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오는 19일 오전 10시 서울시교통회관에서 열리는 한미약품 임시주주총회에서는 박재현·신동국 이사 해임과 박준석·장영길 이사 선임 등 4개의 안건이 다뤄진다.
박재현·신동국 이사는 대주주 4인 연합 측 인사인데, 임종윤·종훈 형제는 이들을 해임하고 형제 측 인사인 박준석·장영길을 대신 이사로 선임하겠다는 구상이다.
구체적으로 ▲사내이사 박재현 해임 건 ▲기타비상무이사 신동국 해임 건 ▲사내이사 박준석 선임 건 ▲사내이사 장영길 선임 건 등이 순서대로 진행될 예정으로, 박재현 해임 건과 신동국 해임 건이 부결되면 박준선, 장영길 선임 안건은 상정되지 않는다.
고소·고발 치달은 2차 경영권 분쟁
현재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은 임종윤·종훈 형제와 대주주 4인 연합(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임주현 한미약품그룹 부회장·신동국 한양정밀 회장(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라데팡스파트너스) 간 대결 구도로 치러지고 있다.
2차 분쟁이 본격화한 것은 지난 7월 3일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이 신동국 회장에 지분을 매도하고 의결권 공동 행사 계약을 맺으면서부터다. 그러나 분쟁의 씨앗은 이미 그전부터 있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당초 1차 분쟁이 끝나고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를 임종훈 대표와 송영숙 회장의 공동대표 체제로 이끌기로 했으나, 불과 한 달 만인 지난 5월 14일 인사권 문제를 두고 다투던 송영숙 회장이 대표직에서 해임됐기 때문이다.
이는 형제 측이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를 장악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로, 모녀 측은 신동국 회장과 3인 연합 결성 후 곧장 한미사이언스 임시 주주총회 소집을 청구해 지주사 이사회를 장악하고자 했다. 그 사이 3인 연합 측 인사인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가 지주사로부터 독립경영을 선언하고 한미사이언스는 박재현 대표를 전무로 강등하는 등 갈등은 지주사와 자회사 간 내전 양상으로 격화됐다.
박재현 대표가 형제 측 강등 조치를 무시하고 한미약품이 3인 연합에 동조하는 행보를 보이자, 형제 측은 한미약품 이사회까지 장악하기 위해 한미약품 임시주총 소집 허가 신청서를 제출하는 등 맞대응에 나섰다. 이에 한미약품과 한미사이언스는 각각 이사회에서 임시주총 개최를 결의했다.
임시주총이 예정되며 분쟁이 표 대결 양상으로 흘러가자 양측에서 국민연금과 소액주주를 비롯한 의결권자를 향한 '러브콜'도 연달아 진행됐다. 임주현 부회장이 먼저 7월 26일 소액주주연대와 면담을 가졌고, 이어 8월 1일 임종훈 대표도 소액주주연대와 면담을 가졌다. 소액주주 의결권 하나하나가 중요한 승부처로 떠오르며 대표나 부회장이 직접 소액주주 설득에 나서는 진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소액주주연대는 10월 30일 신동국 대표 면담 후 지난달 1일 3인 연합 지지 선언을 발표했으나, 소액주주연대 내부에서 반발이 나오며 바로 다음 날 3인 연합 지지를 철회하는 해프닝이 있기도 했다.
지주사와 자회사 간 날 선 비판이 오가고 표심을 사로잡기 위한 행보가 이어지는 와중 갈등 수위도 점차 높아졌다. 지난달부터 두 달 사이 고소·고발이 이어지며 경영권 분쟁 관련 소송만 10건에 달한다. 이중 현재 소송 진행 중인 사안만 따져도 6건이다.
먼저 임주현 부회장이 지난 3월 임종윤 이사 상대로 제기한 대여금 반환 청구 소송이 7월 말 인용되며 임 이사가 소유한 266억원 상당의 주식과 토지에 대한 가압류 결정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임종윤 이사는 주식담보 대출에 따른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 발생이나 주담대 상환 등의 사유로 계속해서 지분을 매각하는 처지에 놓였다.
