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혁명 뛰넘은 신인류의 등장…'포노사피엔스' 창조한 세기의 괴짜들

일상 혁명 뛰넘은 신인류의 등장…'포노사피엔스' 창조한 세기의 괴짜들

르데스크 2024-12-16 17:32:27 신고

3줄요약

바야흐로 소셜미디어(이하 SNS) 세상이다. SNS가 80억 지구촌 인구의 하루를 지배하고 있다. 하버드 대학생이 기숙사에서 만든 페이스북이 연 SNS시대는 틱톡, 위챗, X, 스냅챗 등까지 가세하면서 황금기를 맞고 있다. SNS의 높은 인기 덕에 하루 종일 휴대폰을 손에서 떼지 않는 사람들이 늘었고 그들을 일컫는 '포노사피엔스(Phonosapiens, 휴대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하는 사람)'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덕분에 '포노사피엔스' 시대를 연 SNS 서비스 기업의 창업주에게는 '신인류의 창조주'라는 별칭이 붙게 됐다.

 

마크 저커버그, 에반 스피겔, 일론 머스크…소셜미디어 황금기 연 실리콘밸리의 괴짜들

 

글로벌 SNS 시장의 최강자로 꼽히는 인물은 메타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는 '마크 저커버그'다. 메타가 운영하는 SNS 플랫폼 페이스북은 월간 이용자수만 30억명에 달한다. 또 다른 SNS 플랫폼 인스타그램 역시 월간 이용자수는 20억명을 훌쩍 넘는다. 마크 저커버그는 메타의 최대주주다. A주(보통주) 95만8000주와 B주(주당 10주의 의결권을 가진 주식) 3억4605만주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소유 B주의 경우 전체 발행량의 85%에 달해 사실상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1984년 5월 14일 뉴욕 화이트플레인스에서 태어난 저커버그는 어려서부터 천재로 불릴 정도로 컴퓨터 프로그래밍 분야에서 두각을 보였다. 치과의사 아버지와 정신과의사 어머니를 둔 그는 11살 때 집과 아버지 치과 진료실 컴퓨터를 연결하는 'ZuckNet'을 만들어 주변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인공지능 기반 음악 플레이어 '시냅스'를 개발해 마이크로소프트와 AOL의 러브콜을 받았고 머시 칼리지에선 대학원급 컴퓨터 과정 수강을 허용해주기도 했다.

 

▲ 소셜미디어 황금기 연 실리콘밸리의 괴짜들. 사진은 마크 저커버그(왼쪽)와 에반 스피겔. [사진=메타, 스냅]

 

2002년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한 저커버그는 심리학과 컴퓨터과학을 전공하며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냈다. 학생들의 수업 선택을 돕는 'CourseMatch'와 학생 외모 평가 서비스 'Facemash'를 개발했고 2004년 2월엔 하버드 기숙사에서 하버드 학생들의 소통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했다. 당시 만든 프로그램은 바로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회원을 보유한 SNS 플랫폼 '페이스북'이었다.

 

그는 '페이스북' 개발 후 운영·확장에 사실상 올인하다 시피 했다. 법인 설립과 동시에 학교까지 그만둔 그는 실리콘밸리로 이주해 페이팔 공동창업자 피터 틸로부터 첫 투자를 유치했다. 2007년 MIT가 선정한 '35세 이하 혁신가 35인'에 이름을 올렸고 2010년에는 배니티 페어 선정 '정보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에 올랐다. 페이스북의 성장을 발판삼아 2012년 인스타그램, 2014년 왓츠앱 등을 차례로 인수하며 SNS 플랫폼 분야에서 압도적인 위치에 올랐다. 2021년 10월에는 회사명을 메타플랫폼스로 변경했고 Reality Labs를 통해 메타버스 사업을 본격화했다.

 

스냅챗 또한 미국에서 탄생한 글로벌 SNS 플랫폼이다. 월간 활성 이용자수 8억5000만명을 보유하고 있다. 스냅챗은 등장과 동시에 사진이 사라지는 독특한 아이디어로 글로벌 멀티미디어 메시징 앱의 선두주자로 발돋움했다. 에반 스피겔(Evan Spiegel), 바비 머피(Bobby Murphy), 레지 브라운(Reggie Brown)이 스탠퍼드대학 시절 함께 만들었다. 현재는 에반 스피겔 CEO와 바비 머피 CTO 두 사람이 회사를 이끌고 있다. 두 사람은 스냅챗을 운영하는 스냅 전체 지분의 45%와 전체 의결권의 70%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초기 공동창업자였던 레지 브라운은 2014년 9월 1 5750만 달러의 합의금을 받고 회사를 떠났다.

