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올해 전자업계는 가전 부문에서 중국의 안방 시장 공략이 매서웠던 한 해로 평가된다. 이에 맞서 삼성전자(005930)와 LG전자(066570)는 각각 '인공지능(AI) 가전=삼성', 고객 맞춤형 '공감지능(Affectionate Intelligence)' 전략을 필두로 AI 가전 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AI 가전 시대 개막…中 안방 시장 위협에 '보안' 차별화
삼성전자는 올해 '모두를 위한 AI' 비전을 가전에서 실현하겠다는 목표로 '스마트싱스' 플랫폼 기반 AI 가전 대중화 시대를 알렸다. 모바일, TV, 가전 등 다양한 제품군을 아우르는 AI 기술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AI 기능을 강화한 신제품을 대거 출시한 것.
특히 'AI 가전=삼성' 공식을 새롭게 도입하며 다소 부진했던 가전 부문에서의 활약이 두드러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삼성 '비스포크 AI 스팀' 제품 연출 이미지. ⓒ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지난 4월 출시한 '비스포크 AI' 제품은 기존 개인 맞춤형 가전 브랜드인 삼성전자 비스포크에 AI을 더한 것으로, 냉장고·인덕션·로봇청소기 등 총 15종에 고성능 AI 칩을 탑재했다.
삼성전자는 모바일에서 다져온 '삼성 녹스(Knox)'를 '비스포크 AI 스팀'을 비롯해 AI 가전제품에 적용했다. 상호 연결된 삼성 기기는 블록체인 기술인 '녹스 매트릭스'를 통해 서로의 보안 상태를 모니터링한다. 분산형 데이터 저장 기술로 인해 안정성을 높인 것이다.
올해 중국산 가전이 로봇청소기 제품을 필두로 텃밭인 국내 시장에서 입지를 구축하는 데 대해 '보안'을 차별점으로 내세운 것이다. 삼성전자는 자사 로봇청소기 제품인 비스포크 AI 스팀이 사물인터넷(IoT) 보안 안정성을 인정받아 업계 최초로 글로벌 인증 업체인 UL솔루션즈로부터 IoT 보안 평가 최고 등급인 다이아몬드를 획득했다고 강조했다.
또 비스포크 AI 스팀은 이달 17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주관하는 IoT 최고수준(스탠다드) 보안 인증을, 19일에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KISA가 주관하는 '개인정보보호 중심 설계(PbD)' 인증을 연이어 획득했다.
지난 10월22일 개막한 제55회 한국전자전에서 관람객들이 생성형 AI가 탑재된 허브 'LG 씽큐 온'과 대화하며 AI 가전을 동작시키는 편리한 라이프스타일을 체험하고 있다. ⓒ LG전자
반면 LG전자는 모바일 제품군이 없는 만큼, 가전제품 기능과 서비스를 비롯해 가전용 운영체제(OS)와 AI칩 등 가전 전용 제품 개발에 집중해왔다. 세탁건조기의 AI 모션 기능, 냉장고의 AI 냉기 케어 시스템, 에어컨의 AI 스마트케어 등으로 기존 기능을 최적화하며 편의성을 높이는 식이다.
AI를 통해 생활가전 사업의 목표인 '가사 해방을 통한 삶의 가치 제고' 실현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게 LG전자의 설명이다. 특히 지난 9월 IFA2024에서는 홈 허브 'LG 씽큐 온(ThinQ on)'을 공개하며 생성형 AI를 강조한 공감지능 전략을 구체화했다.
LG 씽큐 온은 집안 내 가전 및 IoT 기기를 연결하고, 음성 인식 기능을 제공한다. LG 씽큐 온에 탑재된 '퓨론(FURON)'은 LG 씽큐와 다양한 거대언어모델(LLM)을 결합한 AI 에이전트로, LG AI 홈의 두뇌 역할을 한다.
