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4월 중순, 중소기업은행 정우창 행장과 서울은행 심병식 행장이 성도그룹에서 SD그룹으로 사명을 변경해서 조금 전에 인테리어가 끝난 SD그룹 회장실로 찾아왔다. 정 행장이 다급하게 말한다.
“임 여사님, 나 좀 살려주세요!”
“행장님이 왜 이러세요? 무슨 일이에요?”
“사기꾼에게 완전히 당했어요. 사표를 써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구속당할지도 모르고…”
옆에 있던 심 행장도 거든다.
“나도 같은 입장입니다.”
“아니 두 분께서 어쩌다가…”
“박영복이란 놈이 있는데 워낙 철두철미하게 우리를 속이는데 안 넘어갈 재간이 있었나요.”
영숙은 박영복이라는 이름을 어디서 들어 본 듯했다.
“자, 차 한잔들 드시고 자세히 이야기해 보세요. 평소답지 않게 우리 행장님이 왜 이리 다급하실까.”
“내가 뭐에 씌워도 단단히 씌웠어요. 그렇지 않고서야…”
“을지로에서 영창식품을 운영하는 자가 박영복인데 반듯하고 돈 많은 실업가라 생각했지요. 이 사람은 변죽도 좋아서 내 방을 수시로 드나 들었고… 을지로 지점에서 담보 대출로 몇 건이 나갔는데 전부 위조 서류에 당했어요. 우리 본점 심사부에서 알아냈는데 이미 20억 정도가 대출로 나갔습니다.”
사고를 발견한 후에 즉각적으로 은행감독원이나 재무 당국에 보고했더라면 일찍 수습하여 손실을 줄일 수도 있었는데 은행은 대외 공신력을 생각해서 내부적으로 채권 회수에 나섰다. 이것이 화근이 되었다. 그 와중에 은행감독원의 정기감사가 시작되었다. 담보가 허위였다는 것이 발각되고 과다 감정 사실도 밝혀졌다. 이어서 전체 금융기관으로 특별감사가 시작되었다.
정 행장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영숙은 박영복이 누구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성도그룹의 외곽 조직에서 꽤 큰 금액을 사기 치고 달아난 그놈인 것 같았다.
“제가 한번 알아볼 테니 너무 걱정들 마세요.”
“우리는 임 회장님밖에 기댈 데가 없어요. 이거 원 창피해서…”
두 행장을 배웅한 영숙은 자리로 돌아와 청하를 불렀다.
“혹시 박영복이라고 기억나? 지금 40살쯤 되었다는데.”
“아, 박영복은 성도건설 전남 지사장이었다가 해고된 사람인 것 같은데요?”
“그렇지! 그래, 그 놈이지!”
광주천 복개 공사 건으로 사기를 쳐서 성도건설에 먹칠을 한 놈이다. 수법이 워낙 치밀해서 한동안 눈치를 채지 못했었다.
1974년 6월 25일 중소기업은행은 관계 직원에 대한 인사조치가 있었는데 면직이 3명, 감봉이 12명이었고, 은행장 정우창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었다. 박영복에게 1,700만 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공소사실 부분에는 증거가 없다고 무죄를 선고하고 업무상 배임죄만 적용하여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의 판결이 내려졌다.
한편 서울은행은 김정수 차장과 안영호, 박수웅 대리를 면직시켰고, 심병식 행장은 사임으로 종결하였다.
박영복은 1심 판결에서 징역 15년이 선고되었으나 항소심에서 7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1975년 7월 재항소심에서 공문서위조죄가 추가되어 징역 10년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에서도 징역 10년이 그대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박영복은 세간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8년 후, 박영복 사건의 후편이 또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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