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2일 29분에 걸친 4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대통령실이 배포한 자료 기준으로 A4 용지 26쪽(7000여 자)에 달하는 분량이다.
국회와 야당을 향해 "광란의 칼춤" 등 과격한 비난을 퍼부었지만, 핵심은 자신의 계엄 선포를 "통치행위" 논리로 엄호한 대목이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권 행사는 사면권 행사, 외교권 행사와 같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행위입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국정을 정상화하기 위해, 대통령의 법적 권한으로 행사한 비상계엄 조치는,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고, 오로지 국회의 해제 요구만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라를 살리려는 비상조치를 나라를 망치려는 내란 행위로 보는 것은, 여러 헌법학자와 법률가들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우리 헌법과 법체계를 심각한 위험에 빠뜨리는 것입니다."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인 윤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면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도 받게 된다. 법 이론상 사법심사 대상에서 제외되는 '통치행위' 개념을 계엄 선포의 위헌성에 대한 사법적 방어의 줄기로 세운 것이다.
대통령 고유 권한인 계엄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선포했고, 헌법적 결단이자 통치행위는 내란이 될 수 없으며, 따라서 헌재와 법원에 사법적 판단을 구할 수 없다는 게 윤 대통령 주장의 골자다.
윤 대통령은 이를 "사법부 판례와 헌법학계의 다수 의견"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이 끌어들인 '1997년 대법원 판례'와 상통한다.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전두환‧노태우 신군부의 5.18 내란에 대한 1997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다.
당시 "헌법에 의하여 대통령이 새로 선출되고 국회가 새로 구성되는 등 통치권의 담당자가 교체되었다면, 그 군사반란 및 내란행위는 국가의 헌정질서의 변혁을 가져온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고 할 것"이라며 "사법적으로 심사하기에는 부적합한 것"이라는 반대의견이 제시됐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주장의 연장선이다.
그러나 신군부 내란 판결에서 대법원은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해진 경우 법원은 그 자체가 범죄행위에 해당하는 지의 여부에 관하여 심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윤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국헌문란을 목적으로 행해진 계엄에 대해선 사법부가 판단할 수 있다는 의미다.
형법 91조2항은 '국헌문란'을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 또는 그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당시 대법원은 국가기관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보다 분명히 해 "그 기관을 제도적으로 영구히 폐지하는 경우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사실상 상당 기간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을 포함한다"고 판시했다.
윤 대통령이 "병력이 투입된 시간은 한두 시간 정도에 불과"하다면서 "도대체 2시간 짜리 내란이라는 것이 있냐"고 따져물은 대목은, 계엄 선포에서 국회의 해제 의결까지 소요된 2시간을 '상당 기간 국가기관의 권능 제한'에 해당하는지를 법적으로 다퉈보겠다는 계산으로 보인다.
결국 대법원은 "비상계엄 확대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이 선포함으로써 외형상 적법하였다고 하더라도,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내란죄의 폭동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윤상현 의원이 윤 대통령을 엄호하며 끌어들인 '1997년 대법원 판례'의 실상은 권력자의 '통치행위' 면죄부를 배척한 사례라는 해석이 다수다. 이를 의식한 듯 윤 대통령은 계엄 당시 국회에 계엄군을 진입시킨 명령의 의미를 최대한 축소했다.
윤 대통령은 "(김용현 전 장관에게) 질서 유지에 필요한 소수의 병력만 투입하고, 실무장은 하지 말고,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이 있으면 바로 병력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장 1차장이 계엄 선포 당일인 3일 10시 53분 윤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와 "이번 기회에 다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해"라며 방첩사령부를 지원하라고 명령했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은 내놓지 않았다.
계엄군을 선거관리위원회에 진입토록 한 명령에 대해 윤 대통령은 4월 총선에 대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저는 이번에 국방 장관에게 선관위 전산시스템을 점검하도록 지시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부정선거로 연결될 만한 별다른 증거 제시 없이 선관위 시스템을 "엉터리"로 규정한 그는 야당의 감사원장‧검사 탄핵의 목적을 "사법부를 향한 탄핵의 칼"로 예단하며 "뭐라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해 계엄을 선포했다고 주장했다.
'12.12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노태우는 '통치행위' 항변이 무력화돼 1997년 대법원 판결로 징역형이 확정됐다. 그로부터 27년 만에, 국회를 겁박한 계엄을 통치행위라고 주장하는 '12.12 담화'를 발표한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와 사법부의 판단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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