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삼성전자 제품 품질을 둘러싼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슷한 시장 점유율을 가진 경쟁사와 비교해도 미국 소비자 제품 안전 위원회에 접수된 민원건수가 월등히 많았다. 관련업계 안팎에선 삼성전자의 핵심 경쟁력이자 고 이건희 회장의 경영 철학인 '품질경영'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비자 불만 접수 경쟁사 대비 3배, 삼성전자 미래 동력 프리미엄 전략도 '공염불' 우려
시장조사업체 트랙라인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는 미국 생활가전 시장 점유율(수량 기준)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점유율은 19%였다. 이어 △제너럴 일렉트릭(GE) 17% △LG전자 16% △윌풀(WhirlPool) 16% 등의 순이었다. 1위부터 4위까지의 시장 점유율 격차가 고작 1~2%에 불과한 것인데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런데 각축전에 가까운 시장 점유율과 달리 소비자 민원은 삼성전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최근 1년간 미국 소비자 제품 안전 위원회(U.S. Consumer Product Safety Commission·이하 CPSC)에 접수된 가전제품 소비자 신고를 집계해 본 결과, 삼성전자 제품 관련 신고는 302건에 달했다. 이어 △월풀 153건 △제너럴 일렉트릭 142건 △LG전자 113건 등이었다.
시장점유율 차이가 고작 1% 밖에 나지 않는 제너럴 일렉트릭 보다 2배 이상, 경쟁사이자 같은 국내 가전기업인 LG전자와는 3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셈이다. CPSC는 미국 정부 독립기관으로 제품 안전을 총괄하는 기관이다. 소비자 신고를 근거로 제품 리콜 조정 및 판매 중지 등의 권한을 지니고 있다. 2016년 갤럭시 노트7 폭발 사고 당시 글로벌 판매 및 교환 중단을 결정한 기관도 CPSC다.
삼성전자 가전제품에 대한 소비자 민원이 많다는 것은 삼성전자의 프리미엄 가전 시장 공략에도 상당한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프리미엄 제품의 최대 경쟁력이 바로 '품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글로벌 최고 명품 가전 브랜드로 평가받는 독일의 밀레(Miele)의 경우 올해 접수된 소비자 신고는 1건에 불과했다.
아들 대에서 끊긴 고 이건희의 '품질 경영' 철학…"무분별한 비용절감이 부른 재앙"
현재 CPSC 신고 접수된 삼성전자 가전제품 모델은 총 45개다. 그 중 국내에서 함께 판매된 제품은 총 2개다. 냉장고(RF28HMEDBBC), 32인치 TV(UN32M4500BFXZA) 등에 대해 각각 1건씩의 민원이 접수됐다. 냉장고의 경우 단순 고장 신고지만 TV의 경우는 화재 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민원인의 주장에 따르면 화재 경보를 듣고 거실로 가보니 TV가 내부부터 타들어가고 있었다.
삼성전자 가전제품 중 가장 많은 민원이 접수된 제품은 주방가전이었다. 주방 가전 특성상 제품 하자는 화재나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접수된 제품 고장으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토로하는 소비자들도 일부 존재했다. 올해 3월 삼성전자 '오버 더 레인지' 전자레인지를 구매한 레이첼(Rachel) 씨는 구매한지 반년 만에 제품 내부가 스스로 불탔다고 신고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1주일간 레인지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제품에서 연기가 났고 이후 확인해 보니 내부에 화재 흔적이 있었다. 해당 제품 모델명은 'ME19R7041FS/AA'로 국내에선 판매되지 않고 있다. 레이첼 씨는 "집안에 4살 아들이 있었는데 제품 화재로 인해 집안이 연기로 가득 찰 정도였다"며 "제품 내부 전선이 녹아 있는 것을 보니 전선 피복 발화나 합선 현상인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어 "구매한지 1년도 안된 제품이 혼자 불타버린 것은 매우 무서운 경험이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오븐레인지의 제품 발화로 민원을 제기한 소비자도 있었다. 로이스(Roys) 씨는 "빠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자칫 집을 잃었을 수도 있었다"며 "인터넷을 찾아보니 비슷한 현상을 겪은 사람들이 많이 보였는데 정작 삼성전자에 문의하니 이런 소식을 들어본 적 없단 듯이 행동했다"고 말했다. 이허 "이런 제품은 누군가의 생명을 뺏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 CPSC에 리콜 조치를 요청했다"고 부연했다.
크리스틴 씨는 SPSC에 "냉장고 냉매 유출로 건강상 문제가 생겼다"고 주장하며 민원을 제기한 인물이다. 그가 민원을 제기한 제품 모델 명은 'RF29A9771SG/AA'로 미국 삼성전자 공식 홈페이지에서 4599달러(한화 약 660만원)에 판매된 고가의 프리미엄 모델이다. 크리스틴 씨는 "2년밖에 안된 냉장고에서 유출된 냉매가 온 집안을 덮쳤다"며 "남편은 사건 이후 5번의 발작과 1회 뇌졸중을 겪었다"고 호소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프레온 가스 흡입 시 산소 부족으로 뇌에 영구적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
냉장고 제품에 대한 불만으로 민원을 제기한 소비자는 또 있었다. 앤토니 씨는 "냉장고 청소를 위해 선반을 분리해서 식탁에 올려놓자 폭발했다"며 "금이 가거나 깨진 것이 아닌 말 그대로 폭발을 했는데 안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면 실명됐을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르데스크 취재에 따르면 CPSC는 삼성전자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월에는 전기레인지 제품인 모델명 'NE63T8751SS/AA'의 슬라이드인 레인지를 화재 유발 위험 제품으로 지목해 삼성전자가 자발적 리콜에 돌입하기도 했다. CPSC 관계자는 "CPSC에 접수되는 소비자 신고는 축적되는 형식이다"며 "개별 건수가 큰 힘을 발휘하기는 힘들지만 같은 제품에 대한 민원이 축적될 경우 합당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삼성전자 제품에 대한 소비자 민원이 급증하는 현상은 더욱 큰 위기의 전조라고 진단했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기업 반열에 오른 배경에 고 이건희 회장시절부터 이어져 온 '품질경영' 철학이 자리하고 있는데 지금의 상황은 성장 동력이자 핵심 경쟁력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가전제품의 본질이자 기본인 기능과 안전을 잡지 못한다면 휘황찬란한 광고나 신기술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삼성전자가 그동안 단기 실적 내기에만 급급해 비용 절감에 집중한 것이 결국 품질에 영향을 미쳐 급기야 소비자 불만으로까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CPSC 신고와 리콜사태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미국 당국과 긴밀히 협력해 신뢰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 할 것이다"며 "설계 및 품질 관리 프로세스를 계속해서 강화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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