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어즈앤스포츠=김민영 기자] "당구 심판은 내 마지막 끝사랑이에요. 중독이라고 생각될 만큼 좋아요."
프로당구 PBA-LPBA 투어의 가장 화려한 꽃은 프로 당구선수다. 대회 중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당구선수의 몫이다.
꽃이 화려하게 피기까지는 좋은 토양과 적당한 일조량, 그리고 충분한 물이 꼭 필요하듯 프로당구 투어에서도 프로 선수들이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고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기까지 꼭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특히 당구 경기에서 빠질 수 없는, 선수 다음으로 대중들에게 많이 노출되는 사람이 바로 심판이다.
(사)프로당구협회에는 총 33명의 당구 심판이 PBA-LPBA 투어에서 활동 중이다. 그중 가장 특이한 이력을 가진 심판은 단연 성혁기(57) 심판이다.
성혁기 심판은 2022년부터 PBA에 합류한 '꽉 채운 3년차' 프로당구 심판이다. 그는 현재 경기 평택의 험프리기지에서 기지사령부 운영 관련 한국인 책임자로 근무하며 당구심판을 겸업하고 있다.
그가 주둔 미군기지인 평택 험프리기지에서 하는 주요 업무는 주둔 부대원들이 편하게 주둔해 있을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하고 기지를 운영하는 것은 물론, 오늘 밤에 바로 전투에 임할 수 있도록 서포트 하는 역할이다.
성혁기 심판은 자신을 '반군인'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금은 기지 운영이 주요 업무지만, 전시에도 군인들을 서포트하는 역할을 해야 하며, 정기적인 기초 군사훈련을 받고 있는 전 세계 유일하게 시민으로 구성된 군사 조직에 속해 있다"고 소개했다.
이런 그가 당구심판을 병행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당구가 너무 좋아서."
사실 그의 당구심판 도전은 프로당구가 처음이 아니었다.
"대한당구연맹(KBF)에서 심판 자격증을 딴 후에 대한당구연맹 심판 모임에 초청은 됐는데, 아무리 신청을 해도 써주지 않았다. 결국 대한당구연맹에서는 단 한 번도 심판 수행을 못 했다"라고 쓴웃음을 지은 그는 결국 프로당구로 시선을 돌렸다.
"2020년에 프로당구 심판에 지원을 했는데, 코로나가 터져서 면접을 볼 수 없었다. 직업 때문에 코로나 시기에는 자발적으로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한으로 줄여야만 했다."
첫 도전은 시도도 못 해 보고 물거품으로 끝냈지만 그대로 포기하기에는 당구가 너무 좋았다.
"2021년에 면접 공지가 떴는데, 당시 나이 제한이 50살이었다. 이미 나는 나이 제한을 넘겼고, 이력서를 쓰긴 했지만 한참을 망설이다 '나이가 너무 아쉽습니다'라고 마지막 줄에 써서 냈다. 내 이력이 특이했는지 협회에서 연락이 왔고, 일단 면접이라도 보고 싶다고 요청했다. 결국 2021년 12월 3일에 합격 통지를 받았다."
그는 "당구심판 자격증을 땄을 때 아내한테 오랜만에 칭찬을 들었다"며 "프로 당구심판이 된 후에는 스스로가 너무너무 자랑스러웠다. 프로당구 무대에서 첫 심판으로 섰을 때 뿌듯함이 정말 컸다"고 밝혔다.
심판 성혁기의 일은 단순히 심판 수행이 끝이 아니었다. '경기심판커뮤니케이터'라는 직함을 단 그는 프로당구 경기규칙서를 영문으로 번역하고, 투어와 관련된 회의 메뉴얼 작업과 파울 규정과 프로당구협회에서 사용하는 심판 경기 용어들을 영문으로 번역한 것도 그의 작품이다.
그는 "심판 수행은 중독성이 있을 정도로 좋다. 그 외에 행정적인 일을 하는 것은 프로당구가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에 작은 도움이라도 보탤 수 있다면 기꺼이 언제든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진심을 전했다.
사실 성혁기 심판은 당구 구력 40년의 숨은 고수다. 경기도 안성시 대표선수로 경기도민체전에 출전한 경력도 있고, 실업팀 선수 제의도 받을 만큼 당구 실력도 출중하다. 이 부분도 심판 수행에 큰 플러스 요소다.
그는 심판이 가져야 할 태도 중 가장 중요한 요소로 '공정함'을 꼽았다. 올 한 해 PBA 심판과 LPBA 여자 선수들과 정기적인 친선 경기를 갖고 있는 NOLJA(놀자) 활동을 하면서 그는 선수에 대한 편견을 버렸다.
"심판과 선수의 사적 친분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만약 개인적인 친분으로 심판으로서의 역할에 영향을 미친다면 심판 자질이 없는 것"이라고 딱 잘라 말한 그는 "반면, 평소 별로 좋은 이미지의 선수가 아니었지만, 막상 같이 경기를 하면서 선수로서 어떤 애환이 있는지 들었을 때 평소 이미지와 달라서 너무 좋은 인상을 받았다"며 심판과 선수 사이의 올바른 균형에 대해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공에 대한 깊은 연구를 통해 선수의 경기에 누가 되지 않는 심판이 되고 싶다"고 밝힌 그는 "나에게 심판은 '또 다른 가족, 끝사랑'이라고 표현할 만큼 애착을 갖고 있는 직업이다. 또 그만큼 당구에 대한 애착도 크다. 프로당구협회가 발전하고, 프로 당구선수들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사랑받는 순간이 하루빨리 오길 간절히 고대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사진=이용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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