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고영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탄핵심판을 받아 든 헌법재판소가 본격적으로 준비 절차에 착수한 가운데 여야는 국회 추천 헌법재판관 3명 임명 문제를 놓고 팽팽히 대치하고 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대통령 직무 정지 상황에서 한덕수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느냐 여부지만 여야 각각의 속내는 헌법재판소 내 구도 및 윤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 시기 등을 놓고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정치권의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헌법재판소는 17일 "황교안 권한대행 당시에도 임명한 사례가 있다"라고 밝히며 재판관 공석 상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헌재 "황교안 대행 때도 헌법재판관 임명"
헌법재판소가 17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권을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는 것에 대해 "황교안 권한대행 당시에도 임명한 사례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권한대행이 임명할 수 없다'는 국민의힘 주장을 반박한 것으로, 재판관 공석 상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한 것으로 보인다.
이진 헌재 공보관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예전 황교안 권한대행 때 임명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결정이 나오기 전까진 한 권한대행은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과 상반된 것이다.
이 공보관은 권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6인 체제에서 탄핵 심판을 결정하는 자체가 문제 있다고 지적한 것에 대해서도 "결정 가능한 지 여부는 재판부에서 논의 중"이라며 "결정으로 갈음하겠다"고 답했다.
국민의힘 “재판관 임명 불가능” vs 민주당 “부당한 지연작전”
앞서 국민의힘은 17일 독립적 헌법 기구인 헌법재판소 헌법재판관 임명은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를 벗어나는 것으로, 대통령 탄핵안을 인용하기 전까지 재판관 임명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내놨다.
국민의힘은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민주당이 황교안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에 반대한 전례를 거론하면서 현재 헌법재판관 공석 사태의 책임도 야당에 돌렸다.
그러나 민주당은 헌법재판관 3명의 추천 주체는 국회고, 권한대행은 임명장에 결재 절차만 밟는 수동적 역할을 하는 만큼 한 권한대행의 임명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탄핵심판을 늦추기 위해 부당한 지연작전을 벌이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연내에 국회의 임명동의 절차를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다. 국민의힘이 인사청문 특위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야당 단독 특위 가동도 불사하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여야는 헌법재판관 추천 주체를 놓고도 맞서고 있다.
국회는 현재 공석인 헌법재판관 3명의 후임자에 대한 추천을 이미 마쳤다. 국민의힘은 여당 몫 후보로 조한창(59·사법연수원 18기) 변호사를, 민주당은 정계선(55·27기) 서울서부지방법원장과 마은혁(61·29기)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를 각각 추천했다.
이는 기존 여당 1명·야당 1명·여야 합의 1명으로 3명을 추천하던 관례와 달리 여당 1명·야당 2명 구도다.
국민의힘 주진우 법률자문위원장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중요한 판결을 앞두고 야당이 일방적으로 2명을 추천해 임명하는 것은 매우 공정하지 못하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민주당 강유정 원내대변인은 "이미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 합의가 된 사안"이라고 맞섰다.
이처럼 여야가 맞서는 이유는 헌재의 탄핵안 인용을 전제로 조기 대선 시기의 유불리를 따지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인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형량이 확정되는 시점 이전에 대선 실시를 바라지만 비상계엄 사태의 후폭풍을 맞이한 국민의힘은 이 대표의 재판 선고가 먼저라고 맞서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현재의 '헌법재판관 6인 체제'에서는 6명 전원이 만장일치가 되지 않는 한 결정이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다.
6명 전원 탄핵에 찬성하는 경우라면 추후 선임되는 재판관의 의견과 관계없이 탄핵 결론이 유지된다고 볼 수 있지만, 가령 찬반이 5대 1이나 4대 2, 3대 3으로 나뉘는 경우에는 뒤이어 선임되는 재판관의 의견에 따라 탄핵 여부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헌재, 尹 탄핵심판 답변서 요청‧TF 구성
이처럼 헌법재판관 임명을 두고 정치권의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헌법재판소가 윤 대통령 측에 탄핵심판청구서에 대한 답변을 오는 23일까지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고 17일 밝혔다.
김형두(59·사법연수원 19기) 재판관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에서 기자들과 만나 “전날 오전 바로 답변서를 요청했다”며 “기한은 7일”이라고 말했다.
김 재판관은 “탄핵심판 의결서가 도착했다는 통지를 하면서 답변서를 제출해달라는 의례적인 문구가 있다”며 “그것을 발송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답변서 제출이 의무 사항은 아니다.
김 재판관은 ‘4월 안으로 탄핵 심판 결정이 날 것으로 보는가’라는 질문엔 “해봐야 안다”고 답했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과 이미선 헌재 재판관의 임기는 내년 4월에 끝난다.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답변 제출 기한은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답변 제출 기한은 7일이었다.
