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의 위치가 절묘하다. 정발산역 3번 출구는 ‘고양아람누리’로 연결된다. 고양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고양아람누리는 2007년 개관한 문화예술의 전당이다. 고양시립미술관 아람미술관의 ‘아람’은 무슨 뜻일까. “아람은 ‘크고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입니다.”
■ 예술 장르의 경계를 허문 미술관
고양시 일산동구 마두동에 있는 고양아람누리는 해발 87m의 아담한 정발산을 배경으로 오페라극장인 아람극장(1천887석)과 최상의 음향을 자랑하는 아람음악당(1천449석), 최첨단 가변형 극장 새라새극장(304석)까지 3개의 공연장을 갖추고 있다. 고양아람누리를 둘러보면 어디까지가 미술관이고 공연장인지 경계가 모호하다. 이처럼 첨단으로 단장한 시설물도 현대미술처럼 통섭적이고 융합적이다.
“아람미술관은 회화를 비롯해 조각, 사진, 최첨단 미디어아트 전시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전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미술관 곁에 도서관과 공연장이 붙어 있어 전시를 관람하고 공연을 보거나 도서관에 들르기에 좋습니다.” 정태경 주임의 설명처럼 아람미술관의 입지 조건이 특별하다. 벽면이 이동형이라 다양한 공간의 변신이 가능한 것은 아람미술관의 강점이다.
수준 높은 국내 전시와 국제전을 아우르는 실험적인 현대미술을 전시하고 있는 아람미술관은 우리나라의 전시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회화와 조각, 공예, 사진, 설치미술, 미디어 등 다양한 장르를 선보여 한국 미술의 흐름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어린이 체험전시를 포함한 폭넓은 장르의 기획 전시와 대관 전시를 함께 선보이고 있다.
지하 2층에 있는 전시 공간 ‘갤러리 누리’는 여러 개의 전시실로 이뤄져 있다. 천진규 작가의 ‘나비의 꿈’과 나누리 작가의 ‘투명한 낙원’, 김윤환 작가의 조각전 ‘의도하지 않은 조각 UNINTENDED SCULPTURE’가 열리고 있다. 인조잔디가 깔린 야외 중정은 지상과 지하를 잇고 있는 통로이기도 하다.
■ 생생화화 生生化化
현재 ‘생생화화 生生化化 2024’전이 열리고 있다. “‘생생화화’는 경기문화재단의 시각예술 창작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선정된 작가 18명의 창작 성과를 발표하는 전시회로 내년 1월까지 전시됩니다. 선정된 18인의 시각예술 작가를 두 그룹으로 나눠 고양시립 아람미술관과 안산 김홍도미술관에서 공동으로 전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람미술관의 전시 주제는 ‘궤적을 연결하는 점들’이다. 전시를 알리는 포스터도 제목만큼이나 인상적이다. 참여 작가의 이름이 새겨진 작은 원이 밤하늘을 밝히는 우주의 별처럼 보인다.
“예술은 시간과 경험이 축적돼 만들어지는 궤적이다. 작가의 시선과 손끝에서 형성된 궤적들은 과거를 재해석하고 변화와 실험, 그리고 성찰을 통해 끊임없이 생성되고 확장된다. …작가들이 각자의 삶과 작업을 통해 쌓아온 예술적 궤적을 살펴보고 이뤄진 변화를 조명하고자 한다.” 강상우, 김대환, 김민정, 김진기, 김현주&조광희, 서성협, 이세준, 이희경, 전보경, 최윤지, 홍수진 작가의 작품을 만나기 위해 전시실에 들어선다.
평면의 그림을 전시한 방식이 특이하다. 작가는 캔버스의 아래 혹은 위를 튀어나오도록 입체적으로 설치한다. 현실과 상상이 중첩된 풍경을 변화하는 회화로 보여주는 이세준 작가의 작품은 얼핏 무지개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우리의 기억처럼 또렷함과 흐릿함이 뒤섞여 있다.
“9개의 캔버스에 그려진 ‘모든 순간들, 우리가 떠올렸던’이라는 작품 구성이 재미있어요. 작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작품의 배치를 달리해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사진 위에 물감을 칠해 묘한 분위기가 펼쳐진다. 폐기된 공간과 대상을 탐구하며 사진과 회화를 결합해 삶의 순환을 형상화하는 김진기의 시선은 낮지만 따스하다. 한때는 아낌과 사랑을 받았을 물건도 시간이 지나고 쓰임이 다하면 버려지고 잊히는 사실을 표현할 것일까. 작가가 던지는 질문이 가슴에 묵직하게 박힌다.
