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장애인 권리보장 잇단 판결…"사법접근성 높인다"

법원, 장애인 권리보장 잇단 판결…"사법접근성 높인다"

이데일리 2024-12-23 13:59:4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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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성주원 백주아 박동현 기자] 법원이 최근 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한 판결들을 잇달아 내놓으며 사법접근성 강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장애인의 참정권과 접근권 관련 소송에서 원심을 뒤집는 판결을 내린 데 이어 발달장애인 등을 위한 사법지원 제도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18일 오후 발달장애인 단체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심 선고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사진= 박동현 기자)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민사1-3부(부장판사 이은혜 이준영 이양희)는 지난 18일 발달장애인들이 제기한 그림투표용지 보장을 위한 차별구제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공직 선거에서 원고들이 요구할 경우 투표 보조 용구, 사진 등을 이용해 문자를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기구를 마련하고 제공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1심의 각하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청구에 해당하는 내용이 공직선거법에 없기 때문에 법을 먼저 바꿔야 하므로 소송할 수 없다”며 청구를 기각한 바 있다. 발달장애인들은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22년 1월, 발달장애인의 선거 참여를 위해 정당·후보자들의 그림 선거공보물과 후보자 사진이 포함된 그림 투표용지 비치 등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소송의 법률대리인을 맡은 정제형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다행히 재판부는 간곡한 외침을 외면하지 않았다”며 “소속 정당 로고 또는 후보자 사진이 포함된 선거 보조 기구를 제공하라는 재판부의 일부 승소 판단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튿날인 19일 대법원은 장애인 접근권 관련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정부가 14년이 넘도록 행정 입법 의무를 불이행한 부작위로 지체장애인의 접근권이 유명무실해졌다”며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이는 장애인 접근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한 최초의 판례다.

대법원은 “장애인의 접근권은 헌법상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장애인에게도 동등하게 보장하고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이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 데 필수적인 전제가 되는 권리”라고 판시했다. 이어 “행정 입법 의무 불이행에 대한 손쉬운 사법적 권리구제 수단이 마련돼 있지 않은 우리 법제에서 국가배상청구가 가장 유효한 규범통제 수단이자 실질적으로 유일한 구제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10월 2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장애인 접근권 국가배상 사건 관련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1998년부터 2022년까지 편의점 등 소규모 소매점의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기준을 ‘바닥면적 300㎡ 이상’으로 제한해 전국 편의점의 97%가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받지 않게 된 것에 대해 정부의 책임을 물은 것이다. 대법원은 장애인단체가 지속적으로 개정을 요구했고 유엔(UN) 장애인 권리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문제점을 지적했는데도 공무원들이 개정하지 않고 규정을 방치했다며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판결 흐름 속에서 법원행정처는 장애인 등 정보약자를 위한 ‘이지리드(easy-read·쉬운) 판결서’ 제도의 본격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2025~2029년 중기사업계획에 이지리드 판결서 관련 예산을 반영해 2026년 예산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법조계에서는 최근 법원의 일련의 판결과 제도 도입이 장애인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적극적인 해석과 실천으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정보접근성, 시설접근성, 참정권 등 기본권 측면에서 포괄적 보장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대법원이 장애인 접근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정부의 입법부작위에 대한 배상 책임까지 인정한 것은 매우 획기적”이라며 “이는 향후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 관련 정책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판결들이 장애인의 실질적 권리 보장으로 이어질지도 관심이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위법한 행정입법 부작위로 인해 장애인이 겪었을 고통을 위로하고 돕는 것은 국가의 책임을 명확히 함과 동시에 국가에 대해 적시의 적절한 행정입법 의무의 이행과 적극적인 장애인 보호정책의 시행을 촉구하는 수단으로서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사진= 방인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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