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술·이태재씨, 평화상 시상식 참석 후 현지 학생들과 대화
(오슬로=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나는 1943년 9월 9일 히로시마에서 태어났습니다."
11일(현지시간) 노르웨이 오슬로 도심의 한 회의장. 마이크 앞에선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인 정원술(81)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장의 입에서 '히로시마'라는 지명이 나오자 노르웨이와 일본 고등학생들이 귀를 기울였다.
정 회장은 "부친은 일본 군수공장에서 물품을 운반하는 마차 끄는 일을 한 것 같다. 그날 강력한 섬광과 굉음으로 모친은 청력을 잃고 청각장애 2급으로 살아가셨다"며 담담하게 자신의 삶을 전했다.
원폭 피해 2세인 이태재(65) 한국원폭피해자후손회 회장이 그의 말을 영어로 통역했다.
"부친은 온몸에 화상 입은 사람들이 열기에 못 이겨 강물에 뛰어들어 강물이 핏물이 됐다고 하시면서 가슴을 쓸어내리곤 하셨어요. 얼마나 처참했는지 주위가 보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이 행사는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일본의 원폭 생존자 단체 니혼히단쿄(일본 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가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세계 청년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마련했다.
정 회장과 이 회장, 와타나베 준코 재브라질 원폭피해자협회 이사 등 전날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참석한 이들이 증언에 나섰다.
뒤이어 와타나베 이사가 어렸을 때 피폭된 것을 모르고 살다가 성인이 돼서야 알게 된 뒤 피폭자들의 참상을 파악해 나간 과정을 세세히 설명하자 객석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2시간 가까이 자리를 지킨 일본과 노르웨이 현지 고등학생들은 숨죽인 채로 이들의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경청했다. 일본에선 핵무기의 위험성을 알리는 활동을 해온 고교생 평화대사들이, 노르웨이에서는 사회과학·복지학 수업을 듣는 고등학생들이 참석했다.
학생들을 인솔한 토바이어스 클로버 교사는 "인간의 위기 대응을 가르치고 있어 원폭 생존자의 이야기를 듣는 데 학생들을 데려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핵무기의 공포뿐 아니라 평화의 중요성, 일본의 또래가 세상에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까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거의 80년 전 발생한 원폭 피해를 상세히 몰랐던 노르웨이 학생들은 생존자의 경험담이 교실에서 책이나 배운 것과 비교할 수 없이 가슴을 울렸다고 했다.
행사가 끝나고 만난 고등학생 마들렌(18) 씨는 "학교에서 많이 듣긴 했지만 이렇게 상세하게는 배우지 못한다. 생존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듣게 돼 마음에 와닿았다"고 말했다.
이 학생은 전쟁이나 핵무기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개인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생존자들의 증언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데 설득력이 아주 크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다른 학생 롱야(19) 씨도 "선생님이 많은 얘기를 들려주셨지만 이렇게 직접 생존자들의 말을 들으니 아주 관심이 갔다"며 "학생들이 더 많이 배우고 더 열린 자세로 대화하면 토론이 확산하게 되고 문제 해결에도 도움 될 것"이라고 말했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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