 

1990년 6월 4일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에반 스피겔은 퍼시픽 팰리세이즈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산타모니카의 크로스로드 예술과학학교를 다닌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예술 분야에서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고등학교 시절 오티스 예술디자인대학에서 디자인 수업을 들었고 스탠퍼드 입학 전 여름에는 파사데나 아트센터 디자인대학에서 공부했다. 레드불에서 무급 인턴십을 했으며 학생 시절 생명의료 회사에서 유급 인턴, 케이프타운에서 진로 강사로도 일했다.

 

▲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를 440억 달러에 인수한 후 모기업 X Corp에 편입시키고 이듬해 플랫폼 이름을 X로 변경했다. 사진은 X를 인수한 일론 머스크. [사진=U.S. AIR FORCE ACADEMY]

 

1988년 7월 19일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태어난 바비 머피는 버클리의 사립 가톨릭 학교인 매들린 스쿨과 세인트 메리 칼리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010년 스탠퍼드에서 수학 및 전산과학 학사를 받았다. 대학 시절 에반 스피겔, 레지 브라운과 처음 인연을 맺은 그는 두 사람의 아이디어를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역할을 했다. 당시 레지 브라운이 사라지는 사진 앱 아이디어를 사업 경험이 있는 에반 스피겔에게 제안했고 두 사람은 코딩 실력자였던 바비 머피를 영입했다. 그 때 만든 프로그램이 바로 '스냅쳇'의 시초인 피카부였다.

 

세 사람은 2011년 7월 iOS용 'Picaboo'를 출시했고 9월에 앱 이름을 지금의 'Snapchat'으로 변경했다. 바비 머피는 이 시기에 Revel Systems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며 급여의 절반으로 스냅챗 서버 비용을 충당했다. 에반 스피겔 역시 학업을 중단하고 스냅챗에 운영에 전념했다. 이러한 각고의 노력 끝에 2012년 말까지 일일 활성 사용자 100만 명을 돌파했다.

 

2013년 11월 스피겔은 페이스북의 30억 달러 인수 제안과 구글의 40억 달러 제안도 거절하며 회사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2016년 9월 사업 다각화를 위해 회사명을 Snapchat Inc.에서 Snap Inc.로 변경하며 첫 하드웨어 제품인 카메라 안경 'Spectacles'를 출시했다. 2017년 3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으며, 첫날 시가총액이 300억 달러에 달했다.

 

이후 스피겔은 AI와 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숏폼과 구독 서비스도 신설했다. 2020년에는 AI Factory를 인수해 영상 기능을 강화했으며, 숏폼 형태의 Snapchat Spotlight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2022년 6월에는 사용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독 프로그램 Snapchat Plus 를 출시해 8월 기준 100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확보했다.

 

▲ 미국의 대표 소셜미디어 'X' (왼쪽)와 중국의 대표 소셜미디어 '틱톡'. [사진=X, 틱톡 갈무리]

 

글로벌 SNS플랫폼 'X(구 트위터)' 또한 미국에서 탄생했다. X의 월간 활성 이용자수는 6억1100만명에 달한다. 에반 도르시와 잭 도시가 함께 만든 X는 지난 2022년 10월 '세기의 천재'로 불리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의 품으로 넘어갔다.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를 440억 달러에 인수한 후 모기업 X Corp에 편입시키고 이듬해 플랫폼 이름을 X로 변경했다. 또 기존 임원진을 해임하고 직접 CEO를 맡았다. 2023년 5월에는 전 NBC유니버설 임원 린다 야카리노를 새로운 CEO로 영입하고 자신은 CTO와 이사회 의장직을 맡았다.

