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옥살이 속에서도 아사드 정권 잔혹함 폭로…고국 해방 못보고 눈감아
(서울=연합뉴스) 이신영 기자 =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잔혹함을 알렸던 시리아 활동가 마젠 알하마다(47)의 장례식이 12일(현지시간) 수도 다마스쿠스 거리에서 수백명이 몰려든 가운데 치러졌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에 따르면 시리아 국민들은 이날 다마스쿠스 병원에서 알히자지 광장으로 이어지는 운구행렬을 따라가며 그를 추모했다.
이들은 "시리아 국민은 아사드를 처형하기를 원한다"고 외치며 고인을 기렸다.
한 시민은 "마젠과 혁명을 위해 여기 나왔다"며 "그는 자유의 아이콘이자 나와 모든 시리아인에게 형제 같은 존재"라고 애도했다.
더타임스에 따르면 아사드 정권 붕괴 이후에도 이스라엘의 공습과 국지적인 교전 등으로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시리아 시민들이 한자리에 이렇게 많이 모인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평생을 바쳐 잔혹함을 세계에 고발했던 독재자의 몰락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아야 했던 하마다가 죽어서야 고국에서 영웅으로 추대받는 순간이었다.
하마다의 장례식은 슬픔과 희망이 교차했다.
정권의 탄압과 내전으로 헤어져야 했던 사람들이 수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만나 눈물의 포옹을 나눴고, 젊은이들은 새로운 시리아 국기를 두르고 하마다의 이름을 외쳤다.
아사드를 심판하라는 목소리도 들렸다.
한 시리아 시민은 "우리는 이제 자유를 얻었고 결코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마다는 국제사회에 아사드 정권의 잔인함을 보여준 상징적 인물이다.
프랑스계 석유회사에서 기술자로 일하다 2011년 시작된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고 2년 넘게 투옥돼 잔혹한 고문을 당했다.
2014년 네덜란드로 탈출해 망명 허가를 받고 세계 각국을 다니며 아사드 정권을 고발했지만, 국제사회가 행동에 나서지 않자 실의에 빠졌고 2020년 시리아로 돌아갔다가 반군의 승리 이후 옥중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가 시리아로 돌아간 이유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더타임스는 아사드 정권에 대한 두려움보다 서방에 대한 실망이 더 컸던 것이라고 봤다.
하마다와 긴밀히 협력했던 미국 시민단체 '시리아 긴급태스크포스'의 무아즈 무스타파 대표는 "그는(하마다) 전 세계에 자신의 이야기를 알렸지만 아무도 시리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무스타파는 하마다가 생전에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며 실망감을 표현했었다고도 했다.
그는 또 하마다가 국제무대에서 충분한 인맥을 쌓고 고향으로 돌아가면 진정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믿었지만 동시에 정신건강이 악화했고, 친정부 세력이 손을 뻗어왔다고 전했다.
무스타파는 이 친정부 세력이 하마다에게 시리아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줬고, 하마다는 독일 주재 시리아 대사관 소속의 한 여성과 함께 베를린 공항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됐지만 결국 악명높은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돼 생을 마감했다.
그의 장례식에 참석한 조문객들은 하마다가 아사드 정권으로부터 가족들을 살리고 싶으면 집으로 돌아오라는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마다는 자신의 여동생에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내 몸을 바치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냈고, 시리아로 돌아갔지만 끝내 고국의 자유는 목격하지 못했다.
esh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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