서성협 작가는 소리를 매개로 이질적이고 복잡한 개체들이 이어지는 과정을 시각화하고 있다. 조각의 손잡이를 당기니 경쾌한 종소리가 들린다. 단순하지만 관객과 소통하려는 작가의 발상이 재미있다. 어둑한 전시실에 상영되는 영상물은 또 무엇일까. 1950년 6·25전쟁 때 포로가 된 A라는 사람을 통해 권력과 지식의 관계를 고찰한 홍수진 작가의 작품이다. 작가의 시선은 다큐멘터리나 탐사보도처럼 끈질기고 진지하다.
■ 담장과 경계를 허무는 미술관
이번에는 빛이다. 전시실 바닥에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지는 공간에 들어선다. 불꽃놀이와 백리탄의 이중적 이미지를 통해 비판적 시각을 제시하는 김민정 작가의 방식이 재미있다. 벽에는 높낮이가 다른 세 개의 구멍을 뚫어 불꽃놀이 혹은 게임처럼 진행되는 전쟁의 참상을 관람객이 살펴볼 수 있다. ‘생각하지 않으면’ 축제와 전쟁의 경계조차 흐릿하여 구분되지 않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제주도 강정마을과 오키나와는 서로 닮았다. 강제로 일본에 편입된 오키나와의 주민은 2차대전 때 커다란 희생을 당했고 제주도는 4·3 때 엄청난 민간인이 희생됐다. 문제는 그 고통이 70~80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문득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떠올린다. 미군기지와 그 주변에서 얽힌 삶과 그 경계 속에서 공동의 가치를 성찰하는 김현주와 조광희의 작품은 분단의 아픔과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보여준다. 한국에 살고 있는 이주여성의 고단한 삶에 주목하는 이희경 작가의 시선이 따뜻하다.
작가는 전시실에 비닐커튼을 쳐 관람객의 시선과 통행을 의도적으로 방해한다. 어지러운 커튼은 한국 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이주여성들이 경험하는 차별과 소외, 정체성의 충돌과 시간을 상징하고 있다. 기후 문제는 인류가 지혜를 모아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다. 하지만 문제의 해결책은 여전히 찾아내지 못했다. 기후 변화 속에서 사라지는 자연의 소리를 재구성해 새로운 소리풍경을 보여준 전보경 작가의 발상이 신선하다.
한편 최윤지 작가는 도시의 생성과 건설 과정을 보여주며 노동의 숭고함과 아름다움을 탐구한다. 불이 활활 타오르는 드럼통이 있다. 건설 노동자들의 시린 손을 녹여주는 모닥불이다. 바닥에 쌓인 막대에 쓰인 글귀에 노동자의 척박한 현실이 압축돼 있다. ‘사망사고 절반으로 줄입시다.’ 도르래에 매달린 막대에 쓰인 글귀는 더욱 절박하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내일도 건강하게 만납시다.’ 이처럼 ‘생생화화’는 일상에 묻혀 사는 우리를 성찰하게 하고 각성시킨다.
■ 생활 속 문화예술의 놀이터
아람미술관은 사회문화예술교육에 충실하다. 실용적이고 유익한 문화예술 평생교육을 제공하는 ‘어울림문화학교’를 비롯해 교육 프로그램과 감상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하고 있다. 현장 참여가 가능한 점도 아람미술관의 자랑이다. 지역 작가들의 작업세계를 관람객들이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는 아카이브 공간도 마련하고 있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아 정체성을 찾고 창의력을 키울 수 있도록 문화예술 장르를 통합해 구성한 체험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아람미술관은 고양시민들에게 일상에서 폭넓은 문화예술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성실하게 담당하고 있다.
“고양아람누리는 전통과 현대의 화제작을 만나는 곳, 다양한 문화예술 교육을 경험하는 곳, 예술가와 시민이 소통하는 곳, 누구나 문화예술을 누릴 수 있는 곳, 삶과 문화예술이 어우러진 공간입니다.” 재단의 목표처럼 아람미술관은 아름다운 미술로 우리 삶을 비추는 한 줄기 햇살처럼 충전하고 자극한다.
아이디어가 필요한가. 새로운 생각이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면 아람미술관을 찾아보길 권한다. 전시가 무료이고 주차하기에도 편하다. 정발산의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노루목야외극장, 문화예술 강의시설과 카페·식당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어 사계절 나들이하기에 좋다. 김준영(다사리행복평생교육학교)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지금 쿠팡 방문하고
2시간동안 광고 제거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