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 새해를 시작하는 마음으로 한 해 동안 선보인 전 세계 영화와 미국의 TV 드라마 프로그램에 상을 수여한다. 벌써 82회째 이어오는 시상식은 1944년 할리우드 외신 기자 협회에서 기금 조성을 위해 시작했다. 상은 협회 회원인 기자들의 투표로 선정되는데 비회원으로 구성하기 때문에 평가의 공정성과 투명성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지난 2021년,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가 대부분의 대사가 한국어라는 이유로 작품상 후보에서 배제되어 논란이 일었다. 이후 LA 타임스의 탐사보도로 심사위원단에 흑인 회원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로비와 재정 관리의 불투명함이 폭로되기에 이르렀다. 다수의 배우와 영화사가 보이콧을 선언했고 2022년엔 방송사 NBC의 거부로 TV 중계 없이 진행되기도 했을 정도. 여러 차례 내홍과 흑역사를 딛고, 2023년 6월 협회는 해산하고 내부 개혁을 거쳐 2024년 1월부터 새롭게 구성한 심사위원단이 맡게 되었다. 시상식은 CBS와 OTT 플랫폼 파라마운트+를 통해 동시에 생중계된다.
영화에는 아카데미 상이, TV 프로그램에는 에미상이 있어서 ‘만년 2등’이라는 별명이 따라붙는다. 물론 아카데미 상 투표 직전 1월에 진행되는 만큼, 상의 결과가 아카데미 상의 결과에도 영향을 미치고 ‘티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골든 글로브상을 받지 못한 작품이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는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로 여겨질 정도라고. 그러나 지난해 개혁을 꾀하며 새로 만든 두 개의 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탠드업 코미디 스페셜 부문과 글로벌 박스 오피스의 업적을 기리는 상으로 2년 차인 만큼 올해는 어떤 작품과 인물에게 돌아갈지 기대해 보는 일이 하나의 재미 요소가 될 것이다.
82회 시상식 이모저모
오는 1월 5일 미국 LA에서 열리는 시상식의 후보가 드디어 발표되었다. 리스트를 톺아 보며 발견한 지점 다섯 가지를 정리해 보았다. 전체 리스트는 여기서 (
링크) 확인할 수 있다.
1) 새로운 여성 사회자, 니키 글레이저
사진/ 골든 글로브 제공
올해 새 사회자를 임명했다. 가장 잘나가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니키 글레이저가 그 주인공. HBO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 '굿 클린 필스'로 주목받은 그는 에미상 후보에도 오른 바 있으며, 올해 스탠드업 코미디 부문에도 이름을 올렸다. 사회자 교체는 지난해 코미디언 조 코이가 일으킨 파문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시상식 오프닝에서 그는 영화 〈오펜하이머〉와 〈바비〉에 대한 농담을 던졌는데, 영화 '바비'를 소개하며 "큰 가슴이 달린 플라스틱 인형으로 만든 영화"라고 말해 모두를 경악시켰다. 이어 테일러 스위프트를 소개하면서 "골든글로브와 NFL의 가장 큰 차이점은, 골든글로브에서 테일러 스위프트의 카메라 노출 장면이 적다는 것"으로 사생활을 개그 소재로 삼는 등 실언 퍼레이드를 벌이기도 했다. 덕분에 글레이저가 이 시상식을 단독으로 진행하는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2) 방영 전 노미네이트, ‘오징어게임 시즌2’
오는 12월 26일 공개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시즌 2가 최우수 TV 드라마상의 후보로 지명됐다. 넷플릭스의 ‘외교관’. 프라임비디오의 ‘미스터&미세스 스미스’등과 함께 후보가 되었다. 오징어 게임2는 한 부문에만 후보로 올랐다. 방영 전 작품이 후보에 오른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보통 미국 방송사는 연말에 새 작품을 내놓지 않는데, 출품 기한인 11월 4일 전에 작품을 낸 넷플릭스의 파격적 결정 덕분에 지명되었다는 현지 매체의 분석이 다수였다. 시즌 1은 지난 79회 시상식에서 TV 미니 시리즈 부문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인 3개 부문에 지명된 바 있으며, ‘깐부 할아버지’로 분한 배우 오영수가 한국 배우 최초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3) 듣기만 해도 떨리는 이름들
사진/ 위너브라더스 제공
사진/ 위너브라더스 제공
사진/ 애플TV+ 제공
사진/ 서브스턴스
영화와 드라마, TV 부문 등 여우 주연상 리스트에서 반가운 이름들이 보인다. 한 때 할리우드에서 이름을 날리던 중년 여배우들의 대활약이 빛난 한 해였음을 알 수 있다. '마리아'에서 20세기를 대표하는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를 연기한 안젤리나 졸리는 '투어리스트' 이후 14년 만에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에 도전장을 내민다. A24가 제작한 영화 ‘베이비걸’에서 열연을 펼친 니콜 키드먼, ‘룸 넥스트 도어’의 틸다 스윈트, 파멜라 엔더슨, 드라마 부문에서 경쟁할 케이트 블란쳇, 조디 포스터, 나오미 왓츠까지…. 특히 국내에서도 반응이 뜨거운 영화 ‘서브스턴스’에서 40년 간 연기 인생 중 최고의 열연을 보였다고 평가받은 데미 무어의 수상 역시 유력하게 거론되는 중이라고.
4) 최다 지명 후보작?
영화 부문에서는 올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은 '에밀리아 페레즈'가 무려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영화 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과 외국어영화상,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 및 여우조연상, 감독상, 각본상) 자크 오디아르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수사를 피하고자 꿈꿔온 성전환 수술을 받게 된 어느 멕시코 카르텔의 수장, 그를 돕게 된 여성들에 관한 내용이다. 국내는 2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드라마 부문은 디즈니+와 FX 가 제작한 ‘더 베어’가 또다시 TV시리즈 부문 최다 노미네이트 기록을 세웠다. 마지막 세 번째 시즌을 선보이며 3년째 영예의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는 굳건한 모습이다. 최고급 레스토랑의 유명 셰프가 죽은 형이 운영하던 싸구려 샌드위치 가게를 물려받으면서 벌어지는 가족과 요리에 대한 감동을 선사한다.
5) 넷플릭스의 남다른 존재감
올해 '에밀리아 페레즈' '마리아' '베이비 레인디어' '외교관' '오징어 게임' 시즌2 '젠틀맨: 더 시리즈' '리플리' 등 영화와 TV 부문에서 각각 13개, 23개 부문을 후보에 올리는 데에 성공했다. 이는 스튜디오 및 글로벌 OTT 플랫폼 등을 포함해 최다 후보 기록을 세워 OTT 플랫폼이자 제작사로의 위상을 인정받았다는 평가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