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硏,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
(대전=연합뉴스) 박주영 기자 = "밤 5시경 파루 이후에 혜성이 허수(虛宿) 별자리 영역에 보였다. 혜성이 이유(離瑜) 별자리 위에 있었는데 북극에서의 각거리는 116도였다. 혜성의 형태나 색깔은 어제와 같았다. 꼴의 길이는 1척 5촌이 넘었다."
조선시대 성변측후단자에 적힌 1759년 3월 11일의 핼리혜성 관측기록이다.
양홍진 한국천문연구원(천문연) 고천문연구센터장은 18일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핼리혜성 등 3건의 혜성 관측 기록이 담긴 조선시대 성변측후단자에 대해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변측후단자는 천체의 위치나 밝기 등 성변이나 천체의 변화를 매일 관측한 조선시대 기록물이다.
당시 혜성·초신성·운석 등의 천문현상이 발생하면 성변측후단자를 만든 뒤 성변·천변 등록(데이터베이스화)을 해 승정원일기 등 실록에 기록하도록 했다.
1759년 4월의 성변 등록은 35명의 관상감 관료가 25일 동안 핼리 혜성을 관측한 것으로 위치와 크기, 색깔 등 변화를 기록했다.
핼리혜성은 1705년 영국의 천문학자 에드먼드 핼리가 예고한 대로 1758∼1759년 다시 나타났다. 핼리가 주기(76년)를 예측한 이래로 첫 번째로 지구를 찾은 핼리혜성을 관측한 국가 사료로는 1759년 4월의 성변 등록이 처음이자 유일하다.
모두 8권의 성변 등록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3권은 일본의 개인이 소장하고 있으며 2권은 소재가 불분명하다. 나머지 3권은 연세대에 보관돼 있으며, 이 중 한 권에 핼리혜성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양 센터장은 "승정원일기에 담긴 관련 기록을 보면 영조가 측후관, 관상감의 관료들과 대화한 기록이 나오는데 혜성의 별빛이 어떠한지, 꼬리의 방향은 어떤지 등이 자세히 나와 있다"며 "당시 기록을 보면 전날 관측했던 사람이 비교 관찰을 위해 이튿날에도 참여하도록 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중국이나 인도의 천문 관측 자료와는 달리 철학이나 점성술에 치우치기보다는 실용적으로 천문 관측에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양 센터장은 "점성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었으며, 가령 일식의 경우 갑작스레 닥치는 불운으로 인식하지 않고 실제 일식 주기를 계산하는 등 과학이 발달한 모습을 보였다"면서 "당시 별을 관측하려는 동기는 자연현상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됐다고 본다"고 해석했다.
가령 '해나 달이 두 개 나타났다'는 관찰 일지 등을 토대로 당시의 천문학이 왕권 교체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정치적으로 편향된 기록이라는 역사학자들의 주장도 있으나, 이는 추운 날씨에 일어나는 신기루 현상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며, 실제 기록된 시기 또한 겨울철인 12∼1월인 점 등도 이 같은 가설을 뒷받침한다고 강조했다.
천문연은 성변측후단자가 국내 다른 유산들과 경쟁해 최종 2건에 포함되면 국내 유네스코본부, 국가유산청과 함께 국제 신청을 준비할 계획이다.
양홍진 센터장은 "과학 관련 기록물이 세계유산에 등재된 사례가 거의 없어 등재가 이뤄진다면 세계 과학사적 측면에서도 큰 의미가 될 것"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한편 국립중앙과학관과 국가기록원은 지난달 15일부터 과학관 창의나래관에서 성변측후단자 사본과 미국 아폴로 11호와 17호가 가져온 월석, 故 최순달 박사의 '우리별 1호' 개발 등 성과를 소개하는 기획전시 '우주로 가는 길을 찾다'를 진행하고 있다.
j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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