석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한 전 대표는 사퇴 당시에도 “이재명 대표 재판의 타이머는 멈추지 않고 가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타이머도 멈추지 않고 돌아가고 있다.
한 전 대표는 2개의 타이머가 모두 멈추는 그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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