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장춘 박사.
보통 씨 없는 수박을 만든 사람이라고 많이들 알고 있음. 그러나 실제로는 이 분이 씨 없는 수박을 만들지는 않음. (만든 사람은 일본 과학자)
그냥 한국에 와서 “유전학을 연구하면 이런 신기한 작물도 만들 수 있다.”라며 보여준 것인데 워낙 충격이 커서 씨 없는 박사 = 우장춘으로 알려졌을 뿐임.
그가 남긴 업적 중 가장 유명한 건 다윈이 만든 종의 기원 – 진화론을 일부 수정하게 만든 것으로 이것만으로 한국인으로서는 몇 안 되는 과학자적 업적을 세계에 남긴 사람임.
우 박사의 해당 논문은 아직까지도 십자화과 식물 (배추, 유채, 양배추)의 연구 논문이면 필수적으로 인용되고 있음.
그의 아버지 우범선은 을미사변에 가담했던 친일파였고, 우장춘의 연구 대부분은 일본 시절에 이뤄진 것들임. (엄마가 일본인)
하지만 우장춘은 자신이 한국인임을 자각하고 2차 세계대전 후에 스스로 조선인 강제 수용소에 들어가며 한국에 들어옴.
일본은 세계적인 과학자를 잃고 싶지 않아 그의 귀국을 막기 위해 구속까지 하려 했지만 본인이 귀국함.
한국에서는 식량난 해결을 위해 종 개량에 힘썼는데 대표적으로 고급 식물이었던 배추를 개량하여 생산성과 맛을 높여서 김치 하면 배추김치(요즘 우리가 먹는 바로 그 배추임, 이 품종은 외국에선 거의 구하기 힘들고, 외국에서 재배하더라도 한국 토양과 기후가 아니어서 다른 맛이 남)를 만들었고, 무의 맛과 생산성을 높이며, 수출을 위해 화훼산업용 꽃 종자들을 개량하고, 당시만 해도 대표적인 작물이 없다시피했던 제주도에 감귤사업을 위해 귤 개량에 나서 제주도의 감귤사업을 만듬.
그가 한국에 와서 죽기 전까지 연구했던 건 생산성을 높이면서도 맛이 좋은 쌀 종자의 개발!
한국에서는 그냥 씨 없는 수박 만든 사람으로 잘못 알려졌지만 그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남긴 몇 안 되는 한국인 과학자이며, 일본에서는 아직도 중요한 과학자로 가르칠 정도임.
우장춘 박사가 평범한 인생을 살았다면 오히려 일본인으로 남은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름.
본문에는 우장춘 박사의 아버지 우범선이 을미사변에 참여한 조선인 정도로 해놨지만 당시 우범선은 조선의 별기군 대대장 이었음.
즉 , 조선의 군인이 오히려 적의 앞잡이로 길 안내를 한 것인데 이 을미사변에 참여한 유일한 조선인이자 군인이 우범선.
이후 우범선은 보복이 두려워 일본으로 망명하고 일본인과 결혼해서 우장춘 박사를 낳았음. 그러나 우장춘 박사가 6살이 되던 해 조선인 자객 고영근에게 피살됨.
엄밀히 얘기하면 우장춘 박사는 태어난 것도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것도 일본임. 그래서 고향이라고 하면 조선이 아니라 일본이라고 하는게 맞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온 것은 아버지가 저지른 죄를 자식으로서 참회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음.
아이러니하게도 이승만은 이런 우장춘 박사가 본인의 모든걸 버리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해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일본으로 잠깐 가서 장례를 치르고 싶다는 것도 막았고, 결국 우장춘 박사는 어머니 시신 없이 한국에서 어머니 장례를 치룸.
나도 잘못 알고 있었네..
[출처] 한국인 대다수가 업적을 잘못 알고 있는 과학자 – 신선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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