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 씨는 남자친구와 3년 정도 만났을 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남자친구가 결혼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민정 씨는 혼란에 빠졌다.
"전 언젠가는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겠다고 늘 생각해왔어요. 짜증난 상태로 누워서 휴대폰을 보고 있는데, 결혼정보회사 광고가 눈에 들어온 거예요. '한번 해보자'하는 생각에 등록했어요."
홧김에 내린 결정이었지만, 이 결심으로 민정 씨는 30세의 태형 씨와 만나게 됐다. 그리고 태형 씨는 민정 씨의 남편이 됐다.
이 신혼부부는 결혼한 지 4개월 차다. 첫 눈에 반하는 만남은 아니었지만, 이 둘은 첫 만남부터 잘 통했다.
"아내를 만나기 전날 회식에서 과음을 했어요. 그래서 첫 만남에서 숙취가 좀 있던 상태라 최상의 모습은 아니었죠."
태형 씨는 아내와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아내의 웃음이 좋았어요. 대화도 잘 통했고요"라고 전했다.
"그래서 기회를 한 번 더 얻고 싶었어요. 그 다음 데이트에서는 첫 만남보다 더 좋은 인상을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한국의 결혼정보업체는 고객의 첫 만남을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만남을 주선하기 전에 고객의 개인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필수다.
고객들은 등록을 위해 자신의 연령대와 직업, 경제력, 가족 배경 등을 기입해야 한다.
이후 고객은 프로필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게 된다. 예를 들어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고객은 직업 면에서 가장 상위층의 등급을 가지게 되며, 대기업 회사원 등은 그 아래 등급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다.
일부는 이러한 등급제를 비판하며, 사회적 지위에 너무 많은 가치를 두는 물질만능주의적 행태라고 꼬집는다.
하지만 민정 씨에게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찾는 것은 아주 중요했다.
태형 씨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결혼정보회사에 제공하는 개인정보를 통해 스스로와 비슷한 사람을 찾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졌다.
그리고 그 결혼정보회사는 둘을 이어줬다.
서울에서 회사원으로 일하는 둘은 이제 결혼을 통해 인생의 2막을 열었다. 이들은 함께 서울에서 작은 와인 가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태형 씨는 아내 민정 씨의 손을 꼭 잡으며 "회사원으로서 매일 반복되는 일상으로 지루할 뻔했던 삶을 바꿔놨다"고 말했다.
"이제 아내와 새로운 일들을 함께 해나가면서 인생을 꾸려나가고 있어요. 아주 재밌는 삶입니다."
다시 떠오르는 결혼정보회사
한국에는 2024년 기준 1000개에 가까운 결혼정보회사가 운영 중이며, 많은 업체들이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성행 중이다.
BBC가 여러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알아본 결과, 이들은 지난 몇 년간 평균 30%의 매출 증가를 기록했으며, 많은 미혼 청년들이 꾸준히 결혼정보회사를 찾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정보회사 엔노블의 한기열 부대표는 "코로나19 당시 자연스러운 만남의 기회가 줄면서 많은 사람들이 결혼정보회사를 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코로나 고객"들의 성공 사례가 "인식의 변화"를 이끌었고, 그 결과 결혼정보업계의 호황으로 이어지게 됐다고 덧붙였다.
"과거에 청년들은 결혼정보회사가 결혼에 실패한 사람들이 오는 곳으로 인식을 했다면, 이제는 자신이 찾는 조건의 파트너를 만날 수 있는 수단으로 인식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32세의 한 결혼정보회사 고객은 많은 동료들과 친구들이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했다고 전했다.
"저 또한 결혼정보회사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있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제는 그냥 익숙한 방법 중 하나예요. 친구들이 주선해주는 소개팅은 저에겐 너무 큰 부담이었어요. 겹지인이 있는 상대방을 거절하는 게 어려웠는데, 결혼정보회사는 그런 부담이 없어요."
하지만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결혼에 성공한 이들도 이 프로세스가 냉정한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사회적 지위에 강조점을 과도하게 둔다는 점이다.
민정 씨 역시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했다는 사실을 부모님께 처음 털어놓은 날을 기억한다.
"약간 민망했어요. 결혼정보회사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사람들을 조건에 따라 판단하고, 심지어 사랑 없이 결혼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니까요."
결혼정보회사가 모든 이들에게 통하는 것도 아니다.
결혼정보회사의 이용료는 고객들을 고민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이 서비스의 이용료는 약 200만원에서 800만원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으며, 이러한 금액대는 많은 사람들에게 가입을 주저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이미 가입한 이들에게조차 이 금액대는 더 많은 만남의 기회를 위한 재가입을 고민하게 만들기도 한다.
