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전히 6공화국에 살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6공화국에 살고 있다

프레시안 2024-12-14 14:59:05 신고

3줄요약

1979년 12.12 쿠데타, 1980년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그리고 통일주체국민회의의 대통령 선출과 8차 개헌을 통해 1981년에 출범한 5공화국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끝이 났다. 전두환에 이어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이 차례로 대통령직을 맡았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반란 및 내란 등으로, 박근혜는 직권남용 등으로 끝내 심판을 받았다. 이렇게 6공화국은 아무런 변함없이 위태롭게 이어져 왔다.

2024년 12월, 우리는 6공화국의 민주주의 제도가 얼마나 취약한지, 그 운영이 얼마나 허술한지, 다시 한번 확실하게 경험하고 있다. 위헌적, 불법적 비상계엄령을 통한 12.3 내란은 윤석열과 그 세력의 친위 쿠데타임이 명확하다. 그 실체적 진실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함은 마땅하다. 그러나 앞날은 지극히 불안하고 위험하다.

12월 4일 새벽,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신속히 통과되면서 살벌한 계엄사령부 포고령(제1호)을 가까스로 멈춰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추경호를 비롯한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는 사태를 관망하면서 친위 쿠데타를 사실상 비호했다. 12월 7일 저녁,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국민의힘 소속 105명 의원의 불참으로 투표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 실패한 쿠데타의 현행범(내란 수괴)을 탄핵하기는커녕 대권을 놓치고 의석을 잃었던 '박근혜 탄핵 트라우마'를 정상 참작해 달라며 '질서 있는 퇴진'을 옹호했다.

12월 8일 오전, 그 저의가 드러났다. 한동훈-한덕수 공동 국정운영 구상은 실상 12·3 친위 쿠데타의 후속 연성 쿠데타라 규정할 수 있다. 이 역시 위헌적이며 사악하다. 1차 쿠데타 실패와 1차 탄핵 투표 불성립으로 발생하게 되는 국정 공백 우려를 제기하며, 한동훈이 접수하려는 국민의힘과 한덕수가 수장으로 남아 있는 행정부처가 합심해 정권을 유지하려는 작전, 즉 각종 권력형 비리 덮기와 21대 대선 판짜기를 기획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군부, 공수처, 경찰이 이끄는 수사본부의 시간 끌기, 꼬리 자르기, 물타기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한덕수·김용현·이상민 등 비상계엄을 심의했던 국무위원들, 박완수·여인형 등 계엄군을 지휘했던 장군들, 조지호·김봉식 경찰 수뇌부들, 이들 모두 내란 모의 참여와 중요 임무 종사 혐의의 수사 대상이다.

맞다. 지금은 국정 공백이 아니다. 대통령의 직무 정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전히 윤석열은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갖고 있다. 12월 3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 몰라도, 대통령은 대통령이다(여전히 인사권을 행사하고 있다). 대신 권력 공유 딜을 통해 대통령 역할을 한동훈-한덕수-윤석열-국민의힘('우리 당')이 공동으로 수행하는 권력 나눠먹기로 게임의 룰을 바꿨을 뿐이다. 물론 2차, 3차 탄핵 국면과 국민의힘 내분으로 순조롭게 진행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윤석열 탄핵 여론이 대단하고, 여의도와 국회를 탄핵 광장으로 만들어 가고 서로 즐겁게 응원하는 시민 행렬이 이런 무미건조한 평가와 전망을 풍부하게 할 것이다.

당장은 윤석열 체포, 퇴진이나 하야가 사태를 수습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공공의 적이 된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의 결심도 필요하다. 비상계엄이 위헌·불법이라는 진실에 동의하면서도 일개 정당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다음 선거의 유불리를 따지는 당리당략에 잠식당한 당론 탓에 국민의힘은 내란 동조 또는 방조 정당이 돼버렸다.

적어도 공당이라면, 2017년 박근혜 탄핵에 이어 쿠데타를 모의하고 직접 실행한 내란 현행범을 여전히 VIP 당원으로 모시고 있는 게 정상일까. 대통령이라면 쿠데타 정도는 해도 된다는 망상, 집권당 대표라면 쿠데타 실패를 구실로 섭정을 해도 된다는 몽상, 당명을 개정해 이미지를 세탁하면 내란 워싱(washing)이 가능할 것이라는 환상 등, 그다음은 어느 선까지 넘으려 할지 두렵다. 이 모든 건 정상 참작이 아니라 가중 처벌 사안이다.

훗날 6공화국 드라마가 제작될 텐데, 윤석열, 윤건희, 천공, 명태균, 한동훈, 한덕수, 충암파, 국민의힘 등 역사적 인물과 정당이 흥미진진하게 등장할 것 같다. '제5공화국' 드라마가 2005년에 방영됐으니, 2040년경이면 '제6공화국'을 드라마로 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동안 전환적 정의는 얼마나 실현됐을까. 물론 7공화국이 어떤 민주주의를 지향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 대목에서 탄핵은 우리가 지나가는 필수 지점이지만, 임시 조치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비상계엄과 탄핵 건으로 많은 시민이 역사와 헌법 공부를 하고 있다. 헌정질서 파괴 범죄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을 만큼 엄중하다. 그러나 언제까지 '호헌'을 전제로 할 것인가.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역사적 성취를 이끌어 온 헌법 정신을 존중한다. 헌정질서의 중심인 자유·민주·공화·공정의 가치를 올곧게 실현하고 확대하는 데 주력한다." 국민의힘의 당헌 총칙에 나오는 문장이다. 물론 헌정 유린 행태를 보면, 이율배반적이다.

국민주권론은 상식적이지만, 앞으로 전방위적으로 심화될 복합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지킬 민주주의의 수준이 정체돼서는 곤란하다. 헌정주의는 헌법에 기초하기 때문에, 이를 새롭게 전면 갱신해야 한다. 이제는 6공화국 '호헌 철폐', 즉 7공화국 개헌을 실행해야 한다. 권리 의무, 권력 구조, 정부 형태, 기후 위기, 생태 환경, 정치 경제, 사회 복지, 노동 돌봄, 자치 분권, 국방 치안, 국제 연대 등 전 분야를 포괄하는 체제 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특히 생태주의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국가와 공동체 전반에 온전히 스며들어야 한다.

군대를 동원해서든 정당을 앞세워서든, 이때다 싶어 국민의 명령을 참칭하거나 자신들의 특수이익을 유지할 기회로 활용하려는 엘리트 지배 세력이 존재하는 한 6공화국 쿠데타와 그 유사 시도는 좀처럼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만의 권력 투쟁에 녹색사회로의 정의로운 전환을 지향하는 다양한 에너지가 흡수돼서는 대권 놀음판의 판돈만 더 키울 것이다. 낡은 헌법을 다시 쓰기 위해서는, 그리고 기후정치가 본격적으로 헌정질서의 핵심으로 자리 잡으려면, 우리의 요구와 실천도 급진민주주의로 더 나아가야 한다. 지난 8월 29일, 헌법재판소의 기후소송 판결보다 더 적극적인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는 여전히 6공화국에 살고 있다. 그러나 6공화국의 황혼기에서 7공화국의 여명기로 거대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할 일은 많지만 갈 길은 정확하다.

▲12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담화를 TV로 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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