11월 들어서는 한성준 코리그룹 대표가 송영숙 한미사이언스 회장과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를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코리그룹은 임종윤 사장의 개인회사로 임종윤 사장은 코리그룹 지주사 코리홍콩 지분 100%를 보유했다. 한 대표는 임종윤 사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한 대표는 박 대표가 이사회 승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가현문화재단에 기부금을 집행한 점 등을 문제 삼았다. 이는 한미사이언스가 임시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가현문화재단과 임성기재단에 의결권 행사 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요구를 하기 8일 전 벌어진 일이다.
당시 한미사이언스는 "두 재단이 기본재산인 한미사이언스 주식을 한미사이언스 경영진을 공격하려는 목적으로 유용한다면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두 재단의 설립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며 "임성기 선대 회장 별세 이후 오너일가 4명(송영숙·임주현·임종윤·임종훈)이 두 재단에 한미사이언스 주식을 각자의 상속 비율대로 공동출연한 취지에도 반한다"고 밝혔다.
이어 한미사이언스는 지난달 15일 신동국·송영숙·임주현 3인 연합과 이들의 의결권 권유 업무를 위임받아 대행하던 업체의 대표 등에 대해 위계 및 업무방해 혐의로 서울 강남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또 임종훈 대표는 지난달 18일 박 대표 외 그룹사 고위임원 3인, 김남규 라데팡스 대표 등 총 5인을 배임 및 횡령,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잇따른 고소·고발에 3인 연합 측도 대응에 나섰다. 임 대표가 3자 연합 측 인사를 고발하던 지난달 18일, 송영숙·임주현·가현문화재단은 킬링턴 유한회사(라데팡스파트너스)와 주식 매매계약을 맺으며 사실상 4인 연합을 출범시켰다.
이어 한미약품은 지난달 25일 서울동부지방법원에 한미사이언스 외 6명(임종훈·김현수·홍성환·박준석·신성재·김종민) 등을 업무방해 등 혐의로 고발하고 업무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한미사이언스 주총 무승부···한미약품 주총은
고소와 고발로 점철된 진흙탕 싸움이 펼쳐진 상황에서 지난달 한미사이언스 임시주총이 열렸다. 4인 연합은 이사 수 확대 정관 변경안과 함께 신동국·임주현 이사 선임 건을 밀어붙였다.
결과는 사실상 무승부였다. 출석 주주 3분의 2(약 66.7%)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특별결의안인 이사 수 확대 정관 변경은 이루어지지 않아 4인 연합의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장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일반 결의 안건으로 출석 주주의 과반 찬성이 필요했던 신 회장의 기타비상무이사 선임 건은 가결됐다.
신 회장의 이사회 진입에 따라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구도도 5대5로 재편됐다. 어느 한쪽이 지주사를 좌지우지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임 대표는 "이사회가 동수가 되는 상황에서 조금 더 강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 같다"며 "다음 달에 있을 한미약품 주총도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2차전을 예고했다.
싸움은 12월에 들어서며 다시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양새다. 합종연횡과 고소·고발도 계속됐다.
라데팡스파트너스는 이달 2일 3인 연합과 주주 간 계약을 체결하며 공식적인 4인 연합을 결성했다. 이틀 뒤인 12월 4일 박재현 대표는 임종훈 대표와 고발 업무 담당자 등에 대해 무고죄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앞서 4인 연합은 이달 3일 수원지방법원에 임종훈 대표 1인 의사에 따른 의결권 행사금지를 구하는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외에도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와 국민연금 등이 형제 측이 요구한 박재현·신동국 이사 해임 안건에 대해 반대 의견을 밝히며 형제 측의 완패가 예상되기도 했다.
앞서 ISS와 글래스루이스 등 해외 의결권 자문사는 지난달 열린 한미사이언스 임시 주총에서 형제 측 편을 들어준 바 있으나 이번 한미약품 임시 주총에서는 4인 연합 측 손을 들어줬다. 마찬가지로 한미사이언스 임시 주총에서 의결권 중립 행사를 선언했던 국민연금마저 형제 측에 등을 돌리며 상황은 형제 측에 불리해졌다.
