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냐, 바다냐. 휴가엔 도시보다 자연을 선호하는 나는 이 문제 앞에 매번 골몰하지만 대체로 후자를 택하곤 했다. 시원하게 흩어지는 파도, 잔잔한 수면 위로 내리쬐는 햇볕. 바다는 가만 보고 있어도 지루할 틈이 없으니까. 이 편견을 바꾼 유일한 여행지는 발리 우붓이었다. 커다란 코코넛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열대우림과 계단식 논을 번갈아 보는 일이 꽤 흥미진진했다. 숲을 들여다보면 원숭이나 다람쥐가 보이고, 논으로 고개를 돌리면 잠자리가 보였다. 이번 출장의 목적지 아난타라 우붓 발리에 가기 전 다시 낯선 풍경을 볼 수 있을까 꽤 달뜬 마음이 들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발리에 처음 간 사람도, 몇 차례 가본 사람도 산기슭에 자리한 우붓으로 향하기 위해선 좁고 굽이진 도로를 한 시간 반가량 지나야 한다. 공항에서 가까운 시티 스미냑(Seminyak), 리조트가 줄지어선 남부 해안의 쿠타(Kuta)나 짐바란(Jimbaran), 서퍼들의 성지 캉구(Canggu)보다 멀다. 하지만 한산한 인구 밀도는 물론 관광객보다 농사를 짓는 발리 원주민들의 생활에 가깝다는 점에서 ‘진짜’를 보여주는 장소다. 우붓 시내에서도 산속 마을로 한참 들어가야 하는, 북부 파양안에 들어선 아난타라 우붓은 건축의 외관만으로도 독특한 인상을 남긴다. 비탈진 언덕 위에 계단식으로 이어지도록 설계된 아난타라 우붓은 스위트와 풀빌라로 나뉜 85개의 모든 객실에서 숲을 병풍처럼 바라볼 수 있다. 말 그대로 숲 한가운데 머무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산의 경사에 따라 객실 고도를 세심하게 고려해 디자인해 발코니와 정원, 테라스에서 옆 객실로부터 시야가 완전히 차단된 채 고요히 풍경을 감상하기 좋다.
한겨울에 방문한 우붓은 시시각각 다채로운 광경을 내어놓았다. 현지 기후로 우리나라 겨울이 우기에 속하는 탓에 해가 떴다가 몇 분 뒤 스콜이 내리고 금세 운무가 자욱해진다. 빌라 객실에 준비된 인피니티 풀에서 수영을 하다 숲의 색이 점점 변하는 걸 지켜보는 일이 꽤 다이내믹했다. 비를 피하려는 새들의 날갯짓,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잎사귀 소리까지. 도시에서는 들어본 적 없는 소리와 숲의 그윽한 냄새를 맡으며 망중한을 누렸다.
대단한 미식가는 아니지만, 몇 차례 리조트에서 휴가를 보낼 때 같은 레스토랑을 반복해 가야 하는 게 곤욕스러운 적이 있었다. 아무리 현지식과 양식 종류가 다양하다 한들 한계가 있었는데 이곳은 예외였다. 아난타라 우붓에는 발리인의 성산, 아궁산을 보면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올데이 다이닝 레스토랑 ‘키라나’와 바 ‘술랑’과 우드 그릴을 활용한 지중해식 디시를 내어놓는 ‘아메르타’ 레스토랑이 마련돼 있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키라나에서는 인도네시아 가정식을 주문하면 수마트라 향신료를 가미한 디시, 발리의 원재료를 활용한 메뉴, 자바의 스트리트 푸드까지 세심하게 메뉴를 구성해 식사를 하는 사흘 내내 매번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출이나 일몰을 즐기며 하는 요가, 현지 음식을 만드는 쿠킹 클래스, 호텔 주위를 돌며 바이크를 타거나 트레킹을 하는 코스. 아무리 호텔 체인이 웰니스 프로그램을 신경 쓴다 해도, 이 전통적인 루트를 벗어날 수 있을까? 아난타라 우붓이 제안한 일정표를 보고 도무지 짐작이 안 갔다. 사원에서 물 정화 의식에 참여하기(‘Water Purification’이라 쓰여 있다), 구루와 함께 불의 의식 참여하기(발리어로 불을 뜻하는 ‘Agna’가 함께 쓰여 있다). 아난타라 우붓은 현지 원주민 출신 기획자와 오퍼레이터들이 주기적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같은 트레킹 코스라도 전통 농업을 따르는 타로 빌리지에 가서 원주민들의 농막을 둘러보고 ‘스네이크 프루트’ 같은 열대과일을 채집해보는 등 참신한 경험을 제공하는 데 집중한다. 나아가 방문객의 성향에 따라 알맞은 프로그램을 설계 및 추천받을 수 있다.
“발리가 힌두교를 받아들이기 전까지 ‘물의 신’을 믿었던 걸 알아?” 웰니스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발리 출신의 디렉터 마데 와르나타가 말했다. 웰니스 문화학을 전공한 마데는 발리 현지인이 주로 가는 멘게닝 사원으로 향하는 길에 왜 발리 사람들에게 물을 활용한 의식이 중요한 의미인지 강조했다. 번뇌와 고민이 물로 씻겨 내려 가도록 하는 정화 의식은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영혼을 씻어내는 행위라고. 맑고 깨끗한 샘물이 흐르는 사원에서 나와 일행들은 정수리에 물을 맞으며 수십 번 기도를 하는 과정을 따랐다. 한껏 비워냈으니 에너지를 채울 차례. 해 질 무렵엔 마을의 제사장과 같은 사제, 이다 구루가 살고 있는 집이자 사원을 방문했다. 불 의식은 쌀농사를 주로 짓는 우붓 사람들에게 주요한 의미인 쌀알을 불에 태우며 이루어진다. 불의 신성한 에너지를 보며 내면의 에너지 흐름을 느껴보는 시간. 짐짓 무겁고 영적인 의식이 부담스러울까 싶던 생각은 기우였다. 우리나라 쥐불놀이처럼 나쁜 기운을 없애고 흥겹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 꽤 센 물살을 맞으면서, 타들어가는 불꽃을 보면서 기도를 하다 보니 반대로 내가 빌고 있는 게 ‘별것 없구나’ 싶은 개운한 깨달음을 얻은 하루였다. ‘웰니스’가 화두인 시대. 저마다 정의는 다르겠지만 진정 내밀한 자신의 욕구를 마주하고 그 결을 다듬는 행위라 여긴다면, 아난타라 우붓 발리에서는 제대로 된 웰니스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물론 전통 마사지법을 곁들인 ‘탁수’ 마사지가 끝내주는 스파도 가봐야 한다.) 복잡한 사념 없이 매 순간 느끼는 대로 반응하고 단순한 순리에 따라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 이 감각을 경험하는 일이 아난타라 우붓에서는 가능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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