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박정현 기자] 인공지능(AI)의 범용화를 목전에 두고 기업이 'AI' 중심으로 사업을 전환하자 글로벌 정상들은 이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새 시대와 함께 미국 빅테크에 집약된 첨단 산업 생태계의 재편 가능성이 열렸기 때문이다. 슬슬 AI 기업들이 몸풀기를 마치고 '퍼플렉시티'나 '서치 GPT' 등 수익화를 위한 검색엔진 출시에 한창이다. 검색엔진은 AI의 가장 발빠른 수익화 방편으로 예상될 뿐더러 구글처럼 락인(Lock-in Effect, 특정 제품을 계속 사용하는 현상)을 지속할 수 있다는 특성을 가진다.
게다가 데이터를 수집하는 AI는 자국 관점의 정보와 해석에 치우쳐지므로 미국 빅테크들에 대한 가치관 종속도 우려되던 상황이다. 일례로 중국 AI에게 '문화대혁명'에 대해 물어보면 정부 검열을 거친 해당 모델은 답변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수면 위로는 기업이 AI를 제품에 적용해 물성화를 이루고, 물밑에서는 국가 차원의 '소버린(Sovereign, 주권) AI' 경쟁이 전개됐다.
산업의 새 먹거리라고 생각됐던 AI가 정치에까지 개입한 것이다. 기업 AI를 '만지고 적용'할 수 있게 각국이 '고민'했던 올 한해를 결산해본다.
◆ 글로벌, 규제 눈칫싸움 시작
올해 상반기 미국은 지난해 10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AI 행정명령(AI 행정명령)'에 대한 후속조치를 연달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주요 기업은 AI 모델을 출시할 때 안전 시험 결과나 중요한 정보들을 미국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 미국 정부가 AI 산업 최선두에 선 자국 기업들에 대한 규제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같은 시기 유럽연합(EU)도 'AI 법(AI act)'을 통과시켰다. 위반시 전 세계 매출의 최대 7%를 과징금으로 내는 세계 최초의 강제성 있는 AI 기술규제다. 미국과 비견될만한 빅테크기업이 없는 유럽은 쳐지는 기술력(하드파워)를 규범력(소프트파워)로 보완하고 있다.
AI 업계 관계자는 "빅테크들이 비즈니스, 정치, 여론 등을 주도하기 쉬우니 여러 법을 만들어 빅테크들에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술패권 경쟁에서 뒤처진 EU가 AI법을 필두로 DMA·디지털서비스법 등 이용자 중심의 규제안을 만들어 미국 기술을 견제하고 자국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것으로 풀이했다.
AI가 생활권에 침투하는 속도만큼 글로벌 AI 안보 선점을 두고 미국과 EU가 크게 경쟁을 펼친 것이다. 대대적인 AI 투자를 발표한 다른 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은 지난해 'AI 윤리 거버넌스' 표준화 지침을 마련했다. 일본 역시 히로시마 AI 프로세스를 주도적으로 이끌며 국제 규범 만들기에 앞장섰다. 영국과 캐나다도 법률과 의료에 AI 기본 원칙을 세워 준수하고 있다.
◆ AI 주도권 놓고 각국 정부 적극적 시장개입
업계에선 AI를 '돈 먹는 하마', '전기 먹는 하마'로 부르기도 한다. AI 투자금액은 기본 적으로 조단위이다. AI 산업을 자국에 유리하게 조성하기 위해서는 '소버린 AI'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올해 각국 정부는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와 적극적인 시장개입을 쏟아냈다.
일본은 통신기업 소프트뱅크를 앞세워 잃어버린 '디지털 주권'을 찾는 노력을 보였다. 일본 정부는 컴퓨팅 자원을 강화하기 위해 10억달러(1조4000억원) 규모의 광범위한 이니셔티브를 구축하며 AI 절대 갑(甲) 기업 엔비디아의 선택을 받았다. 7월 일본의 AI 연구용 슈퍼컴퓨터에 수천 개의 엔비디아의 그래픽칩(GPU)이 제공됐으며, 소프트뱅크는 세계 최초로 엔비디아의 DGX B200을 사용해 'DGX슈퍼POD'라는 일본에서 가장 강력한 AI 슈퍼컴퓨터를 만들 예정이다. 향후 이 슈퍼컴퓨터를 통해 일본형 거대언어모델(LMM)도 개발하기로 했다. 엔비디아가 직접 일본의 '소버린 AI'를 돕는 셈이다.