전날 헌재는 첫 재판관 회의를 열고 윤 대통령 변론준비기일을 오는 27일 오후 2시로 정했다. 헌재는 탄핵 심리에서 증거 조사 등을 관장할 수명재판관으로 이미선(54·26기)·정형식(63·17기) 재판관을 지정했다. 주심은 전자배당에 따라 정 재판관이 맡는다.
헌재는 선임헌법연구관을 팀장으로 한 헌법연구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오는 27일 변론준비기일에 앞서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으로부터 수사기록을 조기에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첫 변론준비기일 이후 내달 부터는 탄핵심판 재판관 회의도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매주 2번씩 회의를 열어 탄핵 심판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한편 헌재는 지난 16일 오전 재판관 회의를 열고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사건을 변론 준비 절차에 회부해 첫 변론준비기일을 오는 27일 오후 2시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준비 기일은 변론에 앞서 양측을 불러 주장과 증거를 둘러싼 쟁점을 정리하고 심리 계획을 세우는 절차다. 준비 기일도 일반에 공개되지만 당사자의 출석 의무는 없다.
양측이 본격적으로 맞붙는 변론기일은 준비 기일을 마친 후 별도로 지정한다. 헌재는 "탄핵심판 중 이 사건을 최우선으로 심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만 12월에 예정된 최재해 감사원장,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의 변론 준비는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재판관들은 변론 준비 절차를 통해 검찰·경찰 등의 수사 기록을 조기에 확보한 뒤 신속한 심리에 나서기로 했다.
문형배 헌재소장 대행 "尹 심판 주심, 재판 속도·방향 영향 없을 것"
한편 윤 대통령 사건의 주심으로 보수 성향 정형식(63·사법연수원 17기) 헌법재판관이 배정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문 대행이 “재판 속도와 방향에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행은 지난 16일 입장문을 내고 “변론준비기일은 수명재판관 2명이 공동으로 관여하고, 변론기일은 재판장 주재하에 재판관 전원의 평의에 따라 진행되므로 주심 재판관이 누구냐는 재판의 속도나 방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밝혔다.
앞서 헌법재판소는전자 추첨 방식으로 이 사건을 이끌어 갈 주심 재판관을 지정했으나 기존 비공개 원칙에 따라 공개하지 않는다고 밝혔으며, 수명재판관으로 이미선(54·26기)·정 재판관을 지정했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윤 대통령 탄핵 사건의 주심으로 정 재판관이 배정됐다는 소식이 보도되자 이같이 해명했다.
문 대행은 주심 비공개에 대해서도 “재판관 회의를 거쳐 탄핵사건 4건을 주심으로 맡고 있는 한분의 재판관을 배제한 상태에서 무작위 전자배당을 실시했다”며 “주심 비공개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 제1항 제4호, 결정문에 주심을 표시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서 작성방식에 관한 내규’에 따른 조치였고, 이 사건에서 예외를 인정할 근거를 찾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헌법재판관 후보자 3인 '부정선거 의혹'에 "증거 없다"
헌법재판관 후보자들이 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 등에서 제기한 4월 총선 ‘부정선거 의혹’과 관련해 "사실이 아니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지난 16일 정계선(서울서부지법원장)·마은혁(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조한창(변호사) 헌법재판관 후보자에게 제출받은 ‘부정선거론에 대한 의견'에 따르면 후보자 3인은 "개인적인 의견을 밝히는 것이 조심스럽다"면서도 부정선거 의혹에 대해선 일축했다.
민주당이 추천한 정계선 후보자는 "일각에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에 제기된 다수의 선거 무효소송은 모두 기각됐고, 이 과정에서 부정선거 의혹이 구체적으로 증명된 바는 없다고 알고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 추천 몫의 마은혁 후보자도 "우리나라는 3·15 부정선거 등 과거에 자행됐던 부정선거 탓에, 이에 대한 반성과 경계를 다른 어느 나라보다 잘 해오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선거는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이며, 현행 헌법은 이와 같은 중요성을 인식해 선거관리위원회를 헌법기관으로 두고 있기도 하다"고 답했다.
국민의힘이 추천한 조한창 후보자는 "우리나라는 3·15 부정선거 등 과거의 부정선거 경험으로 인해, 부정선거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제22대 국회의원선거 및 제20대 대통령선거와 관련하여 다수의 선거무효 내지 당선무효 소송이 제기됐으나 모두 법원에서 기각됐고, 이 과정에서 부정선거 의혹이 구체적으로 증명된 바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12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유 중 하나로 부정선거 의혹과 선관위의 보안 허점을 이유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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