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가 작년 8월에 기습 점령한 쿠르스크가 주전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쿠르스크의 향방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 협상 개시나 그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조속한 종전을 공언해온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측은 현재에 상황에서 일단 휴전에 돌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영토인 쿠르스크 일부 지역을 계속 점령한 또 하나의 "전장의 현실"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점령한 지역의 반환을 요구하거나 다른 휴전 조건을 제시할 수는 지렛대로 쿠르스크를 이용하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러 동맹의 목표는 2025년 1월 20일 취임할 트럼프가 휴전 중재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전에 쿠르스크를 탈환하겠다는 쪽에 맞춰지고 있다. 이를 통해 영토 쟁탈전 벌어지고 있는 "전장의 현실"을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로 한정하려고 한다.
하지만 협상의 지렛대를 잃지 않겠다는 우크라이나의 저항도 강력하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도 "북한군은 합법적인 군사 목표"라며 우크라이나가 미국이 지원한 장거리 미사일로 조선군을 공격하는 것도 허용했다. 이로 인해 쿠르스크에선 양측의 사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과 관련해 '트럼프 효과'는 윤석열 정부로도 뻗쳤다. 윤 정부는 무기 지원 등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승전'을 돕겠다는 입장이었는데, '종전'을 앞세운 트럼프가 당선되자 관망 모드로 돌아섰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은 '12·3 내란 사태'를 일으켜 탄핵당할 처지에 몰렸고, 이로 인해 윤 정부가 검토했던 우크라이나 무기지원, 참관단 파병, 조선군 포로 심문 등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우크라이나와 한반도 문제를 아우르는 단어는 '휴전'이라고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휴전이라도 절실한 상황이고 한반도에선 휴전(정전)마저도 불안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반도에선 정전체제의 안정성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당장 급한 것은 국지 충돌과 확전을 야기할 수 있는 남북 심리전의 '쌍중단'이다.
양측이 모두 풍선 살포와 확성기 방송을 중단해 충돌의 소지를 없애는 게 중요하다. 이들 심리전을 한국이 먼저 시작했다는 점에서 결자해지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중단하고 조선에도 상응조치를 요구해야 한다. 또 다른 분쟁의 불씨로 등장하고 있는 무인기 통제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한반도에서 휴전 체제의 안정성이 회복될수록 러-우 전쟁의 휴전 방안으로도 '한반도식 휴전 모델(K-휴전 모델)'이 주목을 받을 수 있다. 전쟁의 발발-휴전의 조건과 성립-휴전체제의 안착 등에서 유사점과 교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1950년 북-중-소의 3자 결탁에 의한 한국전쟁의 발발은 미국-한국-일본-대만을 잇는 반공 전선의 공고화를 막겠다는 '예방 전쟁'으로서의 성격도 품고 있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차단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침공을 강행한 것과 흡사하다. 강대국들의 직간접적인 개입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유사점이다.
휴전의 절박성과 가능성도 흡사한 양태를 띠고 있다. 한국전쟁 전반기에는 서울과 평양을 빼앗고 빼앗기는 전면적 공방전이 있었지만, 전쟁 발발 1년이 지나면서 38선을 사이에 두고 교착 상태에 빠졌다. 러-우 전쟁 역시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를 향한 러시아의 진격 작전도, 빼앗긴 영토를 되찾으려 했던 우크라이나의 대반격도 실패로 돌아가면서 교착 상태에 빠져들었다. 어느 일방의 완전한 승리가 불가능해진 만큼, 휴전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한국전쟁의 막후 실력자였던 소련의 스탈린 사망이 휴전 협상에 탄력을 불어넣었던 것처럼, 미국의 정권교체도 러-우 전쟁의 휴전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한반도 정전협정과 그 이후 고착되어온 정전체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다. 2차 한국전쟁의 발발을 막아왔다는 점에선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정전협정이 목표로 명시한 "최종적인 정치적 해결", 즉 평화협정은 아직 체결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러-우 전쟁의 종식 방안도 2단계, 즉 휴전과 평화협정으로 나누어 접근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장기적이고 궁극적으로는 평화협정을 통해 '적극적 평화'를 실현하려는 목표를 가지면서도 당면해선 휴전을 통해 '소극적 평화'를 회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큰 차이도 있다. 한국은 휴전협정 직후에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주한미군을 통해 안보를 보장받았다. 이에 반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요원한 일로 보인다. 휴전이나 종전이 논의되면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 방안이 가장 까다로운 문제가 될 것이라는 뜻이다.
대안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방안은 러-우 휴전에 대한 국제적 보장과 감시라고 할 수 있다. 강력한 중재자로 부상할 미국이 휴전 보증자로 나서는 방안, 휴전 선언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로 채택해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는 방안, 유엔평화유지군이 비무장지대 감시를 맡는 방안, 중립국감독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 등이 이에 해당된다. 아울러 나토와 러시아 사이의 지정학적 대결을 해소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도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이 우크라이나의 평화 회복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K-휴전 모델'의 성과와 문제점을 면밀히 검토해 러-우 휴전 협상의 개시·과정·결과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되어야 한다. 성과의 핵심에는 한국전쟁의 재발을 막아왔다는 점에 있다. 또 한국이 민주화와 산업화를 거쳐 선진국의 문턱에 도달한 사례도 우크라이나의 미래에 큰 함의를 지닐 수 있다.
반면 문제점의 중심에는 휴전협상이 2년 동안 질질 끌리면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는 점에 있다. 이에 따라 러-우 전쟁은 한국전쟁처럼 협상을 통한 휴전보다는 먼저 특점 시점에서 휴전을 선언하고 협상에 돌입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반도 정전체제가 장기화되면서 국내에는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많다. 정부가 이러한 역할을 자임하면 좋겠지만, 정부가 아니더라도 국회나 민간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다. 동맹 관계를 활용해 러-우 휴전 협상안 마련에 골몰하고 있을 트럼프 행정부에 아이디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대전제는 세 가지이다. 첫째는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검토를 철회하고 휴전 방안 마련에 동참하겠다는 '모드 전환'이고, 둘째는 대북 심리전 중단을 통한 한반도 정전체제의 안전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아울러 트럼프의 대북 접근을 지지·협력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렇게 하면 우크라이나와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불확실성으로 가득차고 있는 한미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러-우 전쟁 종식은 트럼프의 최우선적인 대외정책 목표이고 한반도 문제 해결은 그의 변함없는 목표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 이 글은 필자의 동아시아재단 기고문에서 일부 내용을 발췌해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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