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방러 슬로바키아 총리 "젤렌스키에 대한 대응"
푸틴 "가스 공급 계속할 준비", 크렘린궁 "상황 복잡…많은 관심 요구"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우크라이나가 자국 영토를 통한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유럽 공급을 중단하기로 하면서 일부 친러시아 유럽 국가가 러시아와 더욱 밀착하고 있다.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는 22일(현지시간) 러시아를 깜짝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가스 공급 문제를 논의했다.
타스,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23일 브리핑에서 "어제 푸틴 대통령과 피초 총리가 대화했다. 그들은 에너지와 가스 문제를 논의했다. 꽤 상세한 대화를 했다"고 전했다.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슬로바키아의 피초 총리가 서방 지도자로서는 이례적으로 러시아를 찾은 것은 우크라이나가 내년부터 러시아산 가스 수송을 중단하기로 해서다.
우크라이나는 자국을 지나는 가스관을 통해 연간 약 150억㎥의 러시아 천연가스를 여러 유럽 국가로 보내왔는데 올해로 만료되는 이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우크라이나를 통해 연간 약 30억㎥의 러시아 가스를 공급받는 슬로바키아는 반발했다.
다른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를 제재하기 위해 러시아산 가스 수입량을 줄이는 것과 달리 슬로바키아는 저렴한 러시아 가스 수입을 거부할 경제적 여력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슬로바키아는 우크라이나를 통해 받은 가스를 다시 오스트리아 등 다른 국가로 재전송하는 수수료로 연간 약 5억 유로(약 7천554억원)의 수입도 올리고 있는데 현재로선 이 수입도 끊길 처지다.
피초 총리는 회담 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통해 계속 서방에 가스를 공급할 준비가 됐다고 확인했다면서도 "우크라이나의 입장을 고려하면 (내년) 1월 1일 이후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페이스북에서 밝혔다.
그는 "이번 방문은 우리(슬로바키아) 영토에 대한 어떠한 가스 공급도 반대한다고 말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대한 대응이 됐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피초 총리는 지난 19일 EU 정상회의에서 만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계속 가스를 공급할 수 있는지 물었지만 부정적 대답이 돌아왔고 이에 푸틴 대통령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는 EU 고위 대표들에게도 지난 20일 자신의 러시아 방문 계획과 목표를 통보했다고 덧붙였다.
피초 총리가 이끄는 슬로바키아 사회민주당(스메르) 소속 루보스 블라하 유럽의회 의원은 이번 방문으로 젤렌스키 대통령이 거만함으로 인해 얼굴을 맞는 듯한 충격을 받게 됐다고 논평했다.
피초 총리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 원자력 분야에 대한 제재도 지지함으로써 슬로바키아 원전 운영과 재정을 위협한다며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슬로바키아는 소련, 러시아가 참여한 원전 단지 2곳을 운영하고 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유럽에 대한 러시아 가스 공급에 대해 "우크라이나 측의 성명도 나왔고, 러시아에서 계속 가스를 구매하며 이것이 자국 경제 운영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유럽 국가들의 입장도 알려졌다"며 "많은 관심이 요구되는 매우 복잡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과 피초 총리가 가스 공급 문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피초 총리는 지난해 10월 총리로 당선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중단하고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막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내년 5월 러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 승리 기념일(전승절) 행사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유럽의 또 다른 친러시아 국가로 분류되는 헝가리의 씨야트로 페테르 외무장관도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더 좋은 제안이나 더 안정적이고 저렴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닌데 러시아와 에너지 협력을 멀리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유럽에서 대표적인 친러시아 지도자다.
하지만 오르반 총리와 피초 총리의 친러시아 행보는 다른 유럽 국가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피초 총리가 푸틴 대통령의 전쟁 자금 조달과 유럽 약화 행위를 도우려 한다며 "부도덕하다"는 비판의 글을 올렸다. 슬로벤스코(진보 슬로바키아), 자유와 연대(SaS) 등 슬로바키아 야당도 러시아가 아닌 우크라이나와 가스 문제를 협의해야 한다며 피초 총리를 비판했다.
국제 고립 위기에 처했다가 유럽 정상의 잇단 방문으로 기회를 보게 된 푸틴 대통령은 내년 1월 여러 해외 국가 방문을 계획하고 있다고 페스코프 대변인이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밝혔다. 방문할 국가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다.
abb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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