교사라고 밝힌 36세 익명의 여성은 약 10년 전 결혼정보회사를 등록했었지만 짝을 찾는데 실패했다고 전했다.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만났던 사람들은 둘 중 하나였어요. 엄청난 결점이 있는 사람이거나, 너무 완벽한 조건을 갖고 있어서 그들 또한 완벽한 파트너를 찾고 있거나. 그래서 너무 힘들었어요."
그는 결혼정보회사를 통한 만남이 마치 과제를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로맨틱하지 않아요. 뭔가 실수 없이, 완벽하게 해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정부가 주선하는 미혼 청춘 만남
감소하는 혼인율과 출산율은 한국 정부에게는 오래된 과제다. 결혼정보회사의 성행에도 불구하고 이 수치는 여전히 역대 최저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2023년을 기준으로 혼인율은 10년 전과 대비해 40% 감소했다.
여성이 가임 기간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나타내는 합계 출산율은 0.72, 역대 최저이자 전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2017년, 멕시코에 이어 2위를 기록한 한국의 장시간 노동 관행을 그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일과 삶의 병행이 어려운 점과 치솟는 집값과 양육비 등은 출산 이후 여성이 일터로 복귀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이 안정적인 인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합계출산율이 2.1 정도를 기록해야 한다.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정부는 직접 청년들의 만남을 주선하고 나섰다. 청년들이 짝을 만날 수 있도록 만남 주선 이벤트를 주최하기 시작한 것이다.
경기도 성남시는 최근 올해 들어 7번째 만남 주선 행사를 개최했다. 지난 11월, 성남시에 거주하는 27세에서 39세 사이 100명의 청년들이 판교의 한 호프집에 모여 음악과 게임, 음식과 맥주를 즐겼다.
이들은 행사에 지원한 많은 사람들 중 랜덤으로 뽑힌 청년들이다.
신상진 성남시장은 경쟁률이 6:1에 달했다고 전했다.
"별 생각 없이 도착했는데, 막상 오니까 너무 떨리네요."
"심장이 뛰는게 느껴진다"는 32세 박무진 씨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많은 청년들처럼 그 또한 일을 시작하게 되면 누군가를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일이 너무 바쁘고 막상 30세가 지나니까 새로운 사람을 만날 시간도, 장소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에 성남시에서 좋은 기회를 제공해서 이렇게 오게 됐습니다."
정부가 주관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행사는 활기차고 캐주얼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맥주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를 주고 받았다. 처음 만났을 때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대화 중에 손을 잡고 있는 등 게임을 통해 자연스러운 스킨십이 유도되기도 했다.
30대의 홍유선 씨 역시 파트너를 찾고자 이 행사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100명이나 모인 이 행사처럼 큰 그룹으로 진행되는 경우에는 누군가와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는 있는데, 대신에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정부는 이러한 행사가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자부한다. 성남시는 현재까지 진행된 행사가 43%의 커플 성사율을 보였으며, 그 중 두 커플은 실제로 결혼까지 이어졌다고 전했다.
이 행사에 참여한 성진 씨는 "이러한 행사를 주관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닌데, 그런 면에선 (혼인율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문제인지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수년 간 인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육비 지원, 신혼부부를 위한 저금리 주택담보대출 등의 정책을 내놓고 있다.
신상진 성남시장은 "지난 20년 간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시행했던 모든 정책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성남시가 청년들을 위한 만남의 장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가 개개인의 사생활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기도 한다.
또한 출산 휴가 후 여성들의 일터 복귀나 고물가 등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남편을 만난 민정 씨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는 커리어를 막 쌓기 시작하는 시기인데, 사회는 35세 정도가 되면 내 가족을 꾸리고 있어야 한다는 압박을 준다"고 말했다.
"육아 휴직 후에 내 일이 없어지거나 하는 일터에서의 어려움 같은 게 계속 남아있다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라는 정부의 목소리는 설득력이 없죠."
30대에 들어선 민정 씨는 "많은 청년들에게 감소하는 혼인율과 출산율은 사회적 문제로 비춰질 뿐이지, 개개인의 문제로 인식되진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회적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라'는 말이 실제로 다가오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의 남편 태형 씨에게도 결혼은 '자신을 위한 선택'이었다.
"아내와 함께 재밌는 시간을 보내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해야겠다는 제 선택은 오로지 제가 원해서 한 것이고, 사회적인 압박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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