아울러 LG전자도 역시 중국산 가전의 추격에 보안을 최대 무기로 내세웠다. 데이터를 암호화 처리해 외부의 불법적인 유출을 막는 자체 보안 프로세스인 'LG SDL'를 로봇청소기 신제품에 탑재한 것. 이와 함께 올해부터 자체 보안 플랫폼 'LG쉴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LG전자에 따르면 LG 로봇청소기인 로보킹 AI 올인원의 카메라로 촬영된 이미지는 장애물 인식 및 감별 목적으로만 활용되고, 기기가 수집한 데이터와 각종 소비자 관련 정보는 제품에 별도 저장되지 않는다.
◆프리미엄 TV 시장 턱밑 추격하는 中
최근 중국의 기술 추격은 날로 매서워지는 분위기다. 가격 경쟁력을 최대 무기로 앞세운 이전과 달리 기술을 강화해 글로벌 하이엔드 시장까지 보폭을 확대했다. 실제로 올해 중국 가전 업체는 국내 브랜드가 장악한 프리미엄 TV 시장에서도 판도를 엎을 만한 기술력을 속속 공개했다.
지난 1월9일 'CES 2024' TCL 전시장에서 최초 공개된 115형 QD-미니 LED 4K TV 제품. ⓒ 연합뉴스
올 초 TCL은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CES 2024'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115인치 TV를 내놔 눈길을 끌었다. 이어 지난 10월에는 보급형 100형 TV인 '2025 선더버드 100 맥스 스마트 TV'를 출시했다. 이 제품의 가격은 8989위안(약 180만원)에 불과한 만큼 가격 경쟁력도 갖췄다.
특히 TCL은 지난해 11월 한국 법인을 설립한 이후 네이버 쇼핑과 쿠팡 등 이커머스 플랫폼을 중심으로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늘려나갔다. 가성비 좋은 액정표시장치(LCD) TV를 앞세워 1인 가구 및 세컨드 TV 구매를 원하는 국내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다.
하이센스도 지난해 '110형 울트라-LED(ULED) TV'를 선보인 이후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하이센스는 지난 3분기(7~9월) 100형 이상 TV 시장에서 출하량 기준 63.4%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다.
옴디아에 따르면 올해 1~9월 80형 이상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금액 기준 32.7%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지난 2020년(53%) 이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LG전자 또한 올해 3분기 누적 14%의 점유율을 기록하면서 TCL(16.9%)에 2위 자리를 내줬다.
중국 가전 기업들은 자국 TV 패널 업체들과 협업해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시장을 장악했고, 초대형 TV 시장에서 점유율을 늘려가고 있다. 특히 90형에서 115형에 해당하는 초대형 LCD 패널 시장은 사실상 중국 업체들이 우위에 있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중국 업체의 물량 공세가 국내 가전 업체에 위협이 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에 삼성전자는 올해 초대형과 프리미엄 TV 위주 전략을 지속하면서도 중국산 가성비 공세에 응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가전 구독 '100조원' 시대…LG 이어 삼성 참전
올해 눈길을 끈 또 다른 가전 시장 트렌드는 '가전 구독'이다. 가전 구독 사업이 수요 침체 장기화에 직면한 가전업계에 불황을 타개할 돌파구로 부상한 것이다.
현재 이 시장 선두 주자는 LG전자로, 삼성전자도 뒤따라 참전을 선언하면서 시장 규모는 점차 확대될 전망이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20년 40조원이었던 국내 가전 구독 시장 규모는 내년에 100조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 전문 엔지니어가 '삼성 AI 구독 클럽' 고객을 위한 방문케어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 삼성전자
가전 구독은 일정 기간 가전제품을 빌려 사용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가전 렌탈과 유사하다. 초기 구매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게 공통 특징이다. 그러나 렌탈 제품은 정수기 등 소형 가전이 주를 이룬 반면, LG전자와 삼성전자의 경우 제품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앞서 LG전자는 지난 2009년 정수기 렌탈로 가전 구독 시장에 뛰어든 이후 품목 확대와 관리 및 제휴 서비스로 영역을 넓혀가며 구독 사업을 강화해왔다. 냉장고, 세탁기 등은 물론 TV, 노트북 등도 구독 라인업에 포함했다.