일본 정부의 시장 개입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일본 정부는 4월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 NHN재팬의 '라인'과 일본 소프트뱅크의 '야후재팬'이 2019년 합작해 탄생한 '라인야후'에서 네이버를 배제하라는 취지의 행정지도를 내렸다. 정부가 개인정보 유출을 빌미로 민간기업의 소유구조를 바꾸라고 압박하는 건 국제적으로 이례적인 일이지만, 업계는 일본 정부와 소프트뱅크가 물밑 교감 하에 AI 육성방안의 하나로 라인 사태를 지속하고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
미국과 중국은 AI 산업 견제를 위해 스케일이 남다른 반목을 보이고 있다. 미국 정부가 1월 대중 반도체 수출길을 통제하자 중국 유망 AI 스타트업들은 구글의 ‘구글 클라우드’ 또는 MS의 ‘애저’의 아시아태평양 서버를 임대하고, 그 곳에 장착된 엔비디아의 A100 또는 H100을 사용했다. 엔비디아의 경우 전체 매출의 약 15%를 차지하는 중국 시장에서의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중국은 희토류 수출 제한과 엔비디아 반독점 조사 착수로 맞대응에 나섰다. 더불어 자체 AI 칩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중국의 기술 자립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 질주했던 정책 시계...탄핵정국 속 'AI 기본법' 통과
예상치 못했던 비상계엄과 탄핵정국 여파로 국가 단위 AI 정책을 추진하는데 제동이 걸렸지만, 한국도 정부가 기업의 조속한 AI 전환을 위해 관련 정책의 반석을 닦는 등 산업의 물꼬가 트이던 해였다.
4월 민간 정부가 모여 AI 정책을 결정짓는 의사결정 협의회 'AI전략최고위협의회'가 출범했다. 각종 산업 진흥책과 연구개발(R&D), AI 윤리 등 굵직한 정책의 방향을 결정짓는 상위 기구의 민관협의회가 탄생한 것이다. 정부는 협의회를 주축으로 연내 총 7102억원을 투입해 초거대 AI 5대 서비스 개발 등 69개 과제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9월에는 국가 AI 정책을 총 지휘하는 대통령실 직속 '국가AI위원회'가 설립됐다. 이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부처 산하 연구소(글로벌AI프론티어랩, AI연구거점, AI안전연구소)들도 차례대로 개소했다. 국가AI위원회는 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인데 탄핵정권에 들어서면서 지금은 위원장이 실질적으로 공석이다.
AI 정책 토대가 되는 '‘인공지능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 한 기본법안(AI 기본법)'도 국회와 정부가 합심해 속도를 내는 중이었다. 17일 탄핵정국 속에서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통과해 현재 본회의 상정을 코앞에 뒀다. 해당 법은 딥페이크 성범죄나, AI 콘텐츠 저작권 문제 등 AI로 파생되는 사회적 문제를 규제할 수 있어 주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반면 같은 17일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교육법 개정안)’은 의결됐다. 지난해 교육부가 AI교과서(AIDT)를 내년부터 초중고교에서 필수적으로 쓸 것을 발표하면서, 교과서 발행사들과 에듀테크 기업들은 상당한 투자를 감행한 상태다. 다만 야당이 AIDT를 교육자료로 격하시키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등 1년치 사업에 차질을 빚어 기업들은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를 급격히 잃기도 했다.
이제야 본격 개척된 AI 산업은 국가AI위원회와 같은 상위 기구 의사결정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이나 연말 국가 단위 AI 정책 의사결정 과정에 제동이 걸리고 산하 부처마저 기존 발표했던 로드맵을 조정하는 등 확실한 '기조'를 보여주지 못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7일 '생성형 AI와 경쟁' 정책보고서를 발간하며 국내 AI 시장이 미국 빅테크와 같은 소수 사업자에 주도되고 있다고 밝혔다.
AI반도체 분야는 엔비디아·인텔·AMD에 대응해 국내의 리벨리온·퓨리오사AI가 참전했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아마존웹서비스(AWS)·마이크로소프트(MS)·구글 등 해외 클라우드서비스제공사(CSP)가 우세했다. AI 기능 구연의 기초가 되는 기반모델도 필수 인프라를 이미 확보한 구글·메타·오픈AI·MS·엔비디아 등 빅테크 기업이 시장을 선점한 상태로, 네이버·카카오·LG·KT·NC소프트·업스테이지 등 국내사업자가 상대적으로 열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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