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직접 보조금 혜택이 또다시 없던 일이 됐다. 정부가 최근 반도체 생태계 지원 강화 방안을 내놨지만 시설이나 연구개발(R&D) 투자에 직접적인 보조금을 지원하겠다는 이야기는 쏙 뺐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지원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정반대 행보다. 자칫하단 국내 반도체 산업 육성 골든타임을 놓칠 것이란 우려가 커진다.
지난달 말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 생태계 지원 강화' 법안을 보면 인프라 구축에는 2조8000억 원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지만 시설이나 R&D 투자에는 지원금이 책정되지 않았다.
현재 반도체 업계의 상황은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수십년간 한국이 1위를 점유해오던 메모리 반도체 분야 역시 AI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투자 없이는 더 이상 왕좌 수성을 장담할 수 없는 일이 됐다.
일본 반도체 업계를 제치고 오랜 기간 D램을 비롯한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1위를 고수해온 삼성전자는 후발주자인 SK하이닉스에 AI 메모리 선두를 내줬다.
같은 한국기업이 바톤을 이어받았다고는 점은 고무적이긴 하지만 AI 반도체 시장이 이제 막 개화기에 접어든 데다 미국이나 중국 등 해외 기업의 추격이 거센 상황에서 안심할 수는 없다. 언제든지 해외 기업이 한국을 추월할 가능성이 크다.
해외 주요 국가들은 반도체 분야 투자에 적극적이다. 투자 핵심은 반도체 시설이나 R&D 투자에 직접적인 보조금, 즉 현금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다.
반도체 지원에 가장 앞서 있는 곳은 미국이다. 미국은 2022년 반도체과학법을 제정해 527억 달러(약 73조 원) 규모의 반도체기금을 편성했고 이 가운데 390억 달러(약 52조 원)를 시설 구축 보조금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세액공제 등의 혜택은 덤으로 주어진다.
유럽연합(EU) 역시 81억 유로(약 12조 원)의 보조금을 반도체 분야에 지원하기로 했으며 일본 정부는 자국 반도체 산업 부활을 위해 4조 엔(약 35조 원)의 지원예산을 확보했다.
반면 한국은 직접적인 반도체 보조금 지원에 부정적이다. 세계무역기구(WTO) 등에서 불공정 무역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을 염려한 것이다. 다른 국가들은 위험을 감수하고도 보조금을 지원해 자국 산업 발전을 우선시 하고 있지만 한국은 지나치게 해외 규정의 눈치만 보고 있다.
반도체 업계는 현재 큰 위기에 봉착해있다. 범용반도체 시장은 다시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2기 출범을 앞두고 다시 보호무역주의 장벽을 높이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은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장벽도 더욱 강화하고 있고 중국도 자체적인 산업 경쟁력 강화를 통해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바짝 뒤쫓고 있다.미국과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구조상 이 같은 흐름은 우리나라의 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생존을 위한 걱정이 아닌 다른 나라의 눈 밖에 나는 상황만을 우려해 보조금 지급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인다. 뒤늦은 후회는 소용이 없다. 반도체 경쟁력을 빼앗긴 이후 '그때 보조금을 지급했어야 할 것을'이라고 땅을 칠 것인가. 골든 타임이 지나기 전 우리 반도체 산업을 살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논의할 때다.
산업1부 이한듬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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