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들어 석유 시장의 전망이 급격히 어두워지고 있다. 올해 초 배럴당 90달러를 기록했던 브렌트유는 연간 고점 이후 4.6% 하락했고, 서부텍사스산 중질유(WTI)도 1.8%의 하락폭을 보였다. 이러한 유가 하락은 애널리스트와 제조사들의 예상을 크게 뒤엎은 결과다.
유가 하락은 소비자들에게는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같은 석유 의존 국가들에는 심각한 위협을 안겨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 수입 감소로 인해 2025년 재정적자가 GDP의 2.3%에 달하는 약 269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는 인구 감소와 노동시장 위기, 그리고 급증하는 국방비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는 연간 9%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을 불러왔다.
한편, 미국의 정책 변화 역시 시장에 큰 변수를 제공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백악관 복귀 가능성이 커지면서 석유 시추 활동 촉진 정책이 재개될 경우 씨티그룹은 유가가 최대 20% 하락해 2025년 브렌트유 평균 가격이 배럴당 60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더 큰 문제는 구조적 변화에 있다. 청정 기술 확산과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원유 수요를 감소시키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3년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45% 증가한 반면, 석유 수요 증가세는 둔화되고 있다. 여기에 전기차 보급 확대도 가속화되면서 전통 에너지 산업의 수요 기반이 약화되고 있다. 올해 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 전기차 판매는 전체 신차 판매의 45% 이상을 차지했다.
공급 측면에서도 미국의 상황은 시장에 균열을 더했다. 수력 파쇄 기술 덕분에 미국의 하루 평균 석유 생산량은 사상 최대치인 1,300만 배럴을 돌파했고, 브라질과 가이아나도 수출량을 늘리며 글로벌 공급 과잉을 부추겼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노력은 이러한 시장 변화 속에서 힘을 잃고 있다.
글로벌 수요 역시 위축된 모습이다. IEA는 2024년 전 세계 일일 평균 석유 수요 증가율이 84만 배럴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이전 추정치보다 8만 배럴 적은 수치로, 일부 국가의 경제 둔화가 석유 수요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향후 유가 전망은 엇갈리고 있다. 분석가들은 유가가 배럴당 65달러 선에서 지지받을 수 있지만, 추가 하락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씨티그룹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내년 유가를 60~65달러 수준으로 예상하며 공급 과잉을 반영했다. 골드만삭스는 브렌트유 평균 가격이 2025년 배럴당 76달러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지만, 글로벌 경제에 부담이 가중될 경우 60달러까지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유가 하락은 산업과 국가에 상반된 영향을 미친다. 항공 운송과 화학 산업은 낮은 운영 비용으로 혜택을 볼 것이고, 소비자들도 휘발유와 에너지 가격 인하를 반길 것이다. 반면, 석유에 의존하는 베네수엘라와 나이지리아 같은 국가들은 재정적자 확대와 사회적 긴장에 직면해 경제 위기가 심화될 수 있다.
유가 하락은 단순한 가격 변동이 아닌 에너지 시장의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재생에너지와 전기차의 확산 속에서 석유는 점차 시대적 전환의 한가운데에 서게 되었다.
이창우 기자 cwlee@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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