 

1971년 6월 28일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에서 태어난 일론 머스크는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와 게임에 관심이 많았다. 10세에 VIC-20 컴퓨터로 프로그래밍을 독학했고 12세에는 자신이 만든 게임 'Blastar'를 500달러에 판매했다. 1989년 캐나다 시민권을 가진 어머니 덕에 캐나다로 이주했다. 1990년 퀸스대학에 입학했고, 2년 후 펜실베이니아대학교로 편입해 물리학과 경제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5년 스탠퍼드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중 인터넷 열풍을 체감하고 곧장 학업 중단과 함께 사업에 뛰어 들었다.

 

그는 친동생 킴벌 머스크, 그리고 그렉 코우리 등과 함께 신문에 도시가이드 소프트웨어를 제공하고 라이센스를 부여하는 업체 'Zip2'를 창업했다. Zip2는 설립 이후 뉴욕타임스, 시카고트리뷴 등과 계약을 맺으며 성장했고 1999년 HP에 3억700만 달러에 매각됐다. 일론 머스크는 당시 매각으로 2200만 달러(약 315억원)을 벌었다. 수중에 거액이 생긴 일론 머스크는 온라인 금융 서비스업체 'X.com'을 창업했다. 2000년 피터 틸의 'Confinity'와 합병 후 'PayPal'로 사명을 바꿨다. 그로부터 2년 후인 2002년 이베이에 PayPal을 15억 달러에 매각하면서 최대주주(11.7%)였던 머스크는 1억7600만달러(약 2520억원)를 벌었다.

 

같은 해 페이팔 매각 대금 중 1억 달러를 투자해 우주탐사기업 'SpaceX'를 설립했고 2004년에는 전기차 스타트업 테슬라에 635만 달러를 투자하며 이사회 의장 자리에 올랐다. 또 2006년에는 태양광 에너지 기업 솔라시티 설립에 참여했는데 현재는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테슬라가 소유하고 있다. 이 밖에 2015년 인공지능 연구소 OpenAI, 2016년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개발 기업 Neuralink 및 터널 건설 기업 The Boring Company 등도 공동 또는 독자적으로 설립했다.

 

▲ 미국 SNS와 양대산맥을 이루는 중국의 젊은 두뇌들. 사진은 '틱톡'의 장이밍 (왼쪽)과 량루보. [사진=바이트댄스]

 

2022년 그의 행보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1월부터 트위터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해 4월까지 9.2%의 지분을 확보하며 최대주주가 됐고 나머지 지분에 대해서도 주당 54.20달러, 총 440억 달러 규모의 인수 작업에 돌입했다. 수개월간의 법적 공방 끝에 2022년 10월 27일 마침내 트위터 인수를 마무리 짓게 됐다. 올해 그는 또 다른 베팅으로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는 미국 대선 과정에서 도널프 트럼프 당선자의 선거캠프에서 활약해 승리 선거에 결정적 역할을 해냈다. 현재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는 머스크를 정부효율부(DOGE) 자문기구의 공동 수장으로 일론 머스크 임명을 천명한 상태다.

 

미국 IT 천재 대항마로 떠오른 중국의 젊은 두뇌들…틱톡·위챗 앞세워 전 세계인 일상 침투

 

'숏폼' 열풍의 포문을 연 틱톡(TICTOK)는 중국의 대표 SNS 플랫폼이다. 월간 활성 이용자수만 16억명에 달한다. 텐진의 난카이대학 룸메이트였던 장이밍(张一鸣)과 량루보(梁汝波)가 함께 만들었다. 현재 틱톡의 운영사인 바이트댄스는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이 전체 지분의 60%(칼라일그룹, 제너럴 애틀랜틱, 수쿼해나 인터내셔널그룹 등)을 소유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장이밍(20%), 틱톡 직원들(우리사주, 20%) 등이 보유 중이다. 여느 중국 기업과 마찬가지로 바이트댄스 내에도 공산당 위원회가 설치돼 있으며 장푸핑 부사장(중국 사업부 편집장)이 당위원회 서기를 맡고 있다.

  

바이트댄스 공동창업주인 장이밍은 1983년 4월 1일 중국 푸젠성에서 태어났다. 2001년 난카이대학에 입학해 마이크로 전자공학과 소프트웨어 공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2006년 2월 여행 웹사이트 '쿠쉰'의 5번째 직원이자 첫 엔지니어로 입사해 1년 만에 기술 이사로 승진했다. 2008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로 이직했으나 기업의 규칙적인 문화에 답답함을 느껴 곧 스타트업 판푸로 옮겼다. 량루보는 1983년 장시성 이춘에서 태어나 2005년 난카이대학교에서 소프트웨어 공학을 전공했다. 장이밍과는 대학 시절 룸메이트로 만나 2009년 부동산 검색엔진 '지우지우팡'을 함께 창업하며 사업 파트너십을 시작했다. 