실제로 국민연금이 박재현·신동국 이사 해임 안건에 대해 반대 결정을 내린 이달 13일, 임종윤 이사가 4인 연합 측에 공식적으로 임시주총 철회 제안을 해 형제 측이 패배 가능성을 높게 보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을 정도다.
상황이 다시 반전된 것은 법원이 4인 연합이 제기한 임종훈 대표 1인 의사에 따른 지주사의 한미약품 임시주주총회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면서다. 이번 결정으로 임 대표는 한미사이언스가 보유한 41.42%의 의결권을 이번 주총에서 단독으로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이번 판결에 대한 해석 역시 4인 연합과 형제 측이 갈렸다. 한미사이언스는 이에 대해 "당연한 결정"이라며 "합리적으로 판단해 준 재판부에 감사드린다"고 말했지만, 4인 연합 측 변호인은 "결국 재판부도 중요 안건에 대해 대표이사가 단독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적법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며 "내년 정기주총 등에서 이번 판결이 유의미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 대표 측 변호인은 4인 연합의 주장에 대해 "자회사 이사 선임 등은 지주사의 통상 업무로 대표이사가 의결권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 법원 판단의 요지"라며 "내년 정기주총에서는 이사 해임이 아닌 선임 안건이 이뤄질 예정이기 때문에 해당 업무는 통상 업무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다"고 즉각 반박했다.
판결에 대한 해석 중 어느 쪽이 맞는지와 무관하게 결국 이번 한미약품 임시주총의 승패는 소액주주의 손에 달렸다는 평이다. 법원의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 기각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형제 측에 불리해 보인다.
임 대표가 41.42%의 의결권을 확보하며 우호 지분은 형제 측이 더 많이 갖게 됐다. 반면 5% 이상 대주주 가운데 4인 연합 측 지분은 신 회장(7.72%)과 한양정밀(1.42%)이 보유한 9.14%가 전부다. 여기에 4인 연합 측 손을 들어준 국민연금이 가진 지분 10.52%를 더하면 19.66%가 된다.
이사 해임 안건은 특별결의 안건으로 출석 주주의 3분의 2(지분 약 66.7%) 찬성이 요구되는데, 형제 측 입장에서는 25.28%의 추가 의결권을 확보해야 한다. 남은 지분 비율 38.3% 중 국내외 기관투자자 6.5%와 해외 기관투자자 18.3% 지분을 제외하면 남은 소액주주 의결권은 13.5%로, 형제 측이 소액주주 의결권을 모두 획득한다 해도 여전히 11.78%의 지분이 추가로 필요하다.
의결권 자문사가 모두 해임 안건 거부를 권고한 상황에서 기관 투자자가 권고와 달리 찬성표를 던질 가능성은 작다. 이 경우 해임 안건은 부결되고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임 이사의 임시주총 철회 제안과 물밑 대화 제안 역시 승산이 낮아서 나온 다급한 제안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강경 일변도로 릴레이 고소·고발을 이어가던 형제 측이 갑작스레 화해의 제스처를 취했다는 점에서 임종윤 이사와 임종훈 대표 간 의견 충돌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임종훈 대표 측 관계자는 "형제간 균열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의혹과 무관하게 임 이사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확률이 높다. 형제 측이 확실한 의견 통일을 이루지 못한 상황인 데다 한미약품도 부정적이라서다.
임종훈 대표의 한미사이언스 측은 "임종훈 대표도 (임종윤 이사) 제안에 대해 알고 있고, 내부 논의 중인 사항"이라면서도 "(주총 철회가) 공식적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임시주총을 개최하는 한미약품 측은 "해당 제안이 진정성이 있으려면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 결과 및 국민연금 결정 전에 이미 나왔어야 한다"며 "현재 시점에서 임시 주총 취소를 검토하거나 번복하기에는 물리적, 시간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라고 했다. 또 고소, 고발 등에 대한 사과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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