일찌감치 가전 구독 모델을 도입한 LG전자는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다. 가전 시장 역성장에도 LG전자 가전 구독 매출은 지난해 1조1341억원을 달성하며 '유니콘 사업'에 올랐다. 대형가전 구독을 본격화한 지 2년 만의 성과다.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은 1조2386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매출을 이미 넘어섰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케어 서비스를 포함한 LG전자의 가전 구독 매출은 1조8000억원(매출의 20%)을 돌파할 전망이다.
이에 질세라 삼성전자도 이달부터 가전 구독 서비스 'AI 구독클럽' 운영을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TV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등을 대상으로 구독 서비스 모델을 운영하고, 이중 90% 이상은 AI 제품으로 구성했다. 후발주자인 삼성전자는 AI를 앞세운 프리미엄 중심의 제품과 요금제 선택권을 넓혀 차별화를 꾀한다는 전략이다.
◆글로벌 불확실성 가중…내년 화두는 '더 개인화된 AI'
2025년 가전 시장은 글로벌 사업자 간 경쟁 심화 및 수요 둔화, 미국 트럼프 정부 출범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지속될 전망이다.
3년 연속 CES 최고 혁신상을 수상한 'LG 올레드 TV'. ⓒ LG전자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AI 역량 강화에 집중하며 시장 경쟁력 제고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1월 열리는 'CES 2025'에서 공개될 새로운 양사의 AI 전략이 초미의 관심사다.
특히 올 초 CES 2024에서 AI가 화두로 떠오른 데 이어 내년에는 더 개인화되고 연결된 AI 기술이 등장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AI 가전을 필두로 한 스마트홈의 미래도 보다 구체화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CES 2025 개막일 하루 전인 1월6일 프레스 콘퍼런스를 열고 한종희 DX 부문장(부회장)이 기조연설에 나선다. 삼성전자는 '모두를 위한 AI: 경험과 혁신의 확장'을 주제로 TV와 가전, 스마트폰 등에 AI를 접목한 AI 홈 전략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번 CES에서 영상디스플레이 16개, 생활가전 4개, 모바일 5개, 반도체 3개, 하만 1개 등 총 29개의 혁신상을 받은 삼성전자는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 중앙홀에 3000㎡ 규모의 대형 전시관을 마련하고 스마트싱스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AI 홈 솔루션을 선보인다. AI 홈은 제품에 탑재된 터치스크린을 통해 스마트싱스와 연결된 모든 가전을 원격으로 모니터링∙제어할 수 있는 솔루션이다.
또 신형 마이크로 LED TV와 8K Neo QLED TV, QD-OLED(자발광 디스플에이 기술) TV 등 프리미엄 디스플레이 라인업도 함께 공개할 예정이다.
LG전자도 조주완 최고경영자(CEO)가 나서서 혁신 비전을 공개하는 월드프리미어를 개최하고, '공감 지능과 함께하는 일상의 라이프스 굿'을 주제로 AI 비전과 전략을 공개한다.
이번 CES에서는 더 진화한 AI 가전과 디바이스, 이를 활용한 AI 홈의 비전을 제시할 예정이다. AI 기술을 기반으로 고객의 다양한 경험과 공간을 연결·확장하며 일상을 변화시키는 청사진을 제시한다는 게 LG전자의 구상이다.
LG전자는 CES 2025 행사장 LVCC 중앙홀에 2800㎡ 규모의 전시관을 마련하고 투명 OLED 디스플레이와 마이크로 LED TV, 웹OS 플랫폼 기반의 스마트홈 솔루션을 전시한다. 특히 AI 기반의 가전제품 라인업을 대거 선보이며 LG 씽큐 플랫폼을 통한 통합 스마트홈 경험을 제공할 예정이다.
내년도 중국과의 기술 경쟁은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전 세계 TV 시장에서 선전 중인 중국의 가전 브랜드 TCL과 하이센스 모두 삼성전자 바로 옆에 부스를 마련한다. 중국 업체들은 80형 이상의 초대형 TV 시장을 집중 공략하며 삼성전자를 추격 중이다.
이에 LG전자는 40형대부터 100형대를 아우르는 QNED TV 풀 라인업을 앞세워 지속 확대되는 초대형 LCD TV 수요에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초대형∙프리미엄 LCD TV에 대한 고객 수요를 반영한 100형 QNED TV도 새롭게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