 

▲ 텐센트의 '위챗' 월간 활성 사용자수는 12억명에 달한다. 사진은 텐센트 창업주 마화텅 회장. [사진=중국 뉴스 서비스 웹사이트]

회사 설립 초기 장이밍이 CEO를, 량루보가 제품 개발 책임자를 맡았다. 장이밍은 다른 중국 테크 기업 CEO들과 달리 글로벌 시장 진출에 주력했고 구글과 같은 미국 테크 기업을 경영 모델로 삼았다. 2015년 9월 '틱톡(중국명 더우인)'을 출시했고 이듬해 동영상 위주의 미국 SNS 플랫폼 뮤지컬리를 8억달러(약 1조1452억원)에 인수·합병하면서 덩치를 키웠다. 2021년 5월 중국 정부의 빅테크 규제 강화가 이어지자 장이밍은 CEO 사임을 발표했고 그해 11월 4일 공식적으로 물러났다. 장이밍의 사임 후 량루보가 새로운 CEO로 취임해 현재까지 바이트댄스를 이끌고 있다. 그는 전 직원 급여 12% 삭감과 주말 근무 제도 폐지, 교육사업 축소, 증권사업 매각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안정적 경영 기조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

 

중국산 SNS 플랫폼의 또 다른 대표주자는 '위챗'이다. 2011년 1월 중국의 초대형 IT기업인 텐센트가 출시한 위챗의 월간 활성 사용자수 12억명에 달한다. 최초 메시징 기능만이 가능했으나 지금은 소셜 네트워크, 모바일 결제, 미니 프로그램 등 다양한 기능을 통합한 슈퍼앱으로 발전했다. 텐센트의 창업주는 마화텅(马化腾) 회장이다. 그는 텐센트 지분의 8.42%를 보유하고 있다. 텐센트는 중국 정부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기업으로 유명한데 전체 직원 중 7000명 가량이 공산당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화텅은 1971년 10월 29일 중국 광둥성 차오양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선전 항만 관리자로 부임하면서 선전으로 이주했다. 1993년 선전대학교에서 컴퓨터과학 학사 학위를 받은 후 차이나모션텔레콤에서 페이저용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1998년 마화텅은 네 명의 대학 동창(장즈동, 쉬첸예, 첸첸, 증리칭)과 함께 텐센트를 설립했다. 마화텅은 이스라엘 기업의 메신저 서비스 ICQ에서 영감을 받아 1999년 2월 중국어 인터페이스의 'OICQ'를 출시했다. 1999년 말까지 100만명 이상의 사용자를 확보했으나 상표권 침해 소송으로 2000년 12월 서비스명을 'QQ'로 변경했다.

 

초기 자금난을 극복하기 위해 2000년 IDC와 홍콩 통신사 PCCW에 텐센트 지분 40%를 판매하며 220만 달러를 유치했다. 당시 QQ는 무료 서비스였지만 이모티콘과 벨소리 판매, 통신사와의 메시지 수수료 배분으로 쏠쏠한 수입을 올렸다. 2004년 텐센트는 홍콩증권거래소에 상장했고 QQ는 중국 인스턴트 메시징 시장의 74%를 차지하게 됐다. 2011년 1월 마화텅은 두 개의 엔지니어팀을 경쟁시켜 새로운 메시징 앱인 '위챗(微信, Weixin)'을 출시했다. 위챗은 메시징, 소셜 네트워크, 모바일 결제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텐센트는 현재 위챗과 QQ 외에도 게임, 음악, 결제, 클라우드 서비스 등 다양한 디지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23년에는 기업용 대규모 언어모델 '훈위안'을 출시하는 등 인공지능 분야에도 적극 투자하고 있으며 해외 600여 개 기업에 투자하며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텐센트의 성장에 힘입어 마화텅의 재산도 급격하게 불어났다. 2024년 11월 기준 마화텅의 개인 자산은 430억 달러로 추산됐다. 중국 기업인 중 3위이자 세계 36위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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