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윤석열의 필독서였을까?

이 책, 윤석열의 필독서였을까?

프레시안 2024-12-21 20:02:24 신고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그가 말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노인과 바다>(어니스트 헤밍웨이, 김욱동 옮김, 민음사)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남성성이 강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But man is not made for defeat," he said.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란 인용문은 헤밍웨이의 작품세계를 응축해 보여주는 문장이다.

이 문장은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노인 어부 산티아고의 세계관이자 소위 남성성이 뚜렷한 헤밍웨이의 삶의 태도이다. 84일을 고기 한 마리도 낚지 못해 한물간 어부 취급을 받던 산티아고가 85일째 홀로 바다에 나간다. 먼바다에서 낚싯배보다 큰 청새치 한 마리가 낚싯바늘에 걸리고 그 물고기와 사투를 벌인다. 끝내 청새치를 잡는 데 성공하지만, 배에 밧줄로 묶어 매달아 놓은 청새치의 피 냄새를 맡은 상어 떼의 공격을 받는다. 상어 떼에 맞서 싸웠지만 역부족, 뭍에 돌아온 산티아고에게 남은 건 머리와 뼈뿐이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다른 소설에 비해 비교적 줄거리가 단순하고 짧아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이 줄거리의 요약이 인용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장은 진취적이다. 불굴의 도전 정신을 찬양하는 듯하다. 삶에서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닌 과정이며 인간 존재의 가치 또한 분투하는 과정에 있지 얻어낸 결과물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성과지상주의의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에 다소 위로가 되는 전언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짧고 힘 있는 문장으로 인생의 비의를 꿰뚫는다는 평가를 받지만 인간 존재를 지나치게 개인 차원에서 또 투쟁의 관점에서 본다는 비판도 그를 따라다닌다. 평범한 인간이 보통의 삶에서 직면하는 익숙한 고통보다는 선택받은 인간이 특별한 상황에서 발휘하는 영웅 정신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지적 또한 가능하다.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는 확실히 특별한 어부다. 따지고 들면 헤밍웨이가 산티아고의 특별한 낚시를 그리면서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했다고 보기 힘들 수도 있다. 어쨌든 낚싯배보다 큰 청새치를 잡은 흔적을 지닌 채 귀향하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성과 혹은 결과는 순간적이며 그것이 성과 또는 결과로 남을 수 있는 건 흔적을 통해서이다. 소설에서는 물고기의 뼈이고, 보통 역사에서는 기록의 형태로 남는다.

어부 산티아고는 청새치를 잡아서 가져오는 데는 실패했지만 청새치를 잡는 데는 성공했다. 그의 과정은, 과정에 그치지 않고 하나는 분명한 결과이며 과정이라 하여도 성공의 휘장을 두른 빛나는 과정이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노인은 (다시)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The old man was dreaming about the lions.)"인 것은 영웅서사를 다시 확인한다. 소설의 앞부분에도 등장하는 '사자 꿈'과 청새치 낚시, 그리고 마지막 꿈의 장면은 이 소설을 포괄하는 영웅주의와 강한 남성성과 관련된다.

그러므로 파멸당할지언정(be destroyed) 패배하지 않겠다(not defeated)는 언명이 관점에 따라 불편할 수 있다. 여기서 '인간'으로 번역한 'man'이 그저 남성일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의 불행한 인생 마무리를 기억하면 인용문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섬뜩한 기분마저 든다.

헤밍웨이의 마초성이 이른바 '독소적인 남성성(toxic masculinity)'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게 되는 게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그가 자신을 정의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괴롭힌 '맨 박스'에서 헤어나오는 방법으로 1961년 7월 2일 자신의 총 '윈체스터 모델 12 펌프 액션 산탄총(Winchester Model 12 pump-action shotgun)'을 선택한 것 또한 인용문과 관련될까.

시국이 시국인지라 나는 이 소설과 인용문에서 자신의 좌절을 국가의 불행으로 뒤바꾼 대한민국의 한 남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영부인에게 오빠로 불린 그는 "요새 일본 여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짱"이라고 한다. "아내 지키겠다고 군대까지 동원하는 저런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게 이유라고 하는데, 뉴스를 통해 접한 소문이어서 실제 일본에서 그런 얘기가 있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술자리에서 '노벨애처가상' 얘기가 끊이지 않고, "사랑을 위해 계엄까지 한" 밈이 떠도는 상황이니, 지어낸 얘기 같지는 않다.

문득 그렇게 '스위트'한 남자는 인용문과 부합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반론이 있지 않을까. 마초적 남성성은 때로 복종의 모습을 취하기도 한다. 외부에 강한 모습을 보이며 절대 굽히지 않는 강한 오빠가 사랑하는 여성에게 감정적으로 의존하며 복종적인 자세를 보이는 건 역설적으로 마초의 숨은 특성일 수 있다. 복종으로 상대에게 헌신하고 마침내 전적으로 의지하게 된다.

윤석열·김건희 대통령 부부의 모습을 지켜보며 소설로는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 <박쥐>의 원작인 <테레즈 라캥>에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질러 몰락하다가 상호파괴로 막을 내리는 로랑과 테레즈를 닮았다.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구체적인 애정사를 모르지만, 뉴스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드러난 행보만으로는 비슷한 양상이다.

대통령은 국민을 패배시키는 자리가 아니라 언제나 국민에게 패배당해야 하는 직위다. 아내에게만 패배당하기를 선택한 그 마초가 요즘 어떤 꿈을 꾸는지 궁금하다. 그가 정치에 뜻을 두지 않고 청새치를 낚는 애처가 어부로 남았으면 그와 나라를 위해서 두루 좋았을 터이다. 그가 어부로 살 마음이었다면 그런 아내가 없었을 수 있으니 애처가는 어쩌면 불가능했겠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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