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제대로 된 완성 경험은 없는 것 같아요. 촬영하면서, 이동하면서 생각나는 것들을 계속 끄적여 놓은 것들이거나 누군가에게 말로 설명한 것들이라 사실 아직은 아이디어 상태인 게 대부분이죠. 그 아이디어들을 시놉시스로 바꾸고, 트리트먼트로 발전시켜보려고 하면, 턱 하고 막히더라고요. 막연하게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들어갈 한두 가지 재밌을 것 같은 디테일을 만들어뒀을 때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막상 조립을 해보려고 하면 재밌을 것 같은 디테일들이 잘못된 파트들이라 안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많거나, 어떻게든 조립해봤더니 너무 흉한 경우가 많더라고요.
다 그래요. 옛날 소설가들도 밤에 쓰고 아침에 일어나서 다 찢어버렸죠.
좀 가볍게 하려고 많이 노력해요. 예를 들어 뭔가 매듭이 안 풀리면 “여기는 나중에 이 문제를 풀고 지나가야 함”이라고 써놓고 그냥 넘어가요. 물론 쉽게 한다는 게 쉽지 않아요. 그나마 지금은 쉬는 시간이니까, 좌절은 할지언정 행복해요. 싱가포르에서 하루는 아침에 걷다가 카페 가서 글을 쓰고 나오면서, ‘내일 아침엔 이걸 좀 써봐야지’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리고 정말 그다음 날 아침에 그것에 대해 썼어요. 그런 게 너무 좋더라고요.
쓰는 것과 연기하는 것 사이에는 비슷한 점이 꽤 있지요.
‘내 것’이 있어야 한다는 점? 예를 들면 ‘자기 연기’라는 게 있지요. 〈범죄도시 2〉의 강해상을 제가 연기하면 다른 배우가 연기했을 강해상과는 확연히 다른 손석구의 강해상이 되어야 해요. 그 특유의 스타일은 똑같이 해보려 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 인장 같은 거죠. 글을 쓸 때도 그런 생각을 해요. ‘이게 내 글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요. 그런데 제 글쓰기가 연기만큼 숙달이 안 되어 있다는 것 정도는 본능적으로 알죠. 가끔 그냥 손 가는 대로 쓰다 보면 딴 사람 스타일을 훔쳐 쓰고 있더라고요.
스타일이 국어로는 ‘문체’고 보통 문체는 그 사람의 몸과 정신 전체에 따른다고 말하곤 하지요. 지금은 아직 익숙하지 않을 뿐, 곧 스타일은 생길 거예요. 그리고 따라 쳐보고 따라 써보는 것도 매우 중요해요.
그나마 그 스타일이라는 게 중요하다는 것, 종종 제가 남의 것을 따라 쓰려 하고 있다는 걸 인지하는 이유가 그나마 연기를 해봐서인 것 같아요. 저도 어린 시절 연기를 처음 할 땐, 이탈리아 사람도 아니면서 알 파치노 연기의 이탤리언 악센트를 전부 따라 했었어요. 〈스카페이스〉에 나오는 알 파치노의 대사를 거의 다 외웠죠. 실은 다른 사람 거 좀 따라 써봐야 되나 싶기도 해요.
옐로 골드 케이스와 그레이 앨리게이터 레더 스트랩을 매치한 산토스 뒤몽 워치, 화이트 골드 LOVE 브레이슬릿, 화이트 골드 LOVE 링, 화이트 골드와 블랙 세라믹의 미디엄 트리니티 링, 화이트 골드 클래쉬 드 까르띠에 링 모두 까르띠에. 셔츠 로리앳. 팬츠, 타이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한편 지난봄에 차린 제작사의 첫 작품인 〈밤낚시〉라는 스낵 무비가 얼마 전 광고 대상을 탔더라고요. 전 그게 광고인 줄도 몰랐어요.
그 작품이 저희 회사의 창립작이에요. 처음에는 광고대행사인 ‘이노션’에서 재밌는 프로젝트를 해보자는 제의가 들어왔는데, 어쩌다 보니 제가 배우로 출연도 하고 직접 감독도 영입하는 공동기획물로 발전됐어요. 저도 이야기를 만드는 프리 프로덕션 단계부터 마지막 배급까지 하는 포스트 프로덕션까지 제작자가 하는 소위 ‘풀 프로덕션’은 처음 경험해봤어요. 물론 전문 프로듀서가 옆에 붙어서 도와주시긴 했지만요.
한국 최초이자 아직도 유일하게 칸 영화제 단편 부문 황금종려상을 받은 문병곤 감독과 함께했지요.
병곤이랑은 안 지가 오래됐어요. 한 6~7년 전부터 거의 매주 만나서 얘기를 나눠요. 〈밤낚시〉가 저희의 첫 작품이고, 앞으로도 계속 파트너로 함께하고 싶어요. 지금도 시나리오 회의를 자주 해요. 아직 구체적으로 나온 건 없지만요. 아시다시피 요즘엔 영화 투자를 받는 게 ‘하늘의 별 따기’이기 때문에 조급해하지는 않으려고요. 물론 그게 쉽지는 않아요.
어쩐지 〈굿 윌 헌팅〉 시절의 벤 애플렉과 맷 데이먼이 생각나는 조합이네요.
(웃음) 우리끼리도 맨날 농담 삼아서 그래요. 우리가 한국의 손 애플렉과 문 데이먼이 되자고요. 그 둘은 정말 보기 좋은 커플이잖아요.
