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찻잔은 내가 책상으로 돌아가게 하는 주문 같은 것이었다.” 지난 6일 노벨문학상 작가 한강이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상박물관에 옥색 빛이 감도는 작은 찻잔을 내놓았다. 직접 손 글씨로 쓴 메모에 차를 마시고 글을 쓰는 루틴을 적어두었다. 노벨상 수상자들이 수상한 해에 노벨상박물관을 방문해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물품을 기증하는 전통에 따른 것이다.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찻잔에 대해 그는 “굉장히 친밀하면서 소중하고 단순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한강 작가는 지난 10월 10일 노벨문학상 선정을 알리는 노벨위원회 관계자와의 첫 전화 통화에서도 “차를 마시고 싶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래서 아들과 차를 마시면서 오늘 밤 조용히 축하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차와 함께하는 루틴
사진/ 연합뉴스 제공
그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는 동안 몇 개의 루틴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늘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그가 반드시 지키는 일과는 다음과 같다.
1.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가장 맑은 정신으로 전날까지 쓴 소설의 다음을 이어 쓰기 2. 당시 살던 집 근처의 천변을 하루 한 번 이상 걷기 3. 보통 녹차 잎을 우리는 찻주전자에 홍차 잎을 넣어 우린 다음, 책상으로 돌아갈 때마다 한 잔씩만 마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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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차를 마시며 하루에 예닐곱 번, 이 작은 잔의 푸르스름한 안쪽을 들여다보는 일은 당시 생활의 중심이었다고 회고한다. 찻잔은 책상으로 돌아가게 하는 주문 같은 것이라는 대목에서 새벽같이 일어나 차를 우리고 마시는 일을 반복하며 글쓰기에 오롯이 전념하는 삶을 상상한다. 실제로 현재 그는 좋아하던 여행도 다니지 않고, 건강을 돌보기 위해 더 이상 술을 마시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대신 많이 걷고, 차를 마시며 원고 집필에만 몰두한다고 인터뷰와 공식 석상에서 밝힌 바 있다. 그가 사용한 단정한 느낌의 옥색빛 찻잔에 자꾸만 눈길이 가는 이유는 소탈하고 단출한 삶을 이어가며 소설 집필에만 몰두하는 근기와 뭉근한 열정이 찻잔 속에 담긴 것처럼 느껴저서다. 차의 시간은 작가가 가장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소설을 마음속에서 굴리는 일’을 오랫동안 꾸준히 이어가도록 도왔다.
차로부터 사랑의 탐구까지
한강 작가에게는 차는 예술(글쓰기)에 전념하고 루틴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도구다. 실제로 그의 아버지 한승원 소설가는 차밭을 일구고 차를 직접 덖어 마실 정도로 차에 대한 사랑이 크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또한 다수의 소설가나 시인 등 문인 중에서 일상에서 차를 즐기는 다인(茶人)이 꽤 많다. 일본 작가 마스다 미리의 책 〈차의 시간〉 또한 떠올랐다. 미리 작가는 차의 시간을 ‘문득 떠오른 무언가를 생각하는 인간다운 시간’으로 표현한다.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차를 주문한 채 가벼운 마음으로 주변을 관찰하거나, 느긋하게 멍때리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한강 작가가 말하는 고독의 시간과 거리가 있지만, 나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차를 우리는 행위는 거듭할수록 몸가짐을 정갈하게 다듬게 되고 혼란스러운 잡념을 가라앉혀 마음을 진정시킨다. 입안 가득 퍼지는 맛과 향을 음미하다 보면 고요하게 명상하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진/ 노벨상 공식 X
한강 작가는 새벽의 고요함과 홀로 침잠하는 시간을 통해 내면을 들여다볼 줄 아는 이다. 차를 내리는 행위를 일컫는 다도는 내면으로 깊숙하게 파고들거나 홀로됨을 연습하는 수련에 종종 비유되곤 한다. 그래서인지 한강의 작품들은 늘 인간의 본질과 내면 탐구를 끈질기게 해오며 인류에 대한 사랑을 향한다. 지난 10월 노벨위원회는 한강의 문학상 선정 이유에 대해 "역사적 트라우마를 배경으로 해 인간 연약함 탐구한 작가를 선정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노벨재단의 아스트리드 쇠데르베리 비딩 이사장은 “올해의 문학상은 역사적 트라우마를 배경으로 인간의 나약함을 깊이 탐구한 작품에 수여됐다”며 “(한강의 작품은) 변화를 향한 열망만큼이나 나락은 늘 가까이에 있음을 보여주고, 인간 존재의 비극적 조건을 조명한다”며 의의를 밝혔다.
사랑에서 시작하고 끝나는 글쓰기
지난 7일 전 세계로 생중계된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에는 한강 작가가 직접 연단에 섰다. 이날 발표한 원고에서 한 소설가가 오랜 시간 지켜온, 단출하고 단단한 삶과 작품 세계를 헤아릴 수 있었다. 지난해 우연히 발견한, 자신이 8살에 쓴 시에 등장하는 ‘금실’이라는 단어로 시작한 글은 사랑이라는 메시지에 가닿으며 끝이 난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한강 작가가 쓰는 사람이 되고부터 어떤 질문을 품고 살아왔는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으려 고군분투해온 나날을 반추하는 아름다운 글이었다. 침착하고 담백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가는 영상을 보는 국민들은 울고 웃었다. 그로 하여금 좌절스럽고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음에도 예술이 가진 강력한 힘으로 말미암아 치유 받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작품은 물론, 반갑고 기쁜 수상 소식에서 앞으로 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시금 고민해보게 된다. "가장 어두운 밤에도 언어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묻고, 언어는 이 행성에 사는 사람의 관점에서 상상하기를 고집하며, 언어는 우리를 서로 연결한다"는 수상 소감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강연록 ‘빛과 실’에서 발견한 아름답고 유려한 문장을 발췌해 보았다. 전문은
웹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다.
생명은 살고자 한다. 생명은 따뜻하다. /죽는다는 건 차가워지는 것. 얼굴에 쌓인 눈이 녹지 않는 것. /죽인다는 것은 차갑게 만드는 것. /역사 속에서의 인간과 우주 속에서의 인간. /바람과 해류. 전세계를 잇는 물과 바람의 순환.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연결되어 있다, 부디.
한편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2021년 가을까지, 나는 줄곧 다음의 두 질문이 나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왔었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학살에서 살아남은 뒤, 사랑하는 사람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내 장례를 치르고자 싸워온 사람. 애도를 종결하지 않는 사람. 고통을 품고 망각에 맞서는 사람. 작별하지 않는 사람. 평생에 걸쳐 고통과 사랑이 같은 밀도와 온도로 끓고 있던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는 묻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