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쟁의 겨울… 민생 법안도 꽁꽁 얼었다

[기자수첩] 정쟁의 겨울… 민생 법안도 꽁꽁 얼었다

머니S 2024-12-12 05:45: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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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인간성의 권장 덕목이 '이성'이 됐다. 거기에 덧붙여 '인간은 늘 냉철한 논리와 이성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하는 동물'이 돼야만 했다. 가장 신경쓰이는 핀잔은 "왜 그렇게 감정적으로 행동하느냐"다. 나부터도 그 질책을 피하려고 때로는 좋아서, 때로는 성질이 나서 한 행동들에 감정과는 무관했다며 이유를 찾으려 들었다.

시간이 흐른 뒤 힘든 일이나 불행한 일의 뒤를 살피면 그 이면에는 늘 오만함이 존재했다. 저들보다는 낫다는 도덕적 우월감이 이기심과 독선을 합리화했다. 사회과학에서는 이를 '도덕적 면허 효과'(moral licensing effect)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나는 도덕적인 사람이니 비윤리적인 행동을 해도 괜찮다고 이성으로 정당화하는 것이다.

대부분 이 과정은 무의식적으로 진행된다. 말과 행동이 어긋나는 것은 인지하지 못한다. 문제를 비판하며 대안을 찾겠다던 이들도 부정하게 특권을 추구하거나 비윤리적인 일을 한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보면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난데없는 비상계엄 사태와 극단적 정쟁이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도덕적 우월감을 뽐내며 위선을 이성으로 감추는 정치권에 서민들의 삶은 더 춥고 힘들다.

12월,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면서 날씨만큼이나 국민들의 삶도 얼어붙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한 해를 마무리하며 민생을 살피는 데 집중해야 할 시기지만 비상계엄 여파로 정부와 국회가 마비됐다. 내년 경제성장률이 1%대에 머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만 정치권의 관심은 정쟁에만 쏠려 있다.

여당은 권력 이양을 위해 위헌적 발상을 이어가고 야당은 정부를 무력화해 조기 대선을 치르는 데만 관심이 있다. 민생과 예산은 정쟁의 무기로 전락했다.

그들의 행동 원천에도 도덕적 우월감이 있다. 상대가 얼마나 끔찍한 지에 초점을 맞추고 나는 다르다고 뽐낸다.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보다 도덕적 비교우위를 발휘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이슈에만 치중하고 있다.

이 같은 여야 대립 속에 양측이 강조한던 민생 관련 예산은 증액 없이 통과됐다.헌정사상 처음으로 정부와 여당이 반대한 야당 주도 '감액(減額) 예산'이다. 극단적 정치 대립이 나라의 한 해 살림살이마저 합의하지 못한 채 일방 처리된 것이다.

물가 폭등 등으로 국민들이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체감 물가와 직결되는 가계 통신비 인하도 요원해졌다. 정부는 올해 1월 '민생 살리기' 일환으로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폐지를 약속했다. 3차례 요금제 개편을 추진하고 단말기 가격 인하를 주문했다. 하지만 계엄 사태와 탄핵 국면으로 국회 일정이 올스톱 되면서 정부가 추진해온 '통신비 부담 완화 정책'에도 제동이 걸렸다.

민생 법안으로 꼽히는 인공지능(AI) 기본법도 표류하고 있다. 연내 제정이 유력시됐으나 탄핵 정국 속 여야 대립이 극심해지면서 AI 기본법 통과 시기가 내년으로 밀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회 본회의에선 AI기본법 심의·의결을 지난 10일 처리하려고 했으나 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이날 내란 혐의 규명을 위한 상설특검 수사요구안만 의결됐다.

AI 업계와 학계는 해외 빅테크와 정부가 촌각을 다투며 AI 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국내에서도 하루빨리 관련 제도와 투자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며 안타까움을 표한다. AI 관련 제도 미비로 국내 기업들이 경쟁력 강화에 선뜻 나서지 못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뒤처질 것이라는 위기감을 호소하고 있다.

탄핵 정국으로 한국 경제는 심각한 혼란에 빠져있다.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은 가중되고 고물가와 고금리, 환율 변동에 의한 내수 침체가 현실화하고 있다. 민생의 겨울이 길어지지 않기 위해선 "서로를 파괴하려는 의제보다 우리 문제에 집중해달라"는 서민들의 외침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한국계 최초로 미국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된 앤디 김은 "우리 정치에는 너무 많은 오만이 있다"며 "우리가 모든 답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가서 시민들의 얘기를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정당들도 실천하길 원하는 것은 나의 바람뿐일까.

김성아 기자 김성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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