한국에 이미 비슷한 커플이 하나 있잖아요.
누구요?
윤종빈과 하정우 커플이요.
그렇네요. 윤종빈 감독님과 하정우 선배님은 정말 스무 살 무렵부터 함께 역사를 쓰셨죠.
옐로 골드 베젤을 매치한 스틸 케이스의 산토스 드 까르띠에 워치, 검지에 낀 라지 트리니티 링, 소지에 낀 미디엄 클래식 트리니티 링 모두 까르띠에. 코트 버버리. 셔츠 아미리. 팬츠 브루넬로 쿠치넬리.
그러고 보니 윤종빈 감독과 작업한 〈나인 퍼즐〉이 공개를 기다리고 있죠. 윤종빈 감독이 주로 다루던 장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독님이 정말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 있고, 솔직한 사람이거든요. “추리물이 내 전문 분야는 아니다”라고 하시면서 찍기 전에 전 세계에 나온 추리물이란 추리물은 다 보고 오시더라고요. 노력과 시간을 엄청나게 들여서 공부하는 모습과 그렇게 나온 작품을 봤어요. 제가 본 순간 이미 재밌었어요.
연기는 좀 어땠어요.
감독님도 그랬지만, 저도 추리물 연기는 굉장히 낯설었거든요. 추리물은 다른 장르보다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장면들이 훨씬 많아요. 부득이하게 그걸 대사로 표현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요. 윤종빈 감독님은 또 영화를 보면 전혀 안 그러실 것 같은데, 발성, 톤, 표정 등등 엄청난 테크닉을 요구하시는 분이고 정말 꼼꼼하세요. 처음엔 많이 힘들었죠. 그런데 점점 배우면서 익숙해지더라고요.
‘이나’ 역을 맡은 배우 김다미 씨와의 케미스트리는 어땠나요?
제가 처음에 이나의 존재를 의심하는 역할로 나오거든요. 그러나 결국엔 두 사람이 알콩달콩하면서도 함께 사건들을 파헤쳐나가죠. 윤종빈 감독님의 스타일, 제 스타일 그리고 다미의 스타일이 버무려지면서 굉장히 독특한 작품이 나온 것 같아요.
김혜자 선생님이 출연한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최근에 촬영이 끝났죠. 김 선생님이 워낙 대본을 꼼꼼하게 보시는 분이라 기대돼요.
저 정말 이 작품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먼 훗날이 되더라도 김혜자 선생님과 같이한 촬영은 반드시 제 기억에 남아 있을 거예요.
전혀 다른가요?
달라요, 달라요. 연기하면서 ‘이건 어설프게 가짜로 연기하면 안 된다. 그렇게 했다가는 선생님 연기에 절대 안 붙는다’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동선이나 타이밍이나 표정 등을 계산해서 하는 연기는 선생님 연기에 어울릴 수가 없어요. 그냥 ‘찐’ 그 자체거든요.
와….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김혜자 선생님은…. 선생님은 아기처럼 연기했어요. 아기처럼요. 그런데 제가 그 옆에서 어른이 되면 되겠어요? 저 역시 아기가 되지 않으면 둘이 함께일 수 없어요. 어떻게 보면 모든 걸 준비해 갔던 〈나인 퍼즐〉과는 정반대로 아무 생각 없이 촬영장에 갔어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오늘도 선생님이랑 놀다 와야지’라고 생각하고 갔어요. 게다가 또 감독님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과감한 주문을 김혜자 선생님께 다 하세요. 선생님이 그렇게 하시는데, 제가 못 할 게 뭐 있겠어요. 그래서 정말 모든 걸 다 까발리는 연기를 했어요. 처음에는 너무 불안했거든요. 그렇게 카메라 앞에서 망가져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김석윤 감독님이시잖아요. 감독님이 편집본 몇 개를 보내주시면서 “봐 봐라” 하시더라고요. 편집한 걸 보니까 다 까발려 진 것 같던 연기들이 너무 괜찮은 거예요. 그때부터는 정말 그냥 김혜자 선생님의 액션에 따라가는 리액션 느낌으로 갔어요. 그게 되더라고요.
재밌겠네요.
재밌어요. 무척 코믹하고요.
얘기를 들으니 과연 영화는 집단의 예술이군요.
영화는 협업과 설득의 장이에요. 전 그래서 영화 현장이 좋기도 해요. 서로 다른 사람들의 수많은 욕망이 서로를 설득하면서 협업해나가는 유기적인 장이라서요. 저 역시 영화를 하면서 성격도 많이 유해지고 온순해졌어요.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맞춰나가는 법을 배운 거죠.
핑크 골드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의 산토스 드 까르띠에 스켈레톤 워치, 트리니티 쿠션 셰이프 네크리스, 오른속 약지의 핑크 골드 저스트 앵 끌루 링 모두 까르띠에. 재킷 렉토. 티셔츠, 팬츠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지금은 뭘 쓰고 있나요?
시나리오를 써요. 영화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창작물을 만들다 보니 가장 익숙한 영화라는 포맷을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아직 완성한 건 없지만요. 이번 여행에서 어느 정도 꼴을 갖춘 장편을 써보자고 덤벼들었다가 결국 ‘내가 뭔 얘기를 하고 싶은지를 먼저 찾는 게 중요하다’는 깨달음으로 귀결됐어요.
전 〈언프레임드: 재방송〉을 보고 작가 손석구의 가능성을 느꼈어요. 앞으로 진심으로 응원할게요. 한국의 맷 데이먼이 되도록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