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 영화 ‘암살’에서 조승우가 건넨 대사다. 늘 쫓기는 신세였던 열혈 투사가 밀양이라는 고향 이름을 입에 올리자 사람 냄새가 풍긴다. 김원봉의 삶을 구성해 온 정체성은 의열단 단장이다. 그런 그에게 밀양이라는 장소성이 붙으면서 정감이 생긴다. 철인의 풍모에 따뜻한 피가 돌고 웃음기마저 번진다. 노마드처럼 유랑해 온 그에게 밀양은 닻이자 품이었다. “우리 부모 형제가 있는 조국 땅으로 진격”하자고 무관학교 생도들에게 훈시할 때, 그에게 조국 땅을 대체할 수 있는 구체물은 밀양이다.
“나 인천 사람, 누구누구요”는 근대 이후 사라진 인사법이다. ‘인천댁’ 이라고 불리던 호칭도 이제는 듣기 힘들다. 정주 의식이 약해진 탓도 있고 동네마다 지닌 특성을 몰각한 도시 개발이 만들어 낸 풍속도다. 그럼에도 거주지 이름이 삶의 전모를 보여준다고 여기는 세태다. 강남에 살고 분당이나 일산에 살면 어깨를 펴며 동네를 밝힌다. 인천에서도 송도에 산다고 하면 좋은 데 사신다는 반응이 온다. 그렇다고 나 송도 사람이오라는 표현은 없다. 거주는 하지만 인간을 빚어내는 장소성은 미미하다. 때론 아파트 이름으로 사람의 격을 잰다. 주택 상품명이 품위에 등급을 매기면서 장소와 나눌 수 있는 교감이 사라졌다. 사람과 장소 사이 유대감이 없으면 장소성이 안겨주는 고향의 맛도 없다.
‘제물포 르네상스’라는 시장 공약을 들을 때 번뜩 장소성 복원 여부를 묻고 싶었다. 제물포라는 공간에서 문예 부흥을 이루려면 고향 같은 정서를 일궈내야 한다. 사는 동네에 대한 자부심을 살려야 건물만 남기는 개발이나 재생 사업을 탈각할 수 있다. 제물포 르네상스는 먼저 장소와 사람 사이 유대를 숙고해야 한다. 환경미학자 이푸 투안은 장소와 맺는 유대감을 토포필리아(Topophilia)라고 이름 지었다. 신체로 장소를 감각해서 얻게 되는 정서적 안정감은 고향 땅에 대한 사랑을 구체화한다. 동구 배다리에서 진행했던 ‘골목출동수리팀’ 활동과 성과야말로 그런 의미에서 토포필리아를 구현한 제물포 르네상스다.
제물포는 ‘오래된 인천’에 대한 그리움이 밴 지명이다. 하지만 인천시민들에게 제물포라는 구체적인 장소는 막연하다. 인천에 제물포가 있다는 사실을 전국에 알린 공은 제물포고등학교라는 교명에 있다. 제물포고로 가려면 당연히 제물포역에서 내리면 된다고 믿었던 외지인들이 많았나 보다. 전국에서 인재가 몰려들던 입시명문 제고 시절 일화가 있다. 시험 치러 낯선 인천으로 몰려들던 입시생 중에는 더러 제물포역에 내려 제고 가는 길을 물었단다. 요즘도 수능날 아침이면 싸이카 뒤에 탄 채 간신히 시험장에 입장하는 학생이 있다. 제물포역에서 제물포고는 한참이고 마음이 타들어 갔을 그 학생은 애꿎은 제물포역만 원망했겠다. 인천대가 제물포역 부근에 있던 시절에는 인천역은 인천대에서 멀고 제물포역 주변이 인천대 학생들 거점이었다. 역명을 병기하지 않았다면 인천대로 가려는 학생은 동인천역을 지나 인천역까지 내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제물포구가 출범하면 제물포를 묻는 일이 더 늘겠다. 제물포역은 제물포구 바깥 미추홀구에 있다. 일찍이 윤현위 교수는 중구 제물포고, 미추홀구 제물포여중, 서구 제물포중 등 산재해 있는 제물포 지명 문제를 제기했다. 제물포에서 르네상스를 이루려면 우선 인천에서 제물포는 어디인가부터 정리해 둬야겠다. 지명은 추상이지만 장소는 구상물 일수록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다. 제물포구 바깥 인천 사람들이 제물포를 인천이 지닌 정체성에 포함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자기 정체가 분명한 도시 인천을 바라며 제물포는 어디인지 지명부터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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