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고선호 기자] 차세대 미래 산업의 핵심으로 성장한 인공지능(AI) 분야 주도권 확보를 위한 글로벌 패권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세계 ‘톱티어’ 진입을 목표로 나선 우리나라 AI 정책이 난항을 맞고 있다.
사상초유의 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 탄핵이라는 혼란한 정국 속 AI 산업 육성 정책 기반을 구체화할 각종 현안 논의에 제동이 걸린 탓이다. 그나마 AI 기본법이 최근 국회 문턱을 넘어서는데 성공하며 기대감을 모으고 있지만,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요 AI 강국과의 경쟁에서 이미 격차를 보이고 있는 탓에 업계의 우려를 떨쳐내긴 어려운 형국이다.
20일 국회에 따르면 ‘인공지능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안(이하 AI 기본법)’이 지난 18일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오는 30일 본회의에 상정,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AI 기본법에는 정부의 AI 산업 지원과 관련 정책 추진에 대한 근거가 담겼다. 법안에 따르면 정부는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해 AI 기술 개발과 활용에 필요한 인프라를 지원해야 한다.
이번 법사위 결정에 따라 본회의 통과만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지만, 실제 제도 안착을 위해서는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40조 ‘사실조사’에 관한 내용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큰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40조 사실조사 조항은 단순 민원 및 신고만 들어와도 조사가 가능해지는 ‘독소 조항’이라는 주장마저 나온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이에 대해 일정 부분 인정, 사실조사 조건을 명확히 하기 위한 하위법령 명시 계획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단순 신고나 민원만으로 AI 기업의 장부를 들여다보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해당 조문의 삭제를 추진했으나, 법안에 담긴 채 통과됐다.
과기정통부는 훈령(내규)을 통해 사실조사 조건을 구체화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업계의 우려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인 상태다.
AI 서비스로 파생될 저작권 및 개인정보보호 관련 보호 장치의 부재도 한계로 지젹된다. AI를 매개로 발생 가능한 범죄 및 남용 문제를 두고 시민단체 및 관련협회에서는 더 강력한 규제 마련을 강조해 왔지만 이번 정책에는 반영되지 못했다.
AI 기업 관계자는 “기본법이 현재 상태로 입법이 이뤄지게 된다면 업계에 미칠 파장이 크다. 경쟁사의 허위 신고나 단순 민원만으로 정부가 사실조사 명목으로 AI 기업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며 “그렇게 된다면 AI 기업들의 해외 이전이 가속화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는 국내 AI 산업에 대한 투자도 위축될 수 있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AI 기본법 추진으로 소기의 필요조건은 갖춰졌지만, 향후 AI 산업과 관련 정책 전반을 주도할 ‘국가AI위원회’의 추진 동력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한계도 있다.
지난 9월 26일 대통령 직속으로 출범한 국가AI위원회는 AI 정책 전반을 심의·조정하는 최상위 민관협력 기구다. AI 분야 전문가와 정부가 원팀을 이뤄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국가AI전략을 진두지휘하는 첨병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임시단체 신분이지만, 오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해 AI 기본법 통과과 확정되면 법정 기구로 승격될 예정이다.
정부는 국가AI위원회를 출범하면서 글로벌 ‘톱티어 3’ 국가를 뜻하는 ‘AI G3’를 강조했다. 이를 위해 인프라 확충과 민간부문 투자 확대, AX(AI전환) 전면화 등 주요 4대 프로젝트 추진 계획을 발표하며 관련 육성 계획을 본격화할 것을 밝혔다.
구체적으로 4년간 민간 투자 65조원을 유치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대규모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먼저 AI반도체 분야에는 투자금 대부분인 57조6000억원이 투입된다. AI 모델을 운영하기 위한 데이터센터, 컴퓨팅 인프라 조성에 가장 많은 투자금이 필요한 만큼, 대부분 재원이 하드웨어 인프라로 집중되는 모습이다.
문제는 관련 예산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과기정통부가 국회에 내년 예산안을 제출한 9월 2일 이후에 위원회가 출범하면서 관련 예산을 정부안에 반영하지 못했다.
국회 상임위에서 증액 논의가 이뤄졌으나, 더불어민주당이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통해 증액 없이 감액만 반영한 예산안을 단독 처리하면서 연내 처리는커녕 내년도 추경을 기다려야하는 상황이다.
탄핵정국으로 위원장 자리가 공석인 점도 불안 요소로 꼽힌다. 국가AI위원회는 AI 기본법 제7조에 따라 위원회 위원장은 대통령이, 부위원장은 민간위원이 맡게 된다.
현재 부위원장으로는 염재호 태재대 총장이 위촉된 가운데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될 한덕수 국무총리가 임시 위원장을 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추가 예산 확보 등 주도적인 행보를 위한 추진 동력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우리나라 AI 기술의 성숙도와 잠재력은 전 세계를 기준으로 ‘2군’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발표한 전 세계 73개국 ‘AI 성숙도 매트릭스’ 보고서에 따르면 AI 선도국에 우리나라는 톱티어 국가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미국 △중국 △영국 △캐나다 △싱가포르 등 5개국만이 이름을 올렸다.
우리나라의 경우 호주,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 일본 등과 함께 2류 수준인 ‘AI 경쟁국’에 포함됐다. 그동안 ‘G3 AI 강국’을 천명했던 정부 기대와는 큰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미국 등 주요국을 중심으로 AI 시장구조는 완성됐다. 생성형 AI 등 기술력이나 자금력에서 쫓아가기 어려운 수준으로 달아난 상태”라며 “규제 일변도의 정책과 관련 산업 지원을 이끌 HQ(헤드쿼터)조차 부재한 상황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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