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 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 기술이 창작의 영역에도 깊이 관여하는 시대가 됐다.
예술가이며 교육자로 살아온 필자도 느끼는 바는 마찬가지다. 지인 중 한 분은 언젠가 필자에게 이러한 말을 건넨 적이 있다.
"위대한 예술 작품도 좋지만 이제 막 일을 배우려 하는 학생의 작품이 가장 좋게 다가온다. 붓 터치는 거칠고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데생, 튀는 오디오와 문법에 안 맞는 영상편집으로 한 작업이어도 거기에는 창작혼이 꿈틀대는 모습이 담겨있거든. 세상 무엇보다도 이제 막 창작에 입문하려는 인간 본연의 창의적 작업이 들어 있는 순간은 내게는 정말 경이로움이라네."
지인의 발언처럼 '창작'이란 예술 분야에서 큰 위상이 있었다. 그런데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그동안 누리던 위상에 심각한 위협이 오고 있다.
인공지능은 예술에 있어서 창작자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인공지능이 창작의 한 축을 차지함에 따라 디지털 예술에서 전통적인 예술까지 영향을 미쳤다.
예술 종사자는 인공지능으로 일자리에 대한 위기감도 느끼고 있다. 그러한 위기는 상상 속 문제가 아니라, 이미 현실에서 명확히 나타나고 있는 구체적인 사회적 현상이 됐다.
인공지능은 예술 창작에 필수과정의 자동화를 빠르게 실현했다. 대표적 사례가 오픈AI(OpenAI)사의 달리(DALL·E)나 미드저니(MidJourney)와 같은 인공지능 이미지 생성기다. 특히 최근에 나온 소라 AI는 아예 영상을 만들어준다. 텍스트 설명만으로도 누구나 짧은 시간 안에 예술적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다.
필자의 사견이지만 예술작품을 만드는 데는 필수적으로 '노동의 성실함'이 들어가야 한다. 금속공예를 할 때의 치열한 원재료 세공부터 데생이나 덧칠, 한 줄의 글을 쓰기 위한 수많은 문학작품의 사전독서, 시나리오를 쓸 때의 다양한 취재 등 필수적으로 노동의 '투입'이 들어간다. 인공지능은 이 과정을 생략하거나 대폭 줄여버렸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예술적 이미지를 만드는 데 수 시간에서 수일이 걸리던 작업이 이제는 몇 초 만에 이뤄지며, 인간의 작업 속도와 질을 능가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들어갈 명령어만을 만드는 '프롬프트 디자이너'라는 신종 직업군이 생겼다.
기술의 발전은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광고 제작자 등 창작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특히 상업 예술 분야에서 인공지능의 등장은 많은 예술가의 경제적 안정성을 위협하고 있다.
브랜드 로고나 포스터 등을 제작하는 데 인공지능이 쓰여 디자이너들이 받는 작업 의뢰가 감소하고 있다. 효율을 중요시하는 기업의 문화는 인공지능으로 생성된 시안을 보며 의사결정을 해야 하므로 비용 측면에서 인공지능 사용을 적극 권장하는 추세다.
실제로 광고 업계에서는 많은 중소형 기업이 기존 디자이너 대신 인공지능 디자인 툴을 사용해 저비용으로 그래픽 디자인을 해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클라이언트에게 끊임없이 시안을 제시하며 광고주가 바라는 포인트를 찾아주는 과정이 생략된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주는 것은 기본이요, 시안을 제시하며 클라이언트의 의사결정 시간을 대폭 줄이므로 '영업'을 크게 확대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매력적이다. 특히 디자이너가 한번 개발해놓은 인공지능 템플릿은 한번 잘 만들어놓으면 계속 시안을 만들 수 있다. 상업 현장에서는 이렇게 인공지능을 활용해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것이 이미 익숙해져 있다.
상업 현장이 아닌 예술가의 창작 활동에는 어떻게 적용될까.
인공지능 툴을 한번 '학습'시켜놓으면 지속해 작품을 생산할 수 있고, 추가적인 노동력이나 시간이 거의 들지 않는다. 인간 예술가의 창작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인공지능 작품보다 더 큰 비용이 요구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이 그 작품을 '창작'하기 위한 과정은 인공지능의 '생산' 과정과 동일하게 취급된다. 과정은 그저 노동의 성실함이 투입된 시간일 뿐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이 많은 중소기업이 인공지능 기반 디자인을 선호하게 됐다. 평소에 예술 활동을 위한 '알바' 개념으로 상업 미술에 종사해왔던 예술가의 일자리는 더욱 줄고 있다.
이미 인공지능은 단지 효율적 도구만이 아니라, 인간 예술가의 노동을 대체하고 있다. 특히 초보 디자이너나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에게는 더 큰 위기가 되고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은 빠르게 진화해 복잡한 스타일이나 기술을 구현할 수 있게 됐고, 일자리뿐 아니라 예술가 지망생이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게 만들고 있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 가면 공연의 시작을 위한 암전을 만들고자 무대 앞에서 불을 끄고 켜는 직업이 있다. 이들은 예술노동자 조합에 속해 있으며 관객의 유입이나 무대의 상황을 직접 눈으로 파악하고 무대감독과 기술 스태프 사이에서 자신만의 역할을 하고 있다.
최첨단의 자본을 앞세우는 미국 공연계가 굳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동화, 표준화를 내세우며 없애야 하는 일자리 개념 그 이상의 지켜가야 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에 있는 전문 조감독이라는 일자리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조감독은 감독이 되기 위해 거쳐 가야 하는 자리일 뿐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할리우드에서 전문 조감독은 하나의 직업군이다. 감독으로 '입봉'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고 그저 지켜가야 할 직업으로 감독이 연출을 잘할 수 있게 돕는 직업이다. 젊은 감독이 있고 나이 든 전문 조감독이 있는 현장의 오랜 룰은 계속 지켜지고 있다.
필자는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해도 이점을 강조하고 싶다. 지난 수십년간 저작권의 개념을 발전시키고자 예술가들은 위정자와 정책 입안자에게 계속 호소했다. 그 결과 오늘날의 시스템이 만들어져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창작의 권리를 지키게 됐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예술위원회 산하 국가문화예술지원시스템, 지역별 예술인 지원센터 등 현재 다양한 예술인 지원 시스템이 존재한다. 필자는 행정절차는 잘 모르지만, 다양한 시스템을 활용해 인공지능으로 인한 예술인의 일자리 지원을 일종의 기업 바우처 개념으로 정부가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장애인 고용 바우처 같은 복지 시스템을 적용해야 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직업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대하고 이를 정부가 개입해 지원하고 유지해야 한다.
초보 디자이너나 일러스트레이터의 직업도 존중받아야 한다. 미국 연극 공연장에서 평생 불을 켜고 끄는 일만 하는 조합원이나 할리우드 전문 조감독처럼 그러한 예술 활동에 종사하며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수십년간 투쟁해 지켜온 저작권처럼 인공지능으로 인해 영향받는 직업도 지켜가며 변화에 대한 유연함도 이어가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로 성장할 것이다.
모두가 피카소가 되거나 마크 로스코가 될 수 없다. 거장의 조수처럼 적당히 예술에 종사하며 살아갈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은준 미디어아티스트·인공지능